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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결산/반도체] 호시절 끝나고 찾아온 겨울…패권 다툼 심화

김도현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상고하저(上高下低)’

2022년 반도체 산업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이렇다. 지난해 이어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공급 부족 사태가 이어졌으나 하반기 들어 분위기가 급반전됐다. 코로나19 국면 완화로 비대면 일상이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정보기술(IT) 기기 및 서버 수요가 줄어든 동시에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에 돌입하면서 시장이 무너졌다.

이와 별개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국 반도체 생태계 강화 움직임은 더욱 거세졌다. 미국의 중국 견제가 노골화한데다 일본, 유럽 등까지 영내 반도체 공장 유치 작전을 펼친 영향이다. 제조에 강점이 있는 한국과 대만은 선택과 집중을 강요받았다. 확실한 노선을 탄 대만과 달리 한국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차가워진 메모리, 식어버린 시스템반도체

충격파는 업황에 따라 롤러코스터 심한 메모리부터 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분기까지만 해도 역대급 실적으로 정점을 찍었으나 상반기 말부터 글로벌 인플레이션 징조가 나타나면서 순식간에 상황이 달라졌다.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 옴디아 등 시장조사기관은 일제히 성장률 또는 매출 전망을 하향 조정했고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은 급락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 10월 PC용 D램 PC용 범용제품 더블데이터레이트(DDR)4 8기가비트(Gb) 1G*8 제품 고정거래가격은 평균 2.21달러로 2016년 6월 측정 이래 최저가를 찍었다. 낸드 역시 5개월(6~10월) 연속 몸값이 떨어졌다.

3분기 D램과 낸드 시장 규모는 각각 전기대비 25~30% 수준으로 축소하면서 메모리 겨울은 현실화했다. D램의 경우 1분기 만에 10조원이 빠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빅3 등 주요 업체들의 재고자산이 불어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메모리 의존도가 높은 SK하이닉스는 4분기 적자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던 반도체 설계(팹리스)와 위탁생산(파운드리)도 상대적으로는 영향이 덜 했으나 흐름은 같았다. 전방산업 부진이 본격화하면서 팹리스 주문량이 점차 줄어들었고 8인치(200mm), 12인치(300mm) 가릴 것 없이 쉴새 없이 돌아가던 파운드리 공장 가동률은 비례해서 떨어졌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엔비디아, AMD, 미디어텍 등은 3분기 들어 실적 하락을 겪었다. 파운드리의 경우 영향력이 압도적인 TSMC는 같은 기간 전기대비 두 자릿수 성장을 보였으나 삼성전자, UMC, SMIC 등 후발주자는 주춤했다.

◆칩4 그리고 첨단공정 경쟁 심화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이어진 중국 반도체 제재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더욱 강도가 세졌다. 단순히 자국 소프트웨어, 장비 등 기업과 거래를 제한하는 것을 넘어 다른 나라의 동참을 촉구했다. 그 결과 미국 주도로 ‘칩4(한국 미국 일본 대만) 동맹’이 형성됐다.

우리나라는 칩4 초기에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수출 비중이 높은 중국에 등을 돌린다면 타격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 차원에서 기업, 학계 등과 수차례 논의를 펼치면서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일련의 과정 속 미국과 일본은 TSMC를 앞세운 대만을 끌어들이면서 동맹을 강화했다.

최근 들어 한국도 칩4 참여라는 공식 입장을 낸 가운데 향후 중국과 어떤 식으로 협상해나갈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요 생산거점 중 하나가 중국이라는 부분도 해결 과제다.

개별 기업은 시장 악화 속에서 전반적인 투자를 줄여나갔으나 연구개발(R&D)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메모리에서는 2위 SK하이닉스와 3위 마이크론이 1위 삼성전자보다 먼저 최신 기술 또는 제품을 공개하는 등 반격에 나섰다.

파운드리 역시 2위인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 3나노미터(nm) 공정을 상용화하면서 TSMC에 선전포고를 날리기도 했다. 메모리에서는 YMTC, 파운드리에서는 인텔의 약진이 눈에 띄기도 했다. 이들은 아직 선도업체 대비 성과를 내지 못했으나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는 모양새다.

◆2023년은 상저하고(上低下高)?

반도체 불황이 내년 상반기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인 만큼 하반기 반등이 예상된다는 의견도 대다수다. 데이터센터와 전자제품 업계가 살아나면서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

반도체 제조사도 비슷한 생각이다. 따라서 무리한 투자보다는 업황을 지켜보면서 시설투자를 단행하는 등 조심스러운 사업 전략을 펼칠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의 행보는 소재, 장비 협력사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순차적으로 실적이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누구도 이같은 경기침체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내년 하반기 상승 곡선 역시 장담할 수는 없다.

미국과 중국을 필두로 한 반도체 패권 다툼은 더 격화할 예정이다. 칩4 위력이 얼마나 강해질지, 중국의 반격이 얼마나 거셀지 등이 전쟁의 승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김도현
dobest@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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