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 칼럼

[취재수첩] 레퍼런스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백지영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최근 열린 한 기술 컨퍼런스에서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레퍼런스(참조사례)가 없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미처 몰랐다”며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레퍼런스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지난 6월 출범한 카카오은행은 금융권에서는 보기 드물게 주요 업무시스템에 오픈소스인 마이SQL 데이터베이스(DBMS)를 적용했다. 기존까지 국내 은행 서비스는 오라클과 같은 상용 DB로 구축한다는 것이 거의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

국내 금융회사, 특히 은행은 어느 업종보다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때문에 오라클과 같이 지난 수십년 간 검증된 제품을 써야, 혹여나 장애가 발생해도 관리자 입장에선 이른바 ‘면피’가 가능하다고 여겨졌다.

최근 만난 한 외국계 업체 지사장은 “한국과 중국, 일본과 같은 아시아 문화권 고객은 공통적으로 레퍼런스를 굉장히 중시하는 반면 유럽이나 미국기업은 제품의 철학이나 아키텍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내에 새롭게 진출한 기업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 ‘레퍼런스’다.

해외에서 인정받은 신기술이나 제품을 갖고 국내에서 영업을 하더라도 결국 “한국에 이 제품을 도입한 곳이 있느냐”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그 순간부터 순조로웠던 영업 진행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레퍼런스'라는 장벽을 넘어야만 제품 공급이 가능한 셈이다. 한 발짝 떨어져서 본다면, 참으로 한심한 정서적 장벽이다. 무엇이든 검증이 가능한 첨단 디지털시대를 살면서도 여전히 고리타분하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따지고 앉아있는 것과 흡사하다.

이 지사장은 “솔루션을 도입하는 기업의 입장에선 이미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레퍼런스를 참조해서 리스크(위험부담)를 줄일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혜택을 누리기 힘들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해외기업들은 최신 기술을 먼저 도입해 스스로 혁신사례가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위험부담을 껴안고 한국에서는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에 도전하기란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이제는 남들이 가지 않는 곳, 아무도 걷지 않았던 길을 걷는 모험가들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혁신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팔로워(follower)’가 되기보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는 국내 기업이 앞으로 되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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