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IT·IP법 바로알기102] 과도하고 부당한 저작권 권리행사의 기준

김선하

[법무법인 민후 김선하 변호사] 특허 영역에서는 제품을 직접 생산하거나 판매는 하지 않고 특허소송만으로 수익을 내는 특허관리회사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바 있다. 이와 유사하게 저작권 영역에서는 음악, 동영상, 프로그램, 도서 등 저작물과 관련해 불법으로 전송, 복제했다면서 고소를 하거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저작권대리중개업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저작권 침해행위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명확한 확인 없이 이루어지는 무차별적인 저작권대리중개업자들의 행위는 과도하고 부당한 저작권 행사로서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최근 도서 영역에서 과도하고 부당한 저작권 권리행사에 제동을 건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노5211호 사건 판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관계는 이렇다. 피고인들은 온라인평생교육기관 운영자이다. 피고인들이 제공하는 온라인 학습과목에는 각 담당 교수가 있고, 교수가 강의에 쓰일 주교재를 선정한다. 피고인들은 각 담당 교수들에게 강의교안을 받아 수강생들에게 배포하는 창구의 역할만 해왔다.

그런데 저작권대리중개업자는 피고인들이 저작권자인 출판사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출판물을 주교재를 선정한 후, 출판물의 내용을 그대로 베끼거나 단순 축약한 형태로 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수강생에게 유료로 제공하는 인터넷 동영상의 강의교재로 배포해 출판물 저작권자의 저작재산권을 침해했으니, 사용료를 지급하라고 수차례 내용증명을 보내기도 했다.

피고인들은 온라인평생교육기관의 운영자일 뿐 주교재 선정등은 각 담당교수들이 진행해왔고,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을 알려달라고 내용증명을 보냈으나, 출판사의 대리인은 피고인들을 저작권 침해를 이유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에서 살펴볼 것은 크게 세가지다. 첫째, 피고인들은 온라인평생교육기관 운영자에 해당하고, 인터넷 동영상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가 따로 있었기 때문에 운영자에 해당하는 피고인들의 지위, 경력, 전문적인 교재의 성격과 내용에 교재의 작성과정에 관여할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둘째, 인터넷 동영상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가 주교재 출판물을 베끼거나 축약했다고 하더라도, 운영자인 피고인들이 교재를 수강생들에게 배포 당시 그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셋째, 피고인들은 형사고소 당하기 전 세 차례의 내용증명을 받은바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내용증명이 무차별적으로 발송되었고, 저작권이 침해된 부분을 특정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피고인들이 내용증명에도 불구하고 저작권 침해사실을 인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세 차례의 내용증명 중 두 번에 걸친 각 내용증명은 ‘학점은행제 원격기반 교육기관에서 위 출판사의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다면 저작권법 위반행위가 되므로 침해행위를 중지하고 저작권 사용료를 지불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항소심은 이러한 내용의 내용증명은 발신인이 학점은행제 원격기반 교육기관들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발송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세 번째 내용증명은 ‘피고인 회사의 46개 학습과목에서 위 19개 출판사의 출판물을 베끼거나 요약, 발췌하는 등으로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항소심은 이러한 내용의 내용증명은 ①어느 출판사의 어느 출판물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것인지 전혀 특정이 돼있지 않고, ②온라인교육기관을 운영하는 피고인들로서는 인터넷 동영상 강의를 진행하는 교수들로부터 저작권법 위반 여부에 대해 자백을 받지 않는 이상 저작권침해 사실을 인지하기 어려워 보이며, ③이같은 내용증명의 내용으로 보건대 강의 교재와 주교재를 일일이 비교해 저작권침해여부를 심사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보았다.

뿐만 아니라 피고인들이 위와 같은 내용증명에 대한 반박 내용증명을 보내면서 구체적인 저작권 침해 부분이 무엇인지 밝혀달라고 요구했으나, 이 사건 공소사실과 같은 저작권 침해행위가 있었다는 내용을 알려주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점들을 종합해 2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저작권 침해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보고, 유죄를 선고 했던 1심 판결을 뒤집어 항소심은 무죄를 선고했다.

저작권자를 대리해 저작권 침해자들을 상대로 내용증명을 보내거나 형사고소 등 법적조치까지 불사하는 저작권대리중개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이들이 무차별적으로 발송한 내용증명을 통해 또는 형사고소를 통해 저작권 침해자로부터 저작권 사용료를 받게 되면 일정비율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저작권 침해행위가 명확히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저작권 침해행위를 했을지도 모르는 회사나 기관들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행위를 금지하고 사용료를 지급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무차별적으로 발송한 후 인정하는 기업들을 상대로는 순순히 사용료를 지급받고, 아닌 기업들을 상대로는 형사고소를 진행한다.

내용증명이나 형사고소는 저작권 침해행위를 실제로 한 행위자를 상대로 하기 보단 이렇듯 저작권 침해행위에 대한 인식이 부재한 회사를 상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판례를 통해 일부 저작권대리중개업체를 통한 과도하고 부당한 저작권 행사가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저작권 침해 부분이 명확히 특정되지 아니한 무작위의 내용증명만으로는 저작권 침해여부에 대해 인지할 수 없다고 보아 저작권 침해에 대한 고의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민후>www.minwho.kr

<기고와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김선하
webmaster@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이 기사와 관련된 기사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