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데이] 2009.11.28. ‘아이폰’ 오신날
디데이(D-Day). 사전적 의미는 중요한 작전이나 변화가 예정된 날입니다. 군사 공격 개시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엄청난 변화를 촉발하는 날. 바로 디데이입니다. <디지털데일리>는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에 나름 의미 있는 변화의 화두를 던졌던 역사적 디데이를 기록해 보고자 합니다. 그날의 사건이 ICT 시장에 어떠한 의미를 던졌고, 그리고 그 여파가 현재에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를 짚어봅니다. <편집자 주>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9년 11월 28일은 국내에 아이폰이 첫 출시된 날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국내 통신사 KT를 통해 아이폰3GS가 처음으로 개통된 날이죠.
2007년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애플 맥월드 행사에서 처음 공개된 아이폰은 국내에선 무려 2년 10개월이나 지난 후에 사용할 수 있게 됐는데요. 그런 만큼 우여곡절도 많고, 국내 이통통신, 휴대폰 시장에 끼친 파급도 상당히 큽니다.
오죽하면 국내 이동통신시장의 역사는 ‘아이폰’ 출시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할까요.
아이폰 도입 이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스마트폰은 1% 얼리어답터의 전유물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국내 단말 제조사와 이통사는 피처폰의 성공과 음성수익에 안주했고, 제도적으로는 위피(WIPI) 의무화 등 세계 추세와 단절된 ‘IT 갈라파고스’에 직면했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실제 애플은 아이폰을 처음 발표할 때부터 한국을 출시국가 목록에서 제외했는데, 가장 큰 이유로 ‘위피’ 탑재 의무화를 꼽았습니다. 위피는 2005년 4월 정부가 의무화한 국내 휴대전화의 공통 무선인터넷 플랫폼입니다.
이동통신업체들이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국가적 낭비를 줄이자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이는 외국 단말기의 국내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지적돼 왔습니다. 단말기 제조과정에서 국내 소비자만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별도로 부착해야 하고 이에 따른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관련 규정은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지적에 따라 국내 아이폰 출시 전인 2009년 4월 1일에 폐지됐습니다. 이는 아이폰을 비롯한 외산단말이 유입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위피 의무화 규정이 폐지됐음에도 국내 아이폰 도입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폰 도입을 위한 협상이 KT를 중심으로 추진돼 왔으나 보조금과 요금제, 단말물량 담보, 판매조건 등 여러 가지 협상 조건에서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계속 연기돼 왔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다음달폰’이라는 별명이 생겼을까요.
통신사와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데이터 수입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아이폰 출시를 최대한 막으려 했던 것도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SK그룹 최태원 회장에게 “아이폰 도입을 유보해 달라”고 요청했고, SK텔레콤은 아이폰 도입을 미룬 것으로 드러난 바 있습니다.
훗날 이석채 KT 전 회장도 사내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혁신의 아이폰을 도입했지만, 두 재벌회사가 그렇게 강력한 차단에 나설지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KT는 애플과의 협상을 타결하고 2009년 11월 22일 아이폰 판매 예약신청을 받은 이후 11월 28일 국내에 아이폰을 공식 출시했습니다. 도입 첫날인 28일 KT는 공식 런칭쇼를 서울 잠실 실내 체육관에서 개최했는데, 해외에서처럼 수백여명이 아이폰을 받기 위해 전날부터 밤새워 줄을 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1호 아이폰 개통자는 서울 방배동에 거주하는 허진석씨가 차지했습니다. 허 씨는 전일(27일) 오전 11시부터 행사장 앞마당에서 약 27시간 동안 기다린 끝에 아이폰 1호 가입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당시 그에겐 1년 무료통화권과 20만원 상당의 아이폰 전용 스피커가 경품으로 지급됐다고 합니다.
KT는 아이폰 출시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혁신하고, 음성통화와 문자 중심의 요금제에서 벗어난 데이터 요금제 시대를 열고자 했습니다. 아이폰 출시 이듬해인 2010년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도 출시하는 등 혁신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KT는 아이폰 출시의 대가(?)로 한동안 후유증을 겪기도 했습니다. 국내 제조사로부터 차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KT는 아이폰 출시 초반 삼성의 옴니아2, 갤럭시A, 갤럭시S, 갤럭시탭 등은 공급하지 못했습니다.
또, 동일모델임에도 불구하고 경쟁 통신보다 출고가를 약 3만원 높게 책정하고, 쉬운 이름 대신 복잡한 모델명으로 출시해 인지도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했습니다.
예를 들어 삼성은 스마트폰 ‘옴니아 시리즈’를 이통사별로 소개하면서 SK텔레콤은 ‘T옴니아2’로 LG유플러스는 ‘오즈옴니아’라는 이름으로 각각 표기한 반면, 유독 KT 제품만 이름 대신 ‘SPH-M8400’이라는 모델명으로 표기했습니다.
그러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아이폰 출시의 파급효과는 ‘애플 쇼크’라는 표현처럼 생각보다 컸습니다. KT는 아이폰 출시 100일만에 무려 40만대를 팔아치웠습니다. SK텔레콤도 2년 후인 2011년 아이폰 출시를 선언했습니다. LG유플러스는 2014년이 되어서야 아이폰6를 국내에 출시합니다.
2012년엔 전 국민의 60% 이상인 약 3000만명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며 그야말로 대세로 자리잡았습니다. 궁극적으로 아이폰으로 촉발된 스마트폰 혁명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산업전반의 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아이폰은 유려한 디자인과 멀티터치 등 편리하고 직관적인 사용자 환경(UI)은 물론이고 앱스토어를 기반으로 한 개발자와의 협력을 통한 혁신적 생태계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음성중심의 통화패턴을 데이터통화로 뒤바꾸는 모바일 인터넷 혁명의 신호탄으로도 간주됩니다. 훗날 MP3 플레이어와 카메라, 네비게이션 등을 스마트폰으로 대체하며 IT 산업 지형도 바꿨습니다.
또, 앱스토어의 폐쇄적인 정책은 구글의 안드로이드폰과 안드로이드 마켓이 성장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애플과 달리 구글은 초기에 안드로이드마켓의 수익을 통신사에게 넘기는 등 친이통사 정책을 펴면서도 개발자들을 우대하는 정책으로 세력을 확장했기 때문이죠.
이와 함께 아이폰의 등장은 국내 휴대전화 양대산맥이던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미래 전략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008년 삼성전자는 SK텔레콤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모바일 운영체제(OS) 기반의 ‘옴니아’를 출시하며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기대와 달리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아이폰 국내 출시를 계기로 절치부심한 삼성전자는 윈도모바일 대신 구글 안드로이드 OS로 전환, 현재까지 삼성전자의 대표 플래그십 모델로 자리잡은 1세대 ‘갤럭시S’를 2010년 공개했습니다. 이후 제품 혁신을 거듭하며 현재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최근 출시한 ‘갤럭시Z폴드3’ ‘갤럭시Z플립3’ 등 접는(폴더블) 스마트폰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KT 이석채 전 회장은 지난 2011년 “정부가 아이폰 국내 진출 시기를 적절히 조절해 삼성전자가 살았다”며 “아이폰이 빨리 나왔다면 삼성전자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반면 피처폰 시절 ‘초콜릿폰’을 비롯해 ‘샤인폰’, ‘프라다폰’ 등 독특한 컨셉의 다양한 형태의 제품을 출시하며 승승장구했던 LG전자는 아이폰 출시 이후 스마트폰 시장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며 내리막길을 걷게 됩니다.
2008년 LG전자는 노키아,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휴대폰 판매량 3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만, 계속되는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올해 7월 스마트폰 사업에서 철수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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