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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이 절대 망하지 않을 이유, 마블·WB가 인정한 CGV [나는 개발자다]

강소현

왼쪽부터 이중훈 스크린X Studio 프로듀서, 오윤동 스크린X Studio 팀장, 이지혜 4DX Studio 팀장, 고승현 4DX Studio 프로듀서
왼쪽부터 이중훈 스크린X Studio 프로듀서, 오윤동 스크린X Studio 팀장, 이지혜 4DX Studio 팀장, 고승현 4DX Studio 프로듀서

[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 스크린 속 자동차가 출발하자 의자도 함께 움직인다. 단순히 좌우로 가볍게 흔들리는 수준이 아니다. 제자리에서 상하좌우, 또 양옆으로 크게 선을 그리며 격하게 움직였다. 이어 주인공이 창을 열자, 바람이 볼을 스쳤다. 차의 속도를 높이자 머리도 같이 휘날렸다. 땅의 균열이 일자, 엉덩이에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이윽고 차가 추락할 듯 기울자, 의자도 같이 앞으로 기울며 등과 엉덩이 쪽에 진동이 강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국, 우리는 더 강해졌습니다. 극장의 밸류(Value·가치)를 관객들에 증명해 보여야 했습니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영화관은 사양산업으로 여겨졌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비대면 문화 확산으로 관객들이 영화관에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영화상영 시스템은 묵묵히 조용한 성장을 이어왔다. 일부는 “그래 봤자지”라고 생각하겠지만, 4D 등 특화관이 주는 시청 경험은 코로나 발발 전과 비교해 확연히 달라졌다. 국내 최대 영화사인 CJ CGV에서 특화관을 책임지고 있는 이지혜 4DX Studio 팀장·고승현 4DX Studio 프로듀서·오윤동 스크린X Studio 팀장·이중훈 스크린X Studio 프로듀서를 <디지털데일리>가 만나, 영화관이 가지는 가치에 대해 들어봤다.

◆효과는 풍성, 스토리와 찰떡…기술 성숙기에 돌입한 4DX

4DX와 스크린X는 CGV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상영시스템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CGV의 역할은 단순 영화 상영에서 그치지 않는다. CGV는 영화 제작에도 관여한다. 관객에 색다른 경험을 주기 위해 감독·제작사와 협의 하에 의자가 움직이거나 바람이 부는 등의 특수효과를 연출하거나, 영화 장면을 일부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CGV는 이런 점을 높이 평가받아 2017년과 2019년 미국 경제 매체 패스트 컴퍼니가 발표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오감체험 특화관인 4DX의 효과는 총 15명의 PD가 책임지고 있다. 제작사로부터 개봉 전 미리 작품을 받아 콘텐츠 분석 작업을 거친 뒤 컨셉에 맞는 효과를 기획하는 방식이다. 기획부터 연출까진 대략 1달이 소요된다. 작업이 완성되면 CGV 내부와 제작사에서 QC(Quality Check) 과정을 거친다.

이지혜 4DX Studio 팀장은 “4DX관은 2009년 CGV상암에 처음 생겼다. 이스라엘 시네마파크사와의 제휴를 통해 장비와 콘텐츠를 공급받아 ‘스마트플렉스’관을 선보인 것이 시작이었다”며 “어린이를 타겟으로 한 짧은 교육용 콘텐츠에 모션체어를 결합한 것이 굉장히 많은 호응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호응에 힘입어 같은해 9월엔 공포영화인 ‘블러디 발렌타인’의 4DX 버전을 선보였다. 유혈낭자한 19세 영화임에도 불구, 당시 영화티켓은 몇 배 가격에 거래될 만큼 큰 인기를 끌었다.

올해로 도입 13년을 맞은 4DX는 기술적으로 성숙기에 이르렀다. 연출 효과가 풍성해진 것은 물론,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집중도를 더했다.

먼저 연출 효과는 정교해졌다. 이전까지 모션체어의 방향성이 양옆·앞뒤·상하 등 3가지만 있었다면 현재는 양옆으로 크게 움직이는 ‘스웨이&트위스트’(Sway&Twist) 모션이 추가됐다. 또 상영관 전체에 아주 가는 물 입자를 바람과 함께 날려 비바람이 몰아치는 환경을 구현해내는 등 시각적인 효과가 다양해졌다.

연출 과정에서 초점을 두는 부분도 달라졌다. 과거 관객에 자극을 주는 것에 중점을 뒀다면 지금은 스토리의 집중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효과를 연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고승현 4DX Studio 프로듀서는 “최근 개봉한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의 경우, 화려하면서 비현실적인 마법세계를 표현해내는 데 집중했다. 이에 안개효과를 많이 사용했다”며 “단순히 효과를 많이 넣는 게 아니라 꼭 필요한 장면에 각인이 될 수 있도록 효과를 넣었다”고 말했다.

또 ”환경 연출하면서 제일 신경썼던 게 진동에 대한 연출“이라며 ”동물이 나오는 장면들에서 울음소리를 진동으로 표현했는데 원근이라던가, 특유의 움직임을 진동으로 잘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영화 군데군데 그런 세심한 연출들이 있으니 찾아보면서 감상한다면 더 재밌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보헤미안 랩소디‘ 명장면, CGV가 연출

4DX와 비교한다면 스크린X는 최근 도입된 상영시스템이다. 전방 스크린 뿐 아니라 좌우벽면을 동시에 활용하는 기술로, 2019년 개봉된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대중에 잘 알려졌다.

당시 영화에는 실제 퀸(Queen)의 멤버인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가 카메오로 출연한 가운데 이 장면은 CGV가 직접 연출해 스크린X 버전에만 담겼다. 이 사실이 대중에 알려지면서 국내에서만 100만 관객이 스크린X버전을 보기위해 영화관을 찾았다. 지난 2월 개봉한 언차티드(Uncharted)에도 CGV는 실제 본편엔 담기지 않은 배우 톰 홀랜드의 테이크들을 옆면에 담아내 팬들의 만족도를 극대화했다.

오윤동 스크린X Studio 팀장은 “스크린X하면 좌우 벽면으로 화면을 단순 연장한다고만 생각할 수 있지만, CGV가 직접 모션 그래픽이나 다양한 소스를 활용해 아이데이션(Ideation)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좌우벽면으로 펼쳤을 때 효과가 좋을 것 같은 장면을 이른바 ‘Key Scene(키씬)’이라고 하는데, CGV는 영화 제작단계에서 이런 키씬을 선정, 기획해 CG업체에 외주를 맡긴다.

스크린X 도입 당시에는 키씬 제작 가능여부가 과제였다. CG에만 수천억원을 쏟아붇는 할리우드 영화의 장면들을, 불과 몇 주 안에 연장 제작해 붙인다는 게 당시엔 불가능처럼 여겨졌다.

오윤동 팀장은 “대한민국에 모든 VFX(특수효과) 회사를 찾아가 의뢰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아무것도 없는 벽면이 이걸 어떻게 만드냐’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장면 연장해볼까요?"

“이거 절대 못해요”

하지만 VFX 회사들과 합을 맞추고 노하우가 쌓이며 제작의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 단순 화면을 연장하는 것에서 넘어, ‘관객이 스크린X를 통해 보고싶은 장면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거장들이 인정한 상영시스템…OTT와 공존 ‘자신감’

다만 4DX와 스크린X 도입이 쉬웠던 건 아니다. 제작사의 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스크린X의 경우 키씬 제작을 위해선 제작사로부터 본편 CG 데이터를 사전 공유받아야 하는데, 초반엔 갈등도 있었다. 감독이 연출하지 않은 새로운 연출을 해야하기 때문에 아이디어를 제안했다가 퇴짜맞는 경우도 빈번했다.

현재 대다수의 영화가 4DX·스크린X 버전으로 제작되는 건, CGV의 상영시스템이 거장들로부터 인정받고 있음을 반증한다.

이중훈 스크린X Studio 프로듀서는 ”’신비한 동물들과 덤블도어의 비밀‘에서 호그와트의 랜드스케이프(Landscape·풍경)가 펼쳐지는 씬 10초 분량을 스크린X로 제작했는데, 워너브라더스의 VFX 담당자들이 QC를 보고선 ’이 부분을 기획해줘서 뜻깊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귀띔했다.

이지혜 팀장도 “보안에 민감한 마블이 유출을 감수하고 CGV에 3~4개월 전 영화를 맡기는 것은 서로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며 “여러해 협력하면서 상호 신뢰가 구축된 결과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런 기술들을 근거로, CGV는 OTT와 상생하는 미래를 자신했다. 4DX·스크린X 등 독자적인 상영시스템을 바탕으로 OTT와 차별화된 상영 경험을 계속 제공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오윤동 팀장은 영화산업을 ’공간산업‘에 빗대며, “요새 유행처럼 나오는 말이 ‘영화관은 위기다’다. OTT의 시장이 커지고 있고 그 속에서 영화관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감정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이 공간 안에서 실제 영화를 보는 것 외에 관객들에 어떤 추억을 만들어줄 것이지를 계속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혜 팀장은 “영화 속 상상만 했던 그런 움직임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건, 영화관에서만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경험”이라며 “OTT를 즐기는 사람들 중 ‘4DX 각이다’ 싶은 영화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 콘텐츠들의 경우 영화관에서 향유하며 OTT와 상생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강소현
ksh@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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