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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부장 유망기업탐방] '웨이퍼 절단장비' 에스알, 日 디스코 독점 깬다

김도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는 세계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만들기 위한 소재·부품·장비(소부장)는 해외의존도가 높다. 일본 수출규제는 한국 기업의 약점을 부각했다. <디지털데일리>는 소부장 육성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 기업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등 유망기업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면서 공급망에 변화가 감지된다. 반도체 제조사는 안정적인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협력사 다변화에 나서는 상태다. 기존 거래처가 원하는 물량을 적기 제공하지 못하면서다. 중소중견 업체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대안 마련이 더욱 시급해졌다. 이에 소재 및 장비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약세였던 국내 기업에 기회가 주어지는 분위기다.

반도체 웨이퍼를 자르는 ‘다이싱 소(Saw)’ 장비도 마찬가지다. 소 장비는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지만 웨이퍼 단계에서 가장 높은 정밀도를 요구한다. 미세한 회로 패턴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빠르고 깔끔하게 잘라내야 하기 때문이다. 기술장벽으로 인해 신규 업체가 진입하기 어려운 분야로 꼽힌다.

그동안 일본 디스코가 사실상 독점해왔다. 국내 기업 에스알은 중국 JCET와 거래를 트면서 시장 진출에 성공했다. JCET는 싱가포르 스태츠와 미국 칩팩을 품은 세계 3위 반도체 조립·테스트 아웃소싱(OSAT) 업체다.

에스알은 지난 2013년 만들어진 회사다. 1990년대 말부터 반도체 장비회사에서 근무하던 이장희 대표가 세웠다. 지난 26일 경기 시흥 본사에서 만난 이 대표는 “과거 대만 반도체 전시회에서 디스코 부스를 들러 소 장비를 봤다. 한국에서 보지 못한 설비”라면서 “시장조사를 해보니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뚜렷한 경쟁사가 없었다. 사업아이템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이 대표는 2011년부터 개인 사업자로 운영하다가 투자를 받아 2013년부터 에스알을 차렸다. 반자동 소 설비를 제작하는 등 어느 정도 성과를 냈으나 중국에서 사기를 당하는 등 초기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는 “신용불량자가 되고 엔지니어 월급도 못 줄 정도로 힘들었으나 기술 개발은 계속했다”고 이야기했다.

소 장비 핵심은 칼날(블레이드)의 평탄도를 맞춰야 하는 부분이다. 칼날 두께는 34마이크로미터(㎛)로 매우 얇아 흔들리기 쉽다. 이를 고정하면서 빠르게 돌리는 게 필수적이다. 에스알은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 둘 다 자체 개발했고 12인치, 8인치, 6인치 웨이퍼 모두 대응 가능한 제품을 생산했다.

원천기술을 확보하자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대형 고객사 위주로 대응하던 디스코에 후순위로 밀린 중소업체가 에스알을 찾은 덕분이다. 에스알은 고객사 요청에 따라 커스터마이징 제품을 생산하는 등 맞춤형 서비스를 지원했다. 국내 테라셈을 필두로 필리핀, 중국 고객사를 확보했다.

이 대표는 “2021년 세미콘차이나에 참가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칩팩코리아를 통해 웨이퍼 소 장비 테스트를 진행한 JCET와 장비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올해 1분기 중국에서 JCET 본사 총괄을 만나 장기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JCET에 따르면 에스알 제품이 절단 품질, 생산량 등에서 디스코와 유사한 수준에 도달했다. 현재 JCET 쑤첸 공장에서 에스알 데모 장비가 가동 중이다.

JCET 레퍼런스가 생기자 국내외 OSAT에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OSAT 기업이 즐비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이 대상 국가다.

에스알은 절단 기술을 기반으로 사업 범위를 넓히고 있다. 삼성전기 협력사인 파트론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카메라모듈을 제작한다. 에스알은 디스코와 경합을 이겨내고 파트론의 모듈 소 장비 수주를 따냈다. 대응 속도, 커스터마이징 수준 등에서 디스코 대비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후문이다. 드림텍, 마이크로칩 SP반도체 등도 고객사로 이름을 올린 상태다.

또 다른 분야는 전기차다. 전기차는 전력 소모를 최소화하기 위해 라이트에 발광다이오드(LED) 반사판을 투입하는데 이를 자르는 장비를 에스알이 공급했다. 국내 완성차업체 1차 벤더에 제공 중이다. 이 역시 디스코와 경쟁을 뚫고 수주했다. 현재 디스코는 웨이퍼 소 장비에 집중하는 가운데 이마저도 주문이 꽉 차 대형 업체를 제외한 고객사 대응력이 떨어진 상태다.

지난해 에스알 연간 매출은 100억원 내외다. 올해는 작년 실적에서 수십억원 추가하는 게 목표다. 이 대표는 “3년 후 코스닥 상장에 도전할 계획”이라면서 “기술특례상장 등으로 좀 더 일찍 상장할 수도 있겠지만 내실을 키워서 뛰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중국은 미국 제재로 미국 일본 유럽 등 반도체 장비 구매를 못 하고 있다. 이에 에스알 등 국내 업체로 연락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 에스알은 대만 러시아 동남아 국가 등 고객사와도 꾸준히 협의 중이다.
김도현
dobest@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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