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은 IT업계에도 특별한 해…되돌아 본 'SW개발촉진법' 탄생 배경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고(故)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과 6월 민주항쟁을 담은 영화 ‘1987’이 극장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1월 22일 기준 누적 관객수 600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 중이다.
영화의 배경이 된 1987년은 한국 민주주의의 물꼬를 튼 중요한 해이기도 하지만 국내 소프트웨어(SW) 정책 측면에서도 남다른 의미를 갖는 해다.
올해 개정을 앞두고 있는 ‘SW산업진흥법’의 전신인 ‘SW개발촉진법’이 1987년 12월 4일에 제정됐기 때문이다. 2000년 SW산업진흥법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현재의 모습에 이르게 됐다.
그렇다면 SW개발촉진법 제정 당시 상황은 어땠을까. 이와 관련, 과학기술처 사무관으로 근무하던 조을래 SW정책연구소 자문관<사진>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1984년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그는 과학기술처 정보산업기술과에 근무하며 법 제정에 참여했다. 이후 해외유학과 안양우체국장 등을 역임했다.
그에 따르면, SW개발촉진법은 앞서 제정된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과 공동운명체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은 현재의 저작권법에 의거에 2009년 폐지). 당시만 해도 국내에선 SW를 복제해서 써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현재는 불법SW는 강력한 처벌 대상이지만 당시만 해도 이를 단속할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SW복제가 불법이라는 인식 자체가 아예 없던 때였다.
하지만 1986년에 타결된 한미 통상으로 불법으로 사용되고 있던 미국 SW의 저작권 문제 등이 불거졌다. 통상실무회담 때마다 미국의 압박이 들어왔다. 자동차, 가전제품 수출에 타격이 갈 것을 우려해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을 만든 셈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법을 제정하기 위해선 차관회의와 국무회의, 관계부처협의, 국회 상정까지 절차가 복잡했다. 특히나 컴퓨터 프로그램, SW 지적소유권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법대 교수와 한국마이크로소프트(MS) 변호사 등의 도움을 받아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을 제정했다.
조을래 자문관은 “당시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을 만들면서 보니, 미국 SW를 보호하기 위해 법을 만든다는 자체가 웃긴 일이었다”며 “미국기업의 저작권을 보호하면서도 국내 산업 육성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함께 만든 것이 ‘SW개발촉진법’”이라고 말했다.
‘SW개발촉진법’이라는 명칭이 만들어진 배경도 재미있다. ‘SW개발’보다 더 범위가 큰 ‘IT산업촉진법’, ‘SW산업촉진법’이라는 이름이 붙여질 뻔 했으나 부처 간 이견차이로 ‘SW개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 자문관은 “당시 IT영역을 놓고 과학기술처와 상공부, 체신부 세 개 부처가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며 “국가 충성도가 높았던 때여서 1등 부처가 돼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심했고, IT분야 주도권 잡기 위한 노력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SW산업’이라는 이름을 붙이려고 하니, 상공부에서 ‘산업’은 본인들의 영역이니 기술 관련된 이름만 쓰라고 하더라”며 “상황이 이렇다보니 ‘SW개발’이라는 명칭을 넣을 수 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사실 그가 관련 법 제정에 참여하고, 이를 실행하면서 관심이 커졌던 분야는 ‘게임’이다. 게임은 SW분의 종합예술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1990년대에 일본 닌텐도를 방문했었는데, 게임SW는 스토리텔링부터 음악, 미술, 기술이 모두 담긴 종합예술이라고 느꼈다”며 “게임SW를 잘 육성하면 좋을 것 같아서 장관에게 산업육성 건의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게임 사무관’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현재도 그의 책상에는 ‘대한민국 게임백서’가 꽂혀있을 정도로 관심이 많다.
한편 SW개발촉진법을 전신으로 한 SW산업진흥법은 올해 전면 개정된다. 현행 법이 지나치게 공공SW사업 규정 중심이어서 4차산업혁명에 대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번에 추진되는 개정안은 SW산업 육성 강화, 경제·사회 전반의 SW 활용 확산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SW 지식재산권 보호부터 SW 융합 촉진, SW 안전기준, SW 교육 활성화, SW 문화 조성, SW 기술자 우대, 민간투자형 공공 SW사업 등의 항목이 신설됐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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