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르포] '부산의 명물'…삼성전기 FC-BGA 공장 가보니

부산=김도현
- 수천억원 투자로 글로벌 톱3 목표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부산에서 가장 많은 인력이 한데 모인 곳은 어딜까. 자동차를 생산하는 르노도 배를 제작하는 한진중공업도 아니다. 쌀 한 톨 250분의 1 크기인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와 눈으로 보이지 않는 미세회로가 그려진 인쇄회로기판(PCB)을 만드는 삼성전기가 주인공이다.

14일 부산 강서구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을 찾았다. 1990년대 초반 구축 초기에는 자동차 부품을 양산하는 곳이었다. 삼성전기가 주력 사업을 전자부품으로 바꾸면서 MLCC와 PCB 등을 제조하는 시설이 들어섰다. 현재는 8만제곱미터(㎡) 부지에서 6개 생산 공장과 기술개발동, 원료동, 용역동 등이 바쁘게 돌아가는 부산 최대 사업장으로 거듭난 상태다.

이날 삼성전기 패키지 지원팀장 안정훈 상무는 “(부산사업장은) 대도시 인근 거점으로 인력 채용이 유리하다”며 “부산에서는 하이엔드 제품 위주로 생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부산사업장은 삼성전기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지고 있다. 일단 회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MLCC. 이 제품은 전기를 저장했다가 회로에 일정량의 전류가 흐르도록 제어하는 댐 역할을 한다. 부품 간 전자파 간섭현상도 막아준다. 전자제품에 필수적이다. 그동안 스마트폰, 가전 등에 투입되는 정보기술(IT)용 MLCC가 메인이었다. 삼성전기는 성장 속도가 느려진 IT용 대신 전장용 MLCC로 사세 확장을 추진 중이다. 부산은 중국 톈진과 전장용 MLCC 생산을 양분하는 지역이다.

최근 부산에서 주목받는 아이템은 PCB로도 불리는 반도체 패키지 기판이다. 이는 반도체와 메인 기판 간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고 반도체를 외부 충격 등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 반도체가 두뇌라면 패키지 기판은 뇌를 보호하는 뼈와 뇌에서 전달하는 정보를 각 기관에 연결해 전달하는 신경과 혈관이다.

구체적으로 반도체는 단자 사이 간격이 100마이크로미터(㎛) 수준인 반면 메인 기판은 350㎛로 약 4배 차이가 난다. 이 간극을 줄여주는 것이 패키지 기판이다.

패키지 기판에 여러 종류가 있지만 삼성전기가 집중하는 제품은 플립칩(FC)-볼그리드어레이(BGA)다. 기존에는 반도체와 기판을 와이어가 연결했다면 공정 미세화로 방식이 바뀌는 추세다. 대안은 공 모양의 솔더볼로 잇는 플립칩 구조다. 늘어난 입출력(I/O) 단자와 줄어든 칩과 기판 간 거리로 더 많이 더 빠르게 신호를 전달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플립칩 기판으로는 크게 FC-BGA와 FC-칩스케이패키지(CSP)가 있다. FC-CSP는 스마트폰에 투입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용으로 주로 쓰인다. FC-BGA는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에 활용된다. FC-BGA가 좀 더 고성능이면서 면적이 넓다.
이날 방문한 부산사업장 한쪽에는 FC-BGA 생산라인이 쉴 새 없이 가동되고 있었다. 삼성전기는 부산을 비롯해 국내 세종, 베트남 등에서 FC-BGA를 만드는데 부산이 ‘마더팩토리’를 담당하고 있다. 마더팩토리는 제품 개발과 제조 중심이 되는 공장을 일컫는다. 최신 기술을 선제 도입하고 이외 지역으로 확산하는 핵심 기지다. 역할에 맞게 부산 FC-BGA 공장 곳곳에는 베트남에서 온 엔지니어들이 교육을 받고 있었다.

삼성전기 패키지 개발팀장 황치원 상무는 “연구개발(R&D) 거점은 부산이다. 여기서 검증이 끝난 걸 베트남에 적용하는 시스템”이라고 언급했다.

삼성전기는 지난해 말부터 1조9000억원을 FC-BGA 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FC-BGA 공급난이 장기화하면서 일본과 대만 업체를 조단위 투자를 단행한 가운데 삼성전기도 수요 대응 차원에서 결단을 내렸다.

지난해 기준으로 삼성전기 패키지 기판 생산실적은 70만3000㎡로 축구장 100개 규모다. 설비 가동률이 100%에 달할 정도로 주문이 밀려드는 분위기다. 부산사업장이 분주한 이유다.

반도체 공장에는 생산 과정에서 초미세먼지 등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클린룸을 설치한다. 반도체 정상 작동을 위해서는 청결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패키지 기판도 마찬가지다. 반도체와 유사한 청정 시설이 필요하다. 이에 FC-BGA 생산라인에 들어갈 때는 방진복을 입어야 하고 이곳 역시 클린룸이 마련된다. 온도관리가 이뤄지고 있으나 방진복을 입은 탓에 땀이 흘렀다.

공정도 반도체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기판에 반도체 수준의 회로 패턴을 새기기 위해 깎고 뚫고 뿌리고 입히는 등의 과정이 수차례 반복된다. 삼성전기 공장 작업자는 “고사양 FC-BGA는 제작 기간이 총 3~4달 걸린다”고 설명했다.

FC-BGA는 쌓고 뚫는 공정이 핵심이다. 한정된 기판 안에 많은 회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4층, 8층. 10층 등 여러 층으로 만들어진다. 층간 회로 연결을 위해 구멍을 뚫어 전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도금 과정도 거친다. 연결 구멍을 비아(Via)라 부르는데 50㎛ 크기에 불과하다.

또 다른 작업자는 “구멍이 미세해지면서 레이저 드릴로 뚫고 도금 작업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도금 후에는 남는 부분을 코팅하고 화학 작용을 통해 필요한 회로만 남긴다. 삼성전기는 머리카락 두께 40분의 1인 3㎛ 내외 회로 선폭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도 보유 중이다.

이러한 기술 노하우를 바탕으로 삼성전기는 올해 하반기부터 부산사업장에서 서버용 FC-BGA 양산에 돌입한다. 지금까지는 PC용만 납품했다면 서버용으로 영역을 넓히는 셈이다. 데이터센터에 탑재되는 CPU 및 GPU용 기판인 만큼 PC 제품보다 높은 신뢰성과 성능을 요구한다. 최근 CPU GPU 외에도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관련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황 상무는 “빅테크 기업이 수 백명 엔지니어를 뽑아서 상용 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삼성전기에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라면서 “일본 이비덴 등과 글로벌 3강으로 도약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부산=김도현
dobest@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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