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IT

기업은행 IT혁신 이끈 조용찬 IBK 시스템 대표의 퇴장…“꼭 밥을 사고싶었다”

박기록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약 한 달전, 퇴임 결정 소식을 듣고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과거 기업은행 전산부 후배였던 K팀장(현재는 부지점장)을 직접 찾아가 따뜻한 밥 한끼를 사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나와 함께한 모든 사람들이 다 소중하죠. 한 사람, 한 사람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제일 생각났던 사람이 K팀장입니다.”

최근 IBK시스템 대표에서 퇴임해 43년의 현역 생활을 마친 조용찬 전 IBK시스템 대표(사진)의 고백이다. 조 전 대표는 지난 21일 본지와 인터뷰를 가졌다.

조용찬 전 IBK시스템 대표 (자료 사진)
조용찬 전 IBK시스템 대표 (자료 사진)
왜 그는 K팀장에게 밥을 사주고 싶다고 했을까.

IBK기업은행은 2014년 9월, 2400억원이 넘게 투입된 ‘포스트 차세대시스템’을 오픈했다. 국내 은행권에선 처음으로 ‘비즈니스 허브’ 개념이 적용된 혁신적인 시스템. 당시 조 전 대표는 프로젝트 전체를 책임지는 기업은행의 CIO였다. 그 자리가 주는 엄청난 스트레스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은행에선 계리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계정과목이 5000개나 되기 때문에 시스템 오픈전에는 원장하고 안맞는 경우가 많은데 테스트 첫 날부터 그게 기적처럼 신기하게 딱 들어맞는 거예요.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K팀장)가 해낸 거죠. 신입행원 1명과 협력업체 직원 2명을 데리고요. 방대한 규모의 포스트 차세대시스템이 제 날짜에 성공적으로 오픈할 수 있었던 것은 K팀장 처럼 묵묵히 자신의 일에 헌신한 사람들 덕분입니다.”

기업은행의 ‘포스트 차세대시스템’이 가동된지 이제 2018년이면 어느덧 5년째로 접어든다. 사람들 기억속에서 점차 잊혀지고 있지만 조 전 대표에게 ‘포스트 차세대시스템’은 여전히 눈을 뗄 수 없는 생생한 현재진행형이고 자부심이며, 그의 인생이다.

그리고 조 전 대표가 고마움을 각별하게 표시하고 싶은 또 한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권선주 전 기업은행장일 것이다. 여성 은행 CEO로서, 포스트 차세대시스템이 성공적으로 오픈될 수 있도록 조 전 대표에게 많은 힘을 실어줬다. 틈틈히 개발 현장을 찾아 직원들을 격려했고, 테스트 과정에서 직접 참관하는 등 각별한 신경을 쏟았다.

이날 인터뷰에서 조 전 대표는 권선주 전 행장과 관련한 일화를 하나 공개했다. 기업은행 포스트 차세대시스템 개발이 한창이던 2014년 당시, 주사업자였던 삼성SDS가 갑작스럽게 공공 및 대외 금융SI 사업 철수 계획을 발표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당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삼성SDS 직원들이 심하게 동요한 것은 당연했고, 뒤숭숭한 분위기로 인해 자칫 포스트 차세대 프로젝트에도 악영향이 미칠 게 뻔했다. 이러한 상황전개는 조 전 대표로서도 불가항력이었다.

이 때 조 전 대표의 고충을 들은 권 전 행장이 직접 나섰다. 권 전 행장이 삼성SDS 뿐만 아니라 삼성그룹측에도 확실한 단속을 요구했고, 분위기를 단숨에 진정시킬 수 있었다. 조 전 대표는 “그처 럼 어려운 상황에서 권 전 행장이 흔쾌히 조직의 리더 역할을 해줬다”고 회상했다.

조 전 대표는 1990년대 초반 종합온라인, 2004년 차세대시스템, 2014년 포스트 차세대시스템에 이르기까지 IBK기업은행이 단행한 3번의 대규모 IT혁신 프로젝트에 모두 핵심적으로 참여했다. 이런 커리어는 국내에선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앞으로 계획은 무엇입니까?”

퇴직을 한 사람들에게 건네는 간단한 인사말이지만 그것이 당사자에는 매우 잔인한 말이 될 수 있다. 40년이 넘도록 지겹도록 해왔던 일이지만 어찌 떠나는 마당에 미련과 아쉬움이 없겠는가.

조 전 대표는 “특별히 계획을 세워놓은 것은 아직 없다”며 홀가분하게 웃었다. 현재로선 금융 보안과 관련한 공부를 하고싶고, 또 노후를 보낼 수 있는 집을 직접 설계해서 짓고 싶다는 정도다.

그는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를 좋아한다. 이제는 어쩔 수 없는 거대한 벽 앞에 서서 두려움을 느끼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조만간 어떠한 역할이라도 맡아 다시 나타날 것만 같다.

조 전 대표의 경우에만 국한되지 않겠지만, 국내 금융IT 분야에서 30~40년간 경험을 쌓은 최고 베테랑들을 ‘사회적 인적 자산’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장치가 부족한 것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디지털금융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레거시 시스템 분야 베테랑들의 노하우가 더욱 중요한데, 이 부분은 간과되고 있는 거 같다.

◆‘현장의 디테일’을 중시했던 금융IT 전문가

조 전 대표는 섬세한 스타일이다. 항상 ‘현장’을 중시했다. 현장에 나가야만 ‘보이지 않는 2인치’가 보인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이러한 디테일을 중시했다”고 말했다. 금융IT의 완성은 디테일에서 결정된다는 것이 그의 철학. 기업은행 CIO시절도 그렇고 지난 2년간의 IBK시스템 대표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반드시 현장을 확인한 후 자기 확신을 가지고 IT로 옮겼다.

과거 기업은행은 조준희 행장 시절, 오후 6시 업무 종료를 추진했었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업무 분량은 여전했고, 기존 프로세스 때문에 잘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전산부장이었던 조 전 대표는 “현장에 직접 나가서 지켜봤다. 오후 4시 반에 지점이 셔터를 내린후 지점 직원들이 하는 일을 전산부 직원들이 직접 나가서 분석했다. 직원들의 커피 마시는 동선까지, 보름 정도 지켜보니까 어느 정도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다. 기존 오후에 처리했던 업무중 가능한 것은 오전에 처리할 수 있도록 했고, 또 어떤 업무는 통합처리했다. 결국 업무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기업은행 CIO로써 포스트 차세대시스템을 개발할 때, 그는 ‘경계의 약점’에 대비했다. 역시 디테일을 중시한 결과다.

조 전 대표는 “대개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 개발시 각 업무 파트의 팀장들끼리 협업이 잘 안된다. 팀장들이 자신의 업무에 대해서는 철저하지만 업무가 겹치는 경계에선 허술하다. 이 부분이 약점이다. 이를 소홀히하면 오픈 시점에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커진다. 부장이었던 지난 2004년, 실무자로써 차세대시스템을 개발할 때 경험한 것이다. 그래서 포스트 차세대시스템때는 중간 중간 이같은 경계업무에 대해 크로스 체크를 철저하게 했고, 오류가능성을 없앴다”고 말했다.

◆그가 ‘IT 품질’을 강조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조 전 대표가 기업은행 CIO로 재임하던 시절, 포스트 차세대시스템 등 굵직 굵직한 IT사업이 많이 진행됐다. 그러나 조 전대표가 가장 신경썼던 부분은 프로젝트의 완성도 못지 않게, 시스템 가동 이후의 ‘IT 품질’이다.

기업은행은 시중 은행들보다 점포수, 직원수 등 외형에서 절반(50%)에도 못미친다. IMF이후 시중 은행들은 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웠지만 기업은행은 그런 합병의 역사가 없다. 더구나 과거 정부에서 민영화 논의까지 진행됐다.

기업은행으로서는 특단의 대응 전략이 필요했다. 결국 기업은행이 50% 외형의 열세를 만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IT밖에 없었다. 경쟁력있는 IT의 품질을 지속적으로 유지함으로써 고객 서비스의 차별화를 달성하는 것. 조 전 대표가 IT품질에 몰두하게 된 이유다.

“덩치가 작은 사람이 거인을 이기기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속도'밖에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조 전 대표는 “기업은행 거래업체중에 자동차부품업체가 있다. 라이닝을 만드는 업체인데 지금도 아주 평가가 좋다. 언젠가 그 회사를 방문해 부품을 테스트하는 룸을 봤다. 영하 10도에서 영상 70도까지 다양한 극한의 상황을 놓고 하더라. 이처럼 품질 향상에 극도로 노력을 하니까 독일 자동차회사에도 제품을 구매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거기에서 큰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IBK기업은행은 이후 전산업무 개발시 작업계획, 테스트 실시 내용, 테스트 결과까지 품질 관리를 위해 사전에 철저하게 검증하는 등 IT품질에 많은 노력을 쏟았다. 개발에 앞서 업무요건과 전산요건을 분명하게 표시함으로써 시스템 개발의 오류나 장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지난 2년간 IBK시스템 크게 성장, 비결은?

조 전 대표가 CEO를 맡았던 지난 2년간 IBK시스템은 기념비적인 성과를 냈다. 수출입은행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의 주사업자를 맡았고, 이와 동시에 국내 주요 캐피털업체들이 발주한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들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조용찬 대표의 후임으로 지난 15일 서형근 기업은행 부행장이 IBK시스템 신임 대표로 공식 취임했다.

지난 몇년간, IBK시스템은 국내 은행 IT자회사들과는 달리 대외 사업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왔다. 조 전 대표는 인력의 경쟁력을 강조해왔다. 전문가의 외부 영입보다는 자체 경쟁력을 높이는 데 힘썼다. 실제로 IBK시스템은 직원들이 70~80개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인공지능, 스크래핑 등 혁신 기술에 대한 자체 역량을 높여왔다. 특히 스크래핑 기술의 경우, 내부의 독자적인 기술로 이를 사업화하는데 성공했다.

조 전 대표는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조직의 역량을 키우는 것, 결국은 이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직원들이 자신감을 가지고 모든 상황에 임해줬으면 한다"고 응원했다.

◆“나는 복받은 사람, 행복했다”

조 전 대표는 “상고를 나와 1975년에 입행했다. 햇수로 43년, 군대 3년빼니까 40년이다. 회사 내에서도 가장 오래됐다. 어떻게보면 민망할 정도로 오래했다. 상고 동기들, 기업은행 입행 동기들이 많았지만 현역으로는 혼자 끝까지 남았으니 난 복받은 사람”이라며 “여기까지 오게되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상고를 졸업했지만 업무 적성은 의외로 전산쪽이 맞았다. 조 전 대표는 “1986년까지 일선 지점에 근무하다가 처음으로 전산부로 발령이 났다. 그때 회사에서 종로에 있는 중앙컴퓨터 학원에 보내줬다. 어셈블러, 코볼, PL1, EDPS 등을 6개월간 배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IT가 맞았다. 달력짜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이런게 너무 신기했다. 원래 손재주가 좋았다는 말은 어렸을때부터 들었는데, 아마도 타고난 적성은 이쪽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가족에겐 미안한 것이 많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아빠로서의 역할을 못한 거 같다”고 했다. 그는 “짐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아이들 중고교때 통지표를 봤다. 한 번도 챙기지 못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고 웃었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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