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망중립성 폐기하면 한국도 난리난다고?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미국연방통신위원회(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FCC)가 오는 14일(현지시각) 망중립성 폐지 표결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결과 및 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망중립성은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통신사(Internet Service Provider, ISP)가 콘텐츠 사업자나 이용자를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간단해보이지만 사업자간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산업 생태계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민감한 이슈입니다.
과거 오바마 정부 시절 FCC는 망중립성을 엄격하게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정권교체와 함께 망중립성 원칙 역시 180도로 뒤바뀔 운명에 놓였습니다.
FCC의 망중립성 폐기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 ICT 생태계에는 어떤 영향을 비칠지 분석해 봅니다.
◆ 미국 ISP, 커먼 캐리어(common carrier)인가 정보서비스 사업자인가
미국의 망중립성 제도는 변화와 수정을 거쳐왔습니다.
미국에서 망중립성 이슈는 2005년 처음 발생했습니다. 메디슨리버커뮤니케이션즈(Madison River Communications)라는 소규모 ISP가 인터넷전화 사업자인 보니지(Vonage)의 트래픽을 차단해 논란이 됐는데요. 이 사건을 계기로 망중립성 원칙을 강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고 2010년 차별금지, 투명성 확보 등을 담은 오픈인터넷룰(Open Internet Rule)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FCC가 ISP를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은 없었습니다. 왜냐면 정보서비스라는 분류체계에서는 과도한 규제를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바마 정부는 ISP 분류체제를 정보서비스에서 커먼 캐리어(우리로 치면 기간통신역무)로 바꾸게 됩니다. 2014년 11월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인터뷰를 하는 형식으로 FCC에 분류체계 변경을 요청합니다. 그래서 2015년 7월 미국 통신법 기준으로 ISP들은 커먼 캐리어가 돼 규제를 받아왔습니다.
현재 트럼프 정부, FCC 아짓파이 위원장은 이를 다시 과거, 즉 정보서비스 분류체계로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아짓파이는 꾸준히 인터넷 액세스 서비스를 기간통신서비스로 분류한 것을 반대해왔습니다. 그런 그가 FCC 위원장이 되면서 미 망중립성 정책도 변화를 예고했습니다.
◆ 왜 정보서비스로 바꾸는가…핵심은 통신사 투자 확대
망중립성 원칙과 별개로 실제 CP와 ISP간 소송은 다른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브랜드X라는 소형 ISP는 지역 케이블 사업자에게 망 임대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법적 다툼 끝에 연방대법원은 브로드밴드 서비스는 정보 서비스기 때문에 빌려줄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FCC는 이 같은 결정을 바탕으로 다시 정보서비스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무선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미국에서는 커먼캐리어 조건으로 주파수 이용, 수익목적, PSTN과 접속을 조건을 달고 있습니다. 문제는 PSTN 접속도 안되고 북미번호계획에 따른 번호도 할당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모바일 역시 정보서비스로 가야 한다는 것이 FCC의 논리입니다. FCC는 이동 음성전화와 모바일 브로드밴드간 기능적 동등성도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여러 사건이 있었습니다. 매디슨리버가 인터넷전화 사업자 보니지의 트래픽을 차단한 것을 비롯해 컴캐스트는 빗토렌트를, AT&T는 애플의 페이스타임을 차단한 사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매디슨리버는 과징금 1만5000달러에 문제를 해결했고 컴캐스트는 동의명령으로 FCC와 합의를 봤습니다. AT&T는 3개월만에 차단을 스스로 풀었습니다. 규제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시장의 기능으로 풀었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그러면 왜 FCC는 분류체계 변경에 매달릴까요.
FCC는 과거 정보서비스로 분류됐을때 인터넷 생태계의 발전이 더 뛰어났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제학적 이론, 실증분석 결과, 시장관찰 등을 통해 분석한 결과 정보서비스로의 규제가 공공정책 차원에서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고 있지만 핵심은 하나입니다. 바로 투자 확대입니다.
미국의 통신법에서는 산업을 타이틀1(총칙), 타이틀2(커먼캐리어), 타이틀3(주파수 이용사업자) 타이틀4(케이블) 등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문제는 타이틀2 규제가 불확실성을 높이고 규제비용이 과다해 ISP의 네트워크 투자 의지를 위축시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국의 사업법 보다 규제가 훨씬 엄격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엄격한 규제를 풀어줄테니 투자를 화끈하게 해달라는 것이 FCC의 속마음입니다.
단순히 트럼프 정부가 ISP 로비에 넘어가 제도를 바꾸는 것은 아닌 셈입니다. CP들에게 불이익이 갈수도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 미흡한 투자를 늘리기 위한 나름의 고육지책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오바마 정부는 CP가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이용자가 늘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 ISP가 투자를 늘릴 것이다라고 봤습니다. 흔히 말하는 선순환 구조입니다. 반면 트럼프 정부는 ISP에 직접 가입자 유치를 위해 투자를 늘리라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둘 다 투자를 늘리기 위한 방법이지만 제도의 모습은 정반대입니다.
◆ FCC의 자신감, 투명한 정보공개가 문제를 해결한다?
14일 망중립성 폐기 투표가 예상대로 통과된다면 미국 인터넷 시장에서는 차단금지, 지연금지, 추가대가 지불한 트래픽 우선 처리 금지 등이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여기에 FCC는 규제관할권을 내려놓게 됩니다. 정보서비스로 분류가 되면 규제는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맡게 됩니다. 규제권한을 스스로 내려놓다니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ISP가 시장을 망가뜨릴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FCC는 투명성 강화로 우려를 불식시키겠다는 계획입니다.
예를 들어 A라는 ISP가 P2P는 차단하겠다고 하면, 차단이나 지연 등 모든 행위를 다 공개하라는 것입니다. 그 내용 자체가 향후 사후규제 때 ISP의 족쇄가 될 것이고 이용자들은 제공된 정보를 바탕으로 폭넓은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ISP가 엄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미국 ISP들은 홈페이지에 차단이나 지연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올려놓고 있습니다. 이는 법적으로 보면 민사계약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향후 ISP가 마음대로 차단하는 것은 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FCC 의도대로 될지, ISP만 살찌울지는 아직 알수 없습니다. 전세계적인 큰 흐름과는 배치되는 결정이 미국 인터넷 생태계를 더 풍요롭게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앞으로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또한 통과되더라도 소송은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망중립성을 지지하는 세력에서 가만히 있을리 없습니다. 여기에 내년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누가 다수당의 지위를 유지하느냐 여부도 법안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결정할 것입니다. 민주당이 다시 정권을 잡는다면 아짓파이 위원장의 계획은 다시 물거품이 될 수 있습니다.
◆ 미국이 힘쓰면 한국도 움직인다고? 천만의 말씀
미국이 큰 기침을 하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영향이 올까요. 미국이 움직이니 우리도 영향을 받을까요?
그렇지는 않아 보입니다.
먼저 미국이 자신들의 규제철학을 다른 지역에 강요할 이유가 없습니다. 구글, 페이스북 등 CP들은 국경없이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ISP들은 전 세계 대부분 자국 중심으로 사업을 합니다. 자국 CP들이 불리해질 수 있는데 미국이 앞장서 제도를 전세계에 확산시킬 이유가 없습니다.
장황하게 얘기했지만 결국은 남의 나라 이야기입니다. 전세계 인터넷 산업을 리딩하는 미국이지만 제도 자체만 놓고 보면 영향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FCC가 망중립성을 폐기하면 우리도 그렇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들이 있었지만 그런 상황이 단기간내 올 가능성은 적어보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망중립성 원칙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망중립성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현재 유지되고 있는 가이드라인을 법제화하는 수준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송재성 통신경쟁정책과장은 "미국의 경우 글로벌 트랜드가 아니고 정부 고체에 따라 새롭게 변화되는 시도다. 당장 우리나라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국내 ISP들이 투자를 소홀히 할 경우 비슷한 상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지금 네이버 등 국내 CP들로부터는 망사용료를 받고 있지만 구글, 페이스북 등 해외 인터넷 기업들로부터는 망사용료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네이버 한성숙 대표는 지난해 통신사에 망사용료로 734억원을 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구글은 얼마를 내냐고 물었죠. 구글 유튜브의 국내 동영상 시간 점유율은 70%가 넘습니다.
트래픽을 훨씬 많이 유발하는 사업자로부터는 대가를 받지 못하고, 이래저래 역차별 논란만 확대되다 통신사들이 투자에 손을 떼게 되면 전체 ICT 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이같은 차별로 결국은 우리도 망중립성 원칙이 약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한 제로레이팅과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미국 사례가 참고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재 미국은 제로레이팅 규제가 없습니다. 올해 들어 FCC의 제로레이팅 서비스 조사중단을 선언했습니다. 규제개입 의사가 없다는 것도 분명히 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제로레이팅은 일단 활성화 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습니다만 불공정경쟁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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