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IT정책도 프랑스처럼?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프랑스 아이처럼’ 이라는 육아책이 한동안 국내에서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아직도 초보 부모들이 많이 찾는 책 중 하나다. 미국인 엄마가 프랑스에 살게 되면서 관찰하게 된 프랑스 육아에 관한 책이다. 압축하자면 프랑스식 ‘쿨한 육아’ 관찰기랄까.
책에 따르면 생후 두 달 정도 밖에 안 된 아이가 혼자 밤새 통잠을 잔다거나, 떼쓰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얌전하며 어릴 때부터 각종 야채나 과일을 골고루 먹는다. 우리나라처럼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지 않으면 외식이 불가능한 것과 달리,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식사를 여유롭게 즐기는 부러운 모습을 보인다.
또 부모는 기본적으로 아이에게는 아이의 인생이 있다고 생각하며, 우리나라처럼 아이에 관심을 집중하거나 올인하지 않는다. 물론 육아에도 프랑스 사회시스템이 반영된 만큼, 동일한 육아방식을 우리나라에 똑같이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난데없이 프랑스 육아책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지난 23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엘리제궁(대통령궁)에서 개최한 행사 때문이다. 이날 마크롱 대통령은 글로벌 IT 대기업 CEO 50명을 초청해 ‘테크 포 굿(Tech for Good)’ 행사를 열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를 비롯해 지니 로메티 IBM CEO, 사티야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 등 실리콘밸리 거물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번 행사는 프랑스를 ‘스타트업 국가’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마크롱 대통령이 거대 IT기업들의 투자를 독려하기 위해 마련됐다. 한편으로는 개인정보 독점, 조세회피, 경쟁 제한 등 IT 거대기업에 쏟아지는 비판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행사 참석자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엘리제궁 계단에 모이자 “공짜 점심은 없다(No free lunch)”며 뼈있는 농담을 던졌고, 이는 기업들의 투자 약속으로 이어졌다.
IBM은 향후 2년 간 프랑스에서 인공지능(AI)과 블록체인, 클라우드 분야에서 1800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으며, MS는 올해 AI 전문가 100명 채용과 3년 간 3000만달러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구글 역시 비영리 프로젝트에 1억원을 투자하겠고 밝혔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월에도 글로벌 CEO 140명을 베르사유궁으로 초대해 ‘프랑스를 선택하세요(Choose France)’라는 컨퍼런스를 열어 기업의 투자를 대거 이끌어냈다.
이같은 광경을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IT기업과 비교해보면 그저 씁쓸해진다. 2년 간 프랑스에서 1800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힌 IBM의 한국지사는 그저 숫자만 맞추는 영업사무소에 불과하다. 10년 전 2700여명에 달하던 직원수는 2017년 기준 1676명에 불과하다. 프랑스에서 새롭게 채용하겠다는 인력보다 적은 숫자다. 국내 투자는 찾아볼 수 없고, 본사에 보내는 배당금은 매년 늘고 있다.
이번 프랑스 ‘테크 포 굿’ 행사엔 참여하지 않았지만, 미국 SW기업 오라클의 한국지사 직원들은 지난 16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임금인상, 고용불안 해소, 장시간 노동 개선, 노조활동 보장을 사측에 요구하고 있지만 해결될 기미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노조 측은 “회사에서 아직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무기한 파업에 돌입할 뜻을 밝혔다.
최근 공룡이 된 거대 IT기업을 바라보는 곱지 않다. 조세 회피, 개인정보 유출 같은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제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동안 거둬들인 막대한 부와 권력을 바탕으로 불평등과 기후변화 등 사회적 문제 해결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다시 프랑스 얘기로 돌아가면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한 이후 ‘친기업, 친기술’을 앞세워 벤처, 스타트업 육성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 프랑스 IT를 생각하면 붉은 수탉 모양의 ‘라 프렌치 테크’ 로고가 생각날 정도다. 물론 이번 ‘테크 포 굿’ 행사에서의 투자를 두고 일각에선 글로벌 IT기업들이 마크롱 정부의 성장 정책을 지원하며 세금 압박을 멈춰달라는 이른바 ‘프랑스 달래기’라는 평가도 있다.
마크롱 대통령과 비슷한 시기에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처음 맞이한 정보통신의 날(4월 22일)에 “세계에서 가장 SW(IT) 잘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한반도 정세 등 정치외교 분야에서의 현안이 워낙 메가톤급이다보니 IT 분야에선 이렇다 할 빅이벤트가 눈에 띠지 않는다. 문 대통령 재임기간 중 글로벌 IT기업들이 몰려와서 한국에 대한 투자약속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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