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나 칼럼

[취재수첩] ‘반쿠팡’ 정서가 확대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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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이안나 기자] 국내 e커머스 시장이 요동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사이 쿠팡의 정신은 다른 곳에 쏠려있다. 덕평물류센터 화재로 인한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여러 악재와 논란이 겹치면서 ‘반(反)쿠팡’ 정서를 가진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선 불매 운동 및 회원 탈퇴 움직임이 일고 있다. 쿠팡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쿠팡은 최근 몇 년간 유통업계에서 늘 주목의 대상이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하게 빠르게 성장하며 국내 e커머스 시장을 뒤흔든 주인공이어서다. 하지만 ‘로켓배송’을 앞세워 급성장한 만큼 물류센터 중심으로 노동환경에 대한 문제도 끊임없이 지적됐던 게 사실이다.

최근 소비자들이 쿠팡 탈퇴 인증을 이어가는 이유는 단지 물류센터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소방관 한 명이 순직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열악한 노동환경과 부실한 안전 관리 등으로 그동안 쌓여온 쿠팡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이번 화재 사건을 계기로 터져나오고 있다.

특히 화재 당일 쿠팡 창업주 김범석 의장이 국내 등기이사 및 이사회 의장을 사임했다는 발표가 소비자들의 부정적 시각이 ‘탈퇴’라는 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든 원인이 됐다. 화재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모습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쿠팡은 화재가 발생하기 약 보름 전 이미 사임했고 발표일만 공교롭게 겹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런 ‘오해’로 소비자들의 마음이 돌려지는 건 아니다. 어찌됐든 김범석 창업주는 연이은 쿠팡 악재에도 책임을 지거나 사과할 법적 책임이 없어졌다. 당장 내년 1월부터 시행하는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자유롭게 됐다. 이는 산재 발생 시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처벌을 받는 법이지만 국내 등기이사가 아닐 경우 적용이 복잡해질 수 있다. 쿠팡은 올해 초 미국 증권 시장 상장을 위해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도 경영 주요 리스크 중 하나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을 꼽았다.

쿠팡은 이전부터 다양한 사건사고들을 겪었지만 김범석 창업주는 단 한 번도 직접 나서서 사과나 설명을 한 적이 없다. 지난해 쿠팡 배송기사 과로사 문제로 국회 국정감사 증인 출석을 요구 받았을 땐 대변인을 보냈다. 같은해 김 창업주는 12월 공동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김 창업주 행보를 모두 우연으로 인한 오해로만 봐야 하는걸까. 더군다나 공정위에선 쿠팡을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하면서도 김범석 창업주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총수 일가에 대한 자료 제출 등의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쿠팡의 성장과 함께 따라다니는 질문은 국적에 대한 내용이다. 쿠팡 주요 활동지는 한국이지만 김범석 창업주 국적은 미국이고 재일교포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투자했다. 글로벌 경영 시대에 기업 국적은 중요치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이 경영에서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는 건 어느 나라서나 중요한 사안이다. 쿠팡이 국내 소비자들 관심과 참여로 성장한 만큼 이곳에서 발생한 문제들에 창업주가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바라는 건 욕심일까. 기업의 책임경영과 소비자의 가치소비는 서로 맞물려있다.
이안나
anna@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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