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G 자동사냥도 사행행위 요건에 해당”…모호한 ‘우연성’ 범위 탓?
[디지털데일리 오병훈 기자] 역할수행게임(RPG) 장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콘텐츠 중 하나는 ‘자동사냥’ 기능이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 자동사냥 기능이 사행행위 요건 중 하나인 ‘우연성’에 해당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지나치게 이용자 개입이 적거나 오랜 시간 방치하더라도 게임 재화를 얻는데 변수가 없다면, 사행행위 요건 중 하나인 우연성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다만, 일부 전문가 사이에서는 현행 법률상 우연성에 대한 정의가 모호해 사법부나 규제기관 재량이 지나치게 많이 개입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스카이피플이 개발한 ‘파이브스타즈 포 클레이튼(이하 파이브스타즈)’에 대해 ‘사행성’을 이유로 등급분류 취소 처분을 내렸던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 판단에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파이브스타즈는 국내 서비스를 종료했다.
게임위는 파이브스타즈를 사행성 게임으로 판단한 근거 중 하나로 자동사냥 개념에 해당하는 ‘24시간 자동모험(이하 자동모험)’ 기능을 들었다. 자동모험이 ‘사행행위 등 규제 및 처벌 특례법(이하 사특법)’ 및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법)’상 사행행위에 해당한다고 분석한 것이다. 법원 또한 이러한 게임위 판단이 타당하다고 판단해 파이브스타즈에 대한 등급분류 취소처분이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특법 2조1항에 따르면, 사행행위란 여러 사람으로부터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모아 우연적 방법으로 득실을 결정해 재산상의 이익이나 손실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즉, 사행행위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우연성과 ‘경품 제공성’이 동시에 충족돼야 한다. 자동모험 기능은 두 요건 중 우연성 충족 조건에 해당한다는 것이 게임위와 법원의 판단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재판에서) 사행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법률상 우연성 조건이 충족돼야 했기 때문에 게임 콘텐츠 중 어떤 부분이 우연성에 해당하는지를 구분하는 것도 재판에서 중요한 쟁점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한시간’과 ‘변수 가능성’이 우연성 여부 갈랐다=이번 소송에서 재판부가 우연성 측면에서 타 게임 자동사냥 콘텐츠와 파이브스타즈 자동모험을 구분한 핵심 키워드는 ‘제한시간’과 ‘변수 가능성’이다.
예컨대 엔씨소프트 게임 ‘리니지2M’ 경우, 하루 최대 8시간 ‘무접속 플레이’ 기능을 제공한다. 그 이상 시간은 이용자가 개입해 게임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넥슨 게임 메이플스토리M에는 ‘자동전투’ 시스템이 존재하는데 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이용자가 자동전투 시간 이용권을 사용해야 하는 구조다.
반면, 파이브스타즈 자동모험은 이용자가 게임을 실행한 뒤 접속하지 않아도 24시간 동안 자동으로 캐릭터 모험이 진행되며 그에 따른 보상을 획득할 수 있는 콘텐츠이기 때문에 이용자 개입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것이 법원 판단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다른 게임 경우 자동사냥기능이 존재하지만 이용자 설정에 따라 캐릭터가 사망하는 경우도 있어 파이브스타즈와 달리 전략적 요소가 중요하다”며 “접속 없이도 게임이 진행되는 게임 콘텐츠도 자동모험 내지 자동사냥과 구분되는 것으로서, 일정한 시간제한이 있어 파이브스타즈 자동모험과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변수 가능성도 차별점으로 지목됐다. 리니지2M이나 메이플스토리M은 자동사냥 실행 중 캐릭터가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 자동사냥 중 ‘자동 물약 회복’ 기능을 통해 체력을 자동으로 회복할 수 있지만, 캐릭터가 순간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받을 경우 자동 물약 회복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이용자가 다시 사냥터로 이동하는 등 게임 진행상 개입은 필수다.
그러나 법원은 파이브스타즈 자동모험 콘텐츠 경우 캐릭터가 사망하는 일이 없어 이용자 개입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고 봤다. 이용자가 게임 시작 버튼을 누르고 아이템을 획득하기까지 사실상 이용자 개입이 없기 때문에 이는 ‘우연적 방법’에 해당한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자동모험 기능은 단순히 스테이지를 선택해 실행하는 것 외에 아무런 이용자의 개입을 요하지 않고 이용자가 설정한 캐릭터의 성격, 배치 등과 무관하게 캐릭터가 사망하거나 하는 일 없이 무조건 24시간 동안 계속해 모험이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일정한 확률로 아이템을 획득한다”라며 “즉, 전략적 요소가 배제된 상황에서 우연적인 방법으로 결과를 취득한다고 할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파이브스타 변호대리인은 “자동모험기능을 통해 아이템을 획득하려면 일반적인 모험 콘텐츠에서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측면에서 24시간 자동모험기능 자체도 우연성에 기초해 결과가 정해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일반 모험 콘텐츠를 통한 노력과 시간은 자동모험을 실행을 위한 과정일 뿐 자동모험 자체가 우연적인 방법으로 아이템을 획득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며 해당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연성에 대한 정확한 정의 재정립돼야” 목소리도=일부 학계나 전문가는 이러한 법률상 우연성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기하기도 한다. 사특법이나, 게임법상 우연성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해 법률 해석에 있어 규제 기관이나 사법부 재량이 지나치게 많이 개입될 수 있다는 우려다. 법률상 우연성 해석 쟁점이 이번 판결 뿐 아니라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확률형 아이템 관련 규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게임법 개정안 2조 11호에 따르면, 확률형 아이템이란 직간접적으로 게임이용자가 유상으로 구매하는 게임 아이템 중 구체적 종류, 효과 및 성능 등이 우연적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선지원 광운대학교 교수는 지난 26일 한국게임정책학회가 주최한 ‘게임법 개정안과 이용자보호 정책 토론회’에서 확률형 아이템 정의 속 ‘우연적 요소’에 대한 범위가 불명확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선 교수는 “우연적 요소로 인해서 아이템을 얻는 행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관건”이라며 “(우연에 의한) 결정 시기 범위를 넓게 해석할 경우, 게임 내 아이템 전부에 대한 확률을 공개해야할 수도 있다. 반대로, 좁게 해석할 경우 이용자 보호 범위가 좁아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토론회에서 이정엽 순천향대 교수는 게임 내에 존재하는 모든 우연성을 사행행위 요건으로 일괄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게임 고유 특성에 따라 ‘정도가 심하지 않은’ 사행행위도 있을 수 있으며, 이를 정도가 심한 사행행위와 동일 선상에서 규제를 하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심각하지는 않지만 (사행심을) 다소 유발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어떻게 규제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논의를 시작해야 된다”라며 “사행성에 대한 규정 자체에 대해 손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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