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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카도, 테슬라도 만들고 싶다”는 폭스콘… 그러나 쉽지않은 이유

박기록
지난 18일(현지시간) 홍하이그룹의 류영웨이 회장이 폭스콘의 연례 기술 행사인 'HHTD22'에서 전한 영상 메시지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묵직했다.

애플의 아이폰을 비롯해 전세계 전기전자제품의 40%를 폭스콘이 만들었듯이 앞으로는 ‘전세계 전기차(EV) 제조 공장’의 역할도 맡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폭스콘은 독자적인 전기차 브랜드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류회장은 “전기차 시대의 개막은 대만에 있어 100년만에 한 번 찾아온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주문자위탁제조(OEM)에 충실했던 폭스콘의 역할이 전기차 시대에도 변함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회장의 이번 영상 메시지에선 아직 출시 일정이 베일에 쌓여있는 ‘애플카’(Apple Car)가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다. 다만 폭스콘이 애플카 제조에 오래전부터 강렬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류회장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선 “(폭스콘이) 언젠가 테슬라도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류 회장은 "이미 폭스콘은 지난 2년간 도시형 버스, SUV, 5개의 EV 모델을 선보였다"며 "ICT 제조 분야에서 48년간 축적된 경험을 활용해 전기차 설계 시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개발 비용을 3분의 1로 절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앞선 ICT산업에서의 경험을 통해 얻은 개방성, 크로스오버 협업, 개발비용 절감 노하우가 전기차 제조 혁신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면서 류회장은 폭스콘과 유론모터가 합작해 만든 ‘폭스트론’이 올 9월초에 출시한 전기차 ‘넥스젠’(Luxgen n7)'의 우수성을 소개했다.
류영웨어 홍하이그룹 회장이 지난 18일 'HHTD22'에서 영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류영웨어 홍하이그룹 회장이 지난 18일 'HHTD22'에서 영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폭스콘의 야심찬 구상, 그러나 현실적인 괴리감

현재 고질적인 공급망 문제, 고인플레이션의 지속, 전기차 제조 원가가 치솟고 있는 상황임으로 고려하면, 전세계 완성차 업계에선 류 회장의 이런 파격적인 제안은 충분히 솔깃할만 하다.

천하의 테슬라 마저도 최근 3분기 실적발표에서 제조원가 상승에 따라 영업마진율이 정체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과연 ‘세계의 전기차 제조 공장’을 꿈꾸는 류회장의 이같은 야심이 현실화될 수 있을까.

그러나 결코 쉽지않다. 무엇보다 전기차는 스마트폰이 아니다.

산업적 가치와 경중에 있어 직접 비교가 안된다. 미국, 중국, 인도, 유럽 등 전기차 시장을 움직이는 주요 국가들의 핵심은 ‘경제성’아니라 출혈을 감수하고라도 선점해야할 ‘미래 먹거리’로 인식하고 있다.

막대한 전기차 중심의 산업 생태계의 크기, 적지않은 고용유발 효과, 모빌리티와 친환경을 아우르는 미래 산업적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전기차를 핵심 산업으로 육성하고자하는 의지를 저마다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류회장이 강조한 ‘저렴한 전기차 제조비용’과 같은 경제적 논리는 최소한 현 단계에선 오히려 순진한 발상이다.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IRA)에서 보듯, 정부가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면서까지 미국 중심의 생산기지화를 노골화하고 있다. 또한 주정부는 50% 가까운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약속하고 있다.

미국은 '전기차 시대'에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어느때보다 강하다. 폭스콘이 만약 ‘애플카’를 제조하게되더라도 그것은 미국내 생산 시설에서나 가능한 시나리오다.

오는 2030년 이후, 연간 300만대 전기차 시장 사이즈로 평가받고 있는 인도도 모디 총리가 앞장서서 미국의 ‘IRA’못지않은 실질적인 허들을 만들고 있다.

자국내에서 전기차 생산 시설을 가동하는 자동차 기업들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주고 있다. 그 혜택이란게 다른게 아니다. 외국에서 수입되는 전기차의 관세를 100% 부과함로써 자국내 생산 전기차들과 분명한 차별화를 뒀다. 결국 인도 시장에 전기차를 팔고 싶으면, 반드시 인도내에 전기차 제조시설을 만들라는 압박이다.

폭스콘은 인도에 아직 전기차 생산 시설이 없다. 다만 류회장은 이번 영상 메시지에서 “인도 자동차업체와 전기차 제조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그것이 인도 공장 설립 조건을 포함하는 것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한편 니컬 등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를 공급하는 자원부국 인도네시아도 전기차 제조 공장의 자국내 유치를 점차 노골화하고 있다.

지난 8월,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테슬라에게 배터리 공장 뿐만 아니라 전기차 제조(조립) 시설도 인도네시아에 건립할 것을 요구했다. 블룸버그는 인도네시아가 단순히 천연 자원을 활용해 배터리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기차 제조 시설 등 거대한 전기차 생태계를 갖춘 나라를 원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전기차 생산시설 현지화의 수단으로 ‘니켈’ 수출세(Export tax)를 무기로 꺼내들고 있다. 수출세는 니켈의 수출을 막기위해 부과하는 것이다.

테슬라의 경우, 인도네시아 니켈 기업들과 5년간 약 50억 달러 상당의 계약을 체결한 상태다.하지만 향후 ‘니켈 수출세’가 늘어나면 전기차 배터리 제조원가가 치솟을 수 밖에 없다. 결국 테슬라가 이를 ‘니켈 수출세’를 내지 않으려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배터리를 제조하거나 전기차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류영웨이 회장이 이러한 각국의 입장을 모르고 ‘세계 전기차 제조 공장의 꿈’을 강조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시간이 지나면 최후의 승자는 ‘최적화된 경제 논리’라는 역사적 경험칙을 믿으며 또 한번의 과감한 베팅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류 회장 말대로, 어쩌면 100년에 한 번 찾아온 기회를 좌고우면하면서 소심하게 날려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전기차 업계도 마찬가지다.

박기록
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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