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웅 칼럼

[취재수첩] 표준·생태계의 힘…와이브로 퇴출이 남긴 것

채수웅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토종 통신기술로 평가받던 와이브로가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KT에 이어 SK텔레콤도 연내 와이브로 서비스 종료 계획을 발표했다. 내년 3월 주파수 재할당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사업자나 정부 모두 더 이상 와이브로를 끌고 갈 원동력은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2004년 정보통신부는 10년 뒤 우리나라를 먹여살릴 성장동력 마련에 분주했다. 고심끝에 나온 주인공들은 DMB, 홈네트워크, 텔레매틱스, WCDMA, 와이브로 등이었다. 이 중 가장 기대를 모았던 주자는 바로 와이브로였다.

WCDMA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다면 와이브로는 세계 이동통신 시장에 한국의 통신기술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사업자들의 적극적인 투자에 정부의 지원도 전폭적으로 이뤄졌다.

2004년 정통부의 와이브로 사업자 선정 허가정책 자료집에 따르면 와이브로는 가입자 945만, 18조원의 생산유발효과, 6.8조원의 수출유발 효과 및 7.5조의 부가가치를 창출해 낼 것으로 기대됐다.

그렇게 와이브로는 2006년 국내에서 먼저 상용서비스가 시작됐다. 당시만해도 CDMA 성공을 이을 차세대 통신 서비스로 평가됐지만 현실은 시장퇴출이다. 조단위의 투자에도 불구 가입자는 늘지 않았고 사업자의 투자의지 역시 감소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하지만 와이브로의 화려한 날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니 일장춘몽이라 부를만한 순간도 없었던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와이브로의 실패는 사업자의 의지, 기술력보다는 표준화, 생태계 경쟁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많은 사업자들이 도입해야 장비가격도 내려가고 더 많은 단말기가 지원돼 하는데 현실은 중국, 일본 등 몇 개 국가만 서비스를 제공했다. GSM 계열의 거대 세력에 대응할 만한 세력을 갖추지 못한 것이 실패의 근본적 원인이었다.

조단위의 투자, 수천억원 가치의 주파수의 낭비. 십수년간 와이브로 서비스를 통한 손실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결론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와이브로에 지나치게 인색한 평가를 내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동쪽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주도권을 잡기 위한 혁명과도 같은 도전이었다. 와이브로 뿐 아니라 CDMA, DMB, 전자정부, 초고속인터넷 등 무모했던 도전들이 역사의 한페이지가 돼 현재의 ICT 강국을 만들 수 있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와이브로 호흡기가 너무 오래 달려있었다는 점이다. 가능성이 없다면 인정하고 빠르게 대안을 찾아야 했다. 정부는 주파수를 보다 효율적인 곳에 투입하고 통신사 역시 제대로 된 곳에 투자를 해야 했다. 법에 근거가 없는 서비스 등장을 위해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한 것처럼 정부의 통신 네트워크 정책도 보다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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