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웅 칼럼

[취재수첩] 5G 세계최초와 김연아

채수웅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소트니코바.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의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부문 금메달 리스트다. 많은 국민들이 기억하고 있겠지만 당시 은메달 리스트는 압도적인 실력을 뽐냈던 김연아 선수였다.

러시아에서 열린 올림픽. 자국 선수에게 부여됐던 후한 점수. 해외 언론들도 판정에 의구심을 보였다. 그렇게 김연아는 마지막 올림픽을 씁쓸하게 마쳤다. 하지만 한국 국민은 물론 러시아를 제외한 많은 국가들은 메달 색깔에 상관없이 김연아를 진정한 세계 넘버원으로 평가하고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2019년 4월 3일 23시.

드디어 대한민국이 세계 최초 5G 서비스 타이틀을 따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의 시범서비스, 지난해 12월 이동형 동글 서비스에 이어 스마트폰 상용서비스까지 5G 서비스 세계최초 3관왕에 올랐다.

하지만 세계최초로의 여정을 돌아보면 유쾌함만 남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세계최초에 집착하다보니 새로운 세대(G)로의 첫걸음 의미가 퇴색된 모양새다.

대리점 전산업무도 마감된 밤 11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문제의 발단은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이었다. 11일 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예고한 버라이즌이 갑자기 4일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정보가 입수됐기 때문이었다. 23일 오후 이통사 삼성전자 과기정통부는 긴급 회의를 가졌다. 세계 타이틀을 빼앗길 수 없었던 과기정통부는 23일 오후 23시에 각 이통사 1호 개통자를 배출하기로 결정했다. 이통사들은 부랴부랴 1호 가입자들을 대리점으로 불렀다.

5일 결전을 앞둔 상황에서 3일 늦은밤 기습개통은 이통사 직원들도 허탈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LG유플러스는 요금제 변경 신고를 외부에 공개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꼭 이래야만 하나는 볼멘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국내최초도 아닌 세계최초 타이틀은 분명 의미가 크다. 하지만 수준을 초격차로 벌리거나, 일정을 크게 앞선다면 모를까 불과 몇 시간 앞선 1등의 의미는 크지 않다. 전세계 이통사들이 예정하고 있는데 조금 먼저 시작한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이번 5G 세계 최초 서비스를 정부에서 주도했다는 점에서 ‘시대착오’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5G 표준화가 이뤄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정부, 과기정통부 장관 입에서 “3월 세계 최초 5G 서비스를 하겠다”는 발언이 나왔다. 밑도 끝도 없었다. 그냥 그 때 안하면 우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본능적인 감 때문이었다 한다. 먼저 해서 나쁠 것 없다. 표준화, 생태계, 융합서비스 등 많은 분야를 주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뒷전이고 타이틀만을 따내기 위한 행보로 비춰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미국 버라이즌 5G 상용화는 우리와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렵다. 미국 버라이즌이 내세운 5G 스마트폰은 모토Z3다. 삼성전자 갤럭시S10 5G처럼 5G 전용 모뎀칩을 탑재한 스마트폰이 아니다. LTE 단말에 5G 모뎀만 추가한 방식이다. 여기에 서비스 커버리지, 요금제 등 역시 우리와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5G 1호 가입자에 김연아 선수가 이름을 올렸다. 마지막 경기서 은메달에 머무른 그녀지만 소트니코바를 진정한 챔피언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 기억, 그리고 전세계인의 기억속에는 김연아가 진정한 세계 챔피언이다. 그러기에 그녀가 새로운 세대를 여는 5G의 1호 가입자로 선정됐을 것이다.

흉내만 낸 서비스, 제품으로 세계최초 타이틀을 빼앗기더라도 현시점에서 분명한 5G 세계최고는 대한민국이다. 그래서 전세계 통신사들이 5G를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고있다. 최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최고를 얼마나 유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미 충분히 자격이 있는데 세계최초 호들갑으로 세계최고 체면만 구긴 1호 가입자 개통식이었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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