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실패한 R&D란 없다”…후지쯔, 피말리는 혁신경쟁에서 앞서는 비결

박기록
후지쯔연구소 (도쿄 가와사키)
후지쯔연구소 (도쿄 가와사키)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혹시 R&D(연구개발)를 실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습니까?'

후지쯔는 한 해 1조8000억원 가량의 막대한 R&D 비용을 투자한다. 후지쯔 R&D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일본 후지쯔연구소를 방문하게된다면 꼭 하고싶은 질문이었다.

'미래를 놓고 벌이고 있는 글로벌 IT기업들의 신기술 혈투', 4차 산업혁명의 다른 말이다.

IT기업에 있어 R&D는 언제나 중요하지만 지금과 같은 차세대 기술 경쟁시대에는 그 중요성은 훨씬 더 크다. 노키아의 사례를 굳이 소환하지 않더라도 시대의 흐름을 잘못읽고 자칫 엉뚱한 R&D에 아까운 시간을 낭비한다면 이는 곧바로 회사의 존망과도 직결된다.
그러나 후지쯔연구소의 스가노 히로야스(사진) 연구원,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우리의 R&D에는 잘못이 없습니다. R&D의 결과물이 설령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다하더라도 그건 주변의 상황이 우리의 성과에 미처 따라오지 못했을 뿐이지 R&D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의 답변을 듣기전까지, 공을 들인 R&D가 실패로 판명됐을때 회사 경영진에 90도로 허리를 굽히고 눈물로 사과를 하는 연구원의 모습을 생각했던 것은 어쩌면 지나친 편견이었거나 영화적 상상력에 불과했다.

오히려 그들은 '실패'에 대한 관념도 긍정적이었다.

“우리가 진행하는 R&D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때가 종종 있지만 그것이 실패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러한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좋은 결과물도 얻을때가 있기 때문이죠.”

즉 '이 세상에 가치없는 R&D는 없다. 고로 실패한 R&D는 있을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신조다.

어쩌면 이러한 여유와 자신감이 후지쯔가 중장기적인 투자가 요구되는 분야, 폭넓은 창의력이 요구되는 R&D에서 성과를 내는 원동력일지 모른다. 올해로 설립 50년째를 맡는 후지쯔연구소는 독립적이다. 후지쯔의 자회사이긴하지만 R&D에 대한 간섭은 없는 것으로 이미 잘 알려져있다.

후지쯔연구소의 대표적인 성과로 손꼽히는 '디지털 어닐러'(Digital Annealer)'는 아마도 이러한 여유로운 R&D 정신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디지털 어닐러'는 양자컴퓨팅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한 새로운 컴퓨터 아키텍처다. 가와사키의 후지쓰연구소 기술전시관 쇼룸의 가장 전면에 배치돼 있을 정도로, 성과에 대한 자부심이 커보였다.

물론 지구상에는 '디지털 어닐러'외에 'D-웨이브(Wave)'등 양자컴퓨팅 기술을 활용한 제품이 있지만 아주 초기시장이다. 지난 16일~17일, 이틀동안 일본 도쿄에서 진행된 '후지쯔 포럼 2019'에서 참관객들의 관심을 끌었던 것도 이 '디지털 어닐러'였다.

참고로, '디지털 어닐러'가 탄생한 배경을 보면 R&D의 창의력에 다시 한번 공감하게 된다. 원래 '어닐러'(Annealer)는 컴퓨팅 용어가 아니다.

금속분야에서 '어닐링 공법'(Method of Annealing)'이란 기술이 있다. 강철을 가열한뒤 이를 식히는 과정에서 금속의 조직이 '최적의 상태'(Optimization)'에 도달하도록 하는 기술이다. 즉, '디지털 어닐러'는 이처럼 '최적의 조합' 을 월등하게 빠른 속도로 찾아내기 위해 개발된 컴퓨팅 기술이다. 이를 금융산업에서 활용한다면, 증권회사가 복잡한 투자상품 포트폴리오를 짤 때 기존 컴퓨터보다 획기적으로 빠른 속도로 가능해진다.

이러한 '최적의 조합'을 찾기위해서는 먼저 엄청난 속도의 계산 능력이 필요하다. 양자컴퓨터 얘기는 여기서부터 나온다.

'디지털 어닐러'는 '양자 컴퓨터'의 퀀텀 비트(큐비트)를 개념을 회로로 구현한 DAU(Digital Annealing Unit)칩을 적용한다. DAU칩은 8192비트 풀 커넥티비티를 갖추고 있다. 모든 비트의 신호를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어 엄청난 속도의 계산이 가능하다. 또한 양자컴퓨터의 -273도의 극저온 환경과 관계없이 상온에서 작동된다.

이것은 '인공지능'(AI)도 아니다. '디지털 어닐러'는 데이터의 축적 유무과 관계없이 주어진 파라메터를 이용해 '최적의 조합'을 찾는다.

어쩌면 '디지털 어닐러'는 양자컴퓨터 시대로 가는 여정에서 툭 튀어나온 '맛뵈기' 같은 제품일수도 있고, 어쩌면 가장 먼저 온 '현실적인 양자컴퓨터'일 수도 있다.

얼마의 시간이 더 걸릴지 모르지만 양자컴퓨터까지 가는 여정은 여러 갈래길이다. 누가 정답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IBM, MS 등 글로벌 IT공룡들은 현재 각자가 생각하는 양자컴퓨터 시장의 정상 루트를 개척하고 있다. 후지쯔 역시 자신들의 철학으로 양자컴퓨터에 접근하고 있다.

비록 '디지털 어닐러'가 양자컴퓨터의 궁극적인 모습은 아니겠지만 그 실체를 어떤식으로든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놀랍고 부럽다.
<도쿄(일본) =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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