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나 칼럼

[취재수첩] 누구를 위한 ‘배달공시제’인가

이안나
[디지털데일리 이안나 기자] “배달공시제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산물입니다.”

정부가 지난달 25일 배달의민족·쿠팡이츠·요기요 배달비를 보여주는 ‘배달비 공시제’를 시작한 이후 배달업계 한 관계자는 이같이 비판했다. 배달공시제는 소비자들이 업체별 배달비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도록 만들어 배달비 인하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하지만 업계에선 배달비 인하 효과가 없을뿐더러 소비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는 지난달 12~13일 서울 25개구에서 일부 치킨·분식 프랜차이즈 배달비를 비교하며 “같은 장소에서 같은 업체 배달 주문 시, 배민1이 최고 배달비인 경우가 가장 많다”고 설명했다. 배달 플랫폼별 ‘줄 세우기’로 배달비 인하를 의식하도록 한 목적이다. 이는 배달비를 정하는 주체와 배달비 책정 방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다.

음식을 주문할 때 최소주문금액과 배달비를 정하는 주체는 배달 플랫폼이 아닌 자영업자다. 배달비는 소비자와 자영업자가 분담하는 구조인데, 그 안에서 자영업자들이 개별 매장 상황에 따라 그 비중을 유동적으로 변경할 수 있다. 이들 주문대응 방식·상황에 따라 수시로 배달비가 높고 낮은 업체 순위가 뒤바뀔 수 있다. 즉 배달공시제로 배달비 인하를 유도한다는 건 소비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자영업자들이 더 큰 부담을 떠안으라는 의미나 다름없다.

플랫폼 업체들은 자영업자·소비자가 지불하는 배달비 혹은 여기에 프로모션을 얹어 라이더를 확보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배달비 상승 근본적인 원인은 배달 라이더 공급 부족에 있다.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소비자·자영업자·플랫폼 기업 모두가 부담을 안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배달비 상승을 억제할 근본적인 원인을 찾지 않고 단순 배달비 비교·공시만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못한다.

한 달에 한 번 발표하는 공시는 소비자들에게도 큰 의미가 없다. 날씨나 시간대, 라이더 수요에 따라 자영업자들이 배달비·최소주문금액을 바꾸는 데 배달비 공시가 이를 실시간으로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 배달 플랫폼에서 소비자들이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정보보다도 활용도가 떨어지는 결과물인 셈이다. 배달비 인하는 소비자뿐 아니라 자영업자·플랫폼 기업 모두가 원하는 방향이다. 배달업체들과의 협업을 통해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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