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안나 기자] "본 출자금을 선뜻 낼 수 있는 기업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국토교통부와 9개 배달 관련 업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소화물 배송대행 공제조합(배달업 공제조합)’ 설립을 두고 한 업체 관계자가 한 말이다. 지난 2월 정부와 산업계는 배달업 공제조합 협약식을 맺은 이후 연내 출범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본 출자금 납입을 두고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달 계획했던 창립총회도 연기돼 아직 소식이 없다.
물론 배달업 공제조합 설립 취지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배달 플랫폼사들이 공동출자해 공제조합을 만들면 해당 플랫폼 소속 라이더들이 민간보험 대비 15%가량 저렴하게 유상운송(돈을 받고 물건·음식을 배달)용 이륜차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고질적 문제로 꼽히던 값비싼 오토바이 보험료를 낮추기 위한 목적이다. 장기적으로 배달라이더 안전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제조합 설립 과정에서 업계 시름만 깊어지고 있다. 정부와 업계가 함께 마련하려던 출자금 142억원은 국토부가 예산 확보에 실패하면서 온전히 기업 부담으로 넘어왔다. 어렵사리 사전출자금 납입이 대부분 이뤄졌지만 진짜 문제는 본 출자금이다. 회사 규모별로 3~20억원 정도를 출자해야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연초와 달리 현재 배달업계 분위기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엔데믹 전환과 글로벌 경기불황 등이 함께 진행되면서 비용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공격적 프로모션은 이전 대비 크게 줄었으며 일부 배달대행 플랫폼사들은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대다수 업체가 적자 상태에서 억단위 기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배달 이륜차 손해율이 130%라는 점을 고려하면 첫 회 출자금을 지불한다 해도 이후 추가 자금이 필요할 수 있다. 더군다나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 등이 보험회사와 손잡고 시간제 보험을 도입하면서 배달 공제조합 필요성은 한층 희석됐다. 실제 배달 수행 시간 기준으로 보험료를 산정해 비용 부담을 낮췄기 때문이다. 라이더들이 낮아진 보험료를 체감하려면 그만큼 출자금이 커져야 한다는 딜레마도 있다.
배달업계 입장에선 손해를 감수하는 상황임에도 출자 참여 기업에 대한 세제 등 혜택 논의마저 부재한 상황이다. 배달 라이더 안전관리는 당연히 강화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를 위해 정부와 업계가 손잡았다는 건 긍정적이다. 그러나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면 연내 성과를 내는 데 급급해 한쪽 희생을 강요하기보다 면밀한 분석과 검토가 병행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