[취재수첩] 화성에서 온 사장님, 금성에서 온 구직자
[디지털데일리 최민지기자]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침체와 양질의 일자리 부족으로 수많은 청년들은 취준생(취업준비생)에 머무르며 입사를 위한 스팩 쌓기 경쟁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8%에 달했는데, 이는 1999년 이후 최고치다.
사회는 이들에게 말한다.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에 지원하라고 말이다. 대선주자들도 구인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과 취준생을 연결시켜 취업난을 해결하겠다는 공약들을 내놓고 있다.
중소기업이 인재를 구하지 못하는 것은 실력 있는 지원자들이 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대기업이나 정부 기관에 몰리는 데 따른 현상이다.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청년들은 취업난에 힘들어하고 있지만 서로의 수요와 공급을 충족시켜주지는 못하고 있다.
보안업계도 중소기업처럼 구인난을 겪고 있다. 보안업계는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현 주소다. 국내 보안기업 중 별도기업으로 대기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 말 그대로 중소기업들의 산업군이다.
SK그룹 계열사인 SK인포섹이 정보보안 기업 중 사상 처음으로 매출 2000억원을 달성하며 국내 1등 보안기업으로 우뚝 섰으나, 사실 한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의 매출로 바라보기에는 만족하기 어려운 수치다. 수많은 보안기업들이 산재해 있으나 지난해 매출 1000억원이 넘는 보안기업은 SK인포섹과 안랩뿐이었다.
최근 정보보호 일자리 창출방안을 정부와 기업들이 논의하는 자리에서 보안기업 대표들이 뽑을 만한 지원자를 찾지 못하겠다는 고충을 털어놓은 바 있다. 이를 놓고 보안업계 종사자들의 원성이 쏟아지고 있다.
기업 경영을 제대로 해 규모를 키우고 시스템을 갖춰 수준 높은 지원자들이 들어올 수 있는 환경도 마련하지 않았으면서, 불평불만부터 한다는 것이다. 현재 기업을 받치고 있는 직원들의 상황만 봐도 그러하다.
대기업 신입사원 수준의 연봉이 보안기업들의 평균 연봉과 크게 차이나지 않은 현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상장사인 한 보안기업의 개발자 연봉은 300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1년 내내 비상태세를 갖춰야 하고, 밤을 지새우면서 근무하는 환경은 이미 익숙해진 상태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결국 보안기업들의 체급이 커져야 한다. 매출이 늘고 규모가 확장되고 경영상태가 안정된다면 현재 직원들의 임금 및 복지 수준도 높아지고, 유입되는 지원자수도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공공과 정부 수요가 매출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현재의 구조부터 탈피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보안기업들은 정부에게 기대고 있다. 정보보호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자금지원책 및 원스톱 지원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아우성이다. 그동안 정부가 정보보안산업 발전을 위해 얼마나 국내 보안기업들을 껴안고 갔는가.
자유로운 경쟁체제에서 생존력부터 기르게 했었다면, 시장에서 도태되는 기업들이 생겼겠지만 반대로 매출 1조원을 바라보는 경쟁력 있는 기업도 나오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보안기업을 바라보는 지원자들의 눈도 지금과는 달랐을지 모른다.
<최민지 기자>cmj@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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