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대선] 문재인 당선인은 누구?
[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제19대 대통령에 오르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당선인은 故노무현 대통령을 함께 언급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는 인물이다. 지난 1982년 노 전 대통령이 부산에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할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후 든든한 동지 역할을 하며 의지가 되어 왔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노 전 대통령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1953년 1월 24일 경상남도 거제시에서 태어난 문 당선인은 어릴 적부터 궁핍한 삶을 경험했다. 실향민인 아버지의 벌이가 신통치 않은 탓에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다보니 초등학교 시절 제대로 학교에 수업료도 내지 못했다. 이런 환경과는 별개로 두뇌가 명석했던 문 당선인은 당시 지역 명문으로 손꼽히던 경남중학교를 거쳐 경남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살림살이가 어려웠던 탓에 사춘기를 거치며 술, 담배 등 탈선의 길에 빠졌고 서울대학교 입시에서 고배를 마시게 된다. 이후에도 한차례 더 고배를 마시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1972년 경희대학교 법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한다.
1970년대 대학생 사이에서 널리 퍼지기 시작한 진보적 사상, 학창시절 방황에 빠지게 만들었던 가난, 그리고 사회계층 차이에 대한 누적된 불만은 유신독재 반대라는 기치를 내거는 계기가 됐다. 결국 집회를 주도하다가 1975년 구속됐고 학교에서도 제적당했으며 군대에 강제로 입대한다.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라는 전과자 낙인에도 불구하고 특수전사령부로 자대배치를 받았고 복무기간이 짧은 단기 사병으로는 이례적으로 두 차례나 최우수 특전사 표창에 48회에 달하는 공수강하를 경험했다. 말 그대로 문무를 겸비한 인재였던 셈이다.
군대를 제대한 이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사법시험에 매달렸고 1979년 1차 합격, 1980년 2차 합격한다. 사법연수원 12기로 법조인의 첫발을 내딛었으나 전과자 낙인으로 인해 판사로 임용되지도 못했다. 홀어머니가 계신 부산으로 내려가 지내다가 사법연수원 동기로부터 노 전 대통령과 만나게 된다. 뜻이 맞았던 두 사람은 합동법률사무소를 열었고 인권변호사로의 길에 들어선다.
◆시작은 고배, 사법시험도 대선도 재수는 없었다=항간에 익히 알려진 것처럼 문 당선인은 인원변호사로 움직이면서 지역사회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꾸준히 민주화 운동이 곁들여지면서 6월 항쟁 이후에는 故 김영삼 전 대통령(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에게 국회의원 공천을 제안받기에 이른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제안을 받아들여 정계에 입문했으나 문 당선인은 계속해서 현장에 남아 법률사무소를 이끌었다. 그러다가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민정수석으로 임명됐다. 시민사회수석, 뒤이어 비서실장을 두루 거쳤다.
하지만 2009년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은 그로 하여금 본격적인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를 만들었다. 사실 참여정부 시절 민정수석으로 취임했을 때만 하더라도 정치를 전혀 할 생각이 없고, 잘 할 수 있는 분야도 아니라며 확실히 선을 그었으나 비극적인 죽음으로 끝난 동지의 영향이 워낙 컸다. 초기에는 노무현재단의 이사장을 맡아 정치와 거리를 뒀으나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나서 부산 사상구에서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사실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그가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나갈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가능했다. 문제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으로 안철수와 같은 인물이 등장은 판세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 당내 경선에서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등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후보를 압도적으로 제치고 결선투표도 없이 후보로 선출됐지만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대결에 집중하기가 어려운 모양이 됐다. 막판 단일화를 이뤘으나 안철수의 뜨뜻미지근한 반응, 고도화된 양강구도로 인해 이전 같았으면 충분히 당선이 되고도 남았을 48%의 득표율을 기록했음에도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직후 ‘패배를 인정하겠다’는 말과 함께 2선으로 물러섰고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 2대 당대표 선출됐다. 이후에는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조기대선이 현실화되면서 제18대 대통령 선서 후보로 선출됐을 때보다 더 높은 득표율(57%)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인적사항
-1953년 1월 24일생(만 64세)
-경희대 법학 학사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주요경력
-사법연수원 12기
-법무법인 부산 대표변호사
-참여정부 민정수석비서관
-제29대 대통령 비서실장
-노무현재단 이사장
-제19대 국회의원(부산 사상구)
-제18대 대통령 선거 민주통합당 후보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제19대 대통령 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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