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그 어떤 때보다도 지금 이 순간이 위태롭다고 여겨지는 요즘입니다.”
지난주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의 엔지니어가 이재용 부회장과 경계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에게 보낸 이메일의 한 문구다. 실제로 삼성전자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위기 요인으로 컨트롤타워 부재, 내부 경쟁 심화 등이 꼽히지만 본질은 아이러니하게도 만능 정보기술(IT) 기업이라는 부분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설계와 생산, 스마트폰 등 시장에 모두 진출한 유일무이한 회사다. 퀄컴, 인텔, TSMC, SK하이닉스, 애플 등 각 분야에서 수위를 다투는 업체들을 경쟁사로 두고 있다.
우선 반도체. 지난 2019년 ‘반도체 비전 2030’ 발표 이후 시스템반도체 육성을 본격화했다.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CMOS 이미지센서(CIS) 등을 설계하는 시스템LSI사업부와 이들 제품을 생산하는 파운드리사업부로 나뉜다. 기존 주력인 D램과 낸드플래시를 만드는 메모리사업부까지 트라이앵글을 이룬다.
메모리의 경우 후발주자 추격이 거세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이 빠르게 기술 격차를 좁혀오고 있다. 시스템LSI와 파운드리는 샌드위치 신세다. 반도체 강대국인 미국과 대만이 앞뒤로 압박하는 가운데 이제는 중국까지 잠재적 경쟁사로 떠오르고 있다. 하나만 챙기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다 잘하려다 보니 쉽지 않다.
가장 입김이 센 메모리는 가장 많은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다만 이번 이메일이 차세대 D램 프로젝트 난항 이야기임을 고려하면 여유로운 처지는 아니다. 미세공정 난도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2년 이상 격차를 보였던 마이크론이 반년 안쪽으로 쫓아오기도 했다. 최신 제품에서는 세계 최초 타이틀을 빼앗겼을 정도다.
나머지 두 분야는 더 심각하다. ‘갤럭시S22’ 시리즈 관련 논란이 AP 설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면서 시스템LSI의 기술경쟁력에 의문부호가 붙기 시작했다. 이를 양산한 파운드리에도 불똥이 튀었다. 복합적인 문제인 만큼 누구의 잘못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으나 위기론이 불거진 건 사실이다. 앞서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 이슈까지 겪은 만큼 이미지 타격은 컸다. 삼성 파운드리의 강점이 ‘유이한’ 첨단 공정 수행능력이었으나 2년 뒤 가세할 인텔의 존재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다.
스마트폰 역시 다르지 않다. 플래그십 모델에서는 애플이 승승장구하고 이하 라인업에서는 중국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게임 최적화 서비스(GOS) 사태에서 촉발된 신뢰도 하락은 향후 사업을 힘들게 만들 요소다. 가격경쟁력 확대를 위해 계열사와 국내 협력사의 희생을 강요해온 것도 아쉬운 지점이다.
그동안 이 모든 걸 잘해왔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삼성전자는 대단한 기업이다. 하지만 한 직원의 말처럼 이번 위기는 이전과 확연한 온도차가 느껴진다. 사업 구조상 ‘선택과 집중’이 여의치 않은 삼성전자로서는 전반을 아우르는 전략이 필요한 시기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