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하영 칼럼

[취재수첩] 차기정부는 ‘한국판 넷플릭스’를 만들 수 있을까?

권하영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한국에서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을 최소 5개 육성하겠다.”

정부가 지난 2020년 6월 범정부 차원에서 발표한 ‘디지털미디어생태계 발전방안’을 통해 한 약속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OTT에 법적 지위를 부여해 세제 지원을 하고, 1조원 규모의 문화콘텐츠 펀드를 조성하는 등 대대적인 지원을 공언했다. 달성 시점은 2022년, 즉 올해로 다가왔다. 당연하게도, 현 시점에서 이를 지키기는 어려워보인다.

디지털미디어생태계 발전방안은 청와대와 국무조정실 주도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등 미디어 관련 주무부처가 힘을 모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패착이었을까. 범정부 정책이란 사실이 무색하게, 부처간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OTT에 대한 법적 지위 부여’는 관련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좌초됐다. 지난해 말 OTT를 ‘특수 유형의 부가통신사업자’로 규정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정부안으로 제출됐지만, OTT를 전기통신사업법상 ‘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정의하도록 한 추경호 의원안이 함께 제시되자 방통위가 반대표를 던졌다.

결과적으로, 과기정통부와 방통위는 OTT를 ‘특수 유형의 부가통신역무’로 정의하는 것에 합의를 했다. ‘사업자’ 지위에 대한 정의는 미뤄두고, 일단 ‘역무’만 새로 정의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방통위가 OTT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과기정통부 소관법인 전기통신사업법으로 OTT를 정의하는 것에 견제구를 날린 것이란 시각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방통위는 그 후 자체적으로 제정을 추진 중인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에 OTT를 포괄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를 두고 과기정통부와 문체부가 불편한 심경을 내비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문체부도 문체부대로, 소관법인 ‘영화및비디오물진흥법’ 개정을 통해 OTT를 ‘온라인비디오물제공업’으로 지정하려 하고 있다.

당초 OTT에 대한 법적 정의가 필요한 이유는, OTT를 지원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업은 부처들간 주도권 싸움이 우선되면서 뒤로 밀려났다. 결국 디지털미디어생태계 발전방안을 발표한 지 1년8개월이 지나도록, 글로벌 OTT 5개 육성은커녕 가장 기본적인 세제 지원조차 이행되지 못했다.

그동안 넷플릭스는 아니러니하게도 한국 콘텐츠 경쟁력을 발판삼아 오리지널 콘텐츠 ‘오징어게임’과 ‘지옥’ 등으로 글로벌 흥행을 거머쥐었다. 뿐만 아니라, 디즈니플러스·애플TV플러스 등에 이어 HBO맥스 등 글로벌 OTT 공룡들이 우후죽순 국내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그 사이 토종 OTT들은 글로벌 격전에 휘말리고 있다.

더 문제는 대선 이후다. 차기 정부 들어서는 거버넌스 개편을 이유로 상당한 자원과 시간이 조직 구성에 소모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기존 정책의 연속성보다는 대선후보들의 공약에 따라 거시적인 정책 방향을 잡는 데만 다시 하세월이 걸릴지도 모른다. OTT를 비롯한 미디어 정책은 단절되고, 부처간 대립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규제 원칙 아래 OTT 육성·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디지털미디어생태계 발전방안의 정신은 그대로 이어져 나가야 한다. 세제지원과 자체등급분류제 도입 등 국내 OTT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방향을 유지하되, 부처간 갈등을 씻고 이제는 속도를 내야 한다. 바로 차기 정부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일이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고 글로벌 플랫폼과 경쟁할 토종 플랫폼들을 갖추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다. 전 세계적인 K-문화 신드롬에서도 알 수 있듯, 콘텐츠 경쟁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한국판 넷플릭스’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마냥 허황됐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차기 정부에서의 목표 달성을 기대한다.
권하영
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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