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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버 현지화’ 오픈넷 토론회, 반대 입장 쏠리자…청중서 제동 걸기도

이대호
[디지털데일리 이대호기자] 변재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지난 9월 발의한 이른바 ‘국내 서버 설치법’을 두고 사단법인 오픈넷과 고려대 미국법센터, 주한미국대사관이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시대를 역행한다” 등의 강도 높은 비판이 나왔다.

변 의원은 국내외 사업자 간 역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관련 법안(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일정규모 이상의 인터넷 기업들에게 국내 서버 설치 등 기술적 조치 의무를 부과하는 법안이다. 이는 과세 근거를 부여해 다국적 사업자들의 조세 회피를 막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러나 이들 주최 측은 28일 고려대 CJ법학관에서 개최한 ‘국경 없는 인터넷 속에서 디지털주권 지키기’ 토론회를 통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날 토론회는 일방향으로 흘렀다. 토론회 참가자 중 법안 찬성 목소리를 내온 인사가 없었던 까닭이다. 김가연 오픈넷 변호사는 토론 중에 “방송통신위원회 등 찬성 측을 섭외하려했는데, 일정이 안 돼 섭외가 쉽지 않았다”며 법안 찬성 측을 배제한 토론회가 아님을 밝혔다.

◆美 대사관, 일반론 수준의 반대 입장 보여=예상대로 주한미국대사관 측은 ‘국내 서버 설치법’에 반대 목소리를 냈다. 이날 해리 해리슨 신임 주한미국대사가 개회사를 맡기로 했으나, ‘몸이 불편해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참했다. 이 때문에 주한미국대사관 경제부 공사참사관이 개회사를 대독했다.

개회사 내용 중엔 “데이터 현지화 규제를 피해줄 것을 촉구했다. 클라우드컴퓨팅의 장점을 막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이에 우리 정부와 공식적 채널로 얘기가 된 입장인지 되묻는 질문에 대사관 측은 “대사관에선 교역협정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미국 무역대표부의 역할”이라며 “일반적 입장은 항상 미국회사들이 평등한 시장에서 영업을 하고 공정한 환경에서 운영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박훤일 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왼쪽에서 두번째)가 28일 오픈넷 주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토론 패널로 조슈아 멜처(Joshua Meltzer)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맨 왼쪽), 조장래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상무(왼쪽에서 세번째), 김가연 오프넷 변호사가 참석했다.
박훤일 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왼쪽에서 두번째)가 28일 오픈넷 주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토론 패널로 조슈아 멜처(Joshua Meltzer)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맨 왼쪽), 조장래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상무(왼쪽에서 세번째), 김가연 오프넷 변호사가 참석했다.
◆“데이터 시대 쇄국주의” 반대 목소리 분출=
발제를 맡은 조슈아 멜처(Joshua Meltzer)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국내 서버 설치 의무화를 두고 “각자 관할권에 데이터센터를 설립하는 비용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며 우려를 보였다.

뒤이어 나선 박훤일 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데이터 현지화가 시행되면 크게 봤을 때 무역 서비스 거래에 있어서도 위축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면서 “클라우드 컴퓨팅까지 얘기하지 않더라도 세금 문제, 여러 규제, 감독상의 편의성을 염두에 두고 서버를 현지화하는 것은 삼가할 때도 되지 않았나”라고 의견을 밝혔다.

또 박 전 교수는 “국내에 서버를 둬라하더라도 다국적 기업에선 어떤 수를 써서라도 피해나갈 구멍을 찾는다”며 “그러니까 여러 기술적인 조세 절감 대책이 있는 한 정면 돌파하려는 우리나라 법안 이런 것들은 재고할 여지가 있지 않나”라고 부연했다.

조장래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상무는 “데이터 현지화 정책은 한국에 켜켜이 쌓인 데이터 관련 규제, 국가간의 무역 마찰, 불평등 수출을 일으키는 많은 문제들이 있는 상징적인 하나의 정책”이라며 “19세기 우리 선조들이 애국이라 믿었던 쇄국주의를 데이터 경제 시대에 다시 불러오고 있다”고 발언의 강도를 높였다.

김가연 오픈넷 변호사는 법무부 국제법무과 사무관으로 재직하며 자유무역협정(FTA) 협상단으로 참여했던 경험에 근거해 “한미 FTA 위반 소지가 있다”며 “FTA 논의에서 상품이나 농수산물이 중요한 협상이기도 하니 IT챕터 논의는 되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점점 디지털 무역의 중요성이 강조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버 설치’ 일방적 반대 치닫자 청중서 반발=이처럼 토론회에서 ‘국내 서버 설치 의무화’에 반대 입장으로 쏠리자 청중에서 반발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출신이라고 밝힌 한 인사는 “유럽연합에서 미국기업들이 이용자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제동을 걸고 유럽에 데이터센터를 구축 중인 걸로 아는데, (토론회에서) 한쪽 측면을 얘기하는데 대척점의 의견도 수렴해야 되지 않을까”라고 의견을 냈다.

또 IT업계 종사자라고 밝힌 한 청중은 “왜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지으면 안되나.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지난 22일 서울지역 클라우드) 아마존 리전이 대안을 안 둬 먹통이 됐다. 편하게 장사하는 거 아닌가. 이런 현실인데 제대로 과세받아서 우리산업을 육성하면 안되나”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에 박훤일 전 교수는 “당연한 지적으로 생각한다”며 청중들의 의견을 받아들인 뒤 “4차 산업혁명이 오면 (국내 서버 설치를 의무화할 경우) 갈라파고스가 된다”며 “교류나 거래가 활성화되지 않고선 무역을 지탱하지 못하듯이 갈라파고스 규제를 우리 논리에서 떼야 하지 않을까”라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박경신 오픈넷 이사가 서버 현지화가 아닌 세법으로 글로벌 사업자들의 소득세를 징수할 수 있지 않냐며 박 전 교수에게 질의하자 그는 “국내에 서버를 두면 세법에서 말하는 고정사업자가 돼 과세 근거가 생길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론스타를 통해 너무나 많은 것을 공부했다. 얼마든지 세금을 덜 내는 쪽으로 합법적인 절세대책을 하기 때문에 그런 강공법이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대응책 마련에 있어서 현명한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대호 기자>ldhdd@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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