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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뜰폰 보고서]① 가입자 1200만 시대? IoT 회선이 ‘반’

권하영
알뜰폰 시장이 모처럼 활기를 띤다. 가입자가 1200만을 돌파한 데다 대형 통신사를 상대로 점유율을 끌어올리며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를 잘 들여다 보면 딜레마가 보인다. 가입자 대다수는 여전히 통신사 자회사와 사물인터넷(IoT) 회선이 차지하고 있고, 금융권의 잇따른 진출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실정이다. 5G 시대 다양한 요금제를 선보이지 못하는 점도 숙제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알뜰폰 시장의 명과 암을 짚어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알뜰폰 시장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어르신폰’이라는 딱지가 붙었던 것이 무색하게,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자급제 휴대폰과 알뜰폰 요금제 조합이 인기를 얻고 있다. 기존 통신사 대비 저렴한 요금제를 앞세워, 고물가 시대 가계통신비를 줄일 수 있는 수단으로 인지도를 높여가는 중이다.

이는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집계한 알뜰폰 가입자는 지난 2021년 11월 처음으로 1000만명을 돌파했고, 올 초에는 1200만명을 넘어섰다. 대형 통신사를 상대로 꾸준히 존재감을 키워 최근에는 점유율이 16%에 이르렀다. 3위 통신사 LG유플러스의 점유율이 20% 초반대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근접한 수치다.

◆ 알뜰폰 양적성장에 가려진 ‘허수’

하지만 이를 잘 들여다 보면 일종의 ‘허수’가 보인다. 일단 작년 11월 기준 1263만8794건의 알뜰폰 회선 가운데 약 43%는 일반적인 알뜰폰이 아닌 사물인터넷(IoT) 회선(543만2514건)이다. 커넥티드카 등 자동차 회사를 중심으로 통신재판매(MVNO) 기반 IoT 회선 수요가 커지면서 숫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통신사 자회사의 비중도 여전히 크다. IoT 회선을 제외하고 휴대폰 회선 수만 놓고 봤을 때, 알뜰폰 시장 내 통신사 자회사들의 합산 점유율은 50%를 넘나들고 있다. 알뜰폰 시장이 이만큼 성장한 데는 대형 통신사가 가진 브랜드 효과가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알뜰폰 시장에마저 통신사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셈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빙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박완주 의원이 과기정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IoT 회선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518% 늘어난 반면, 휴대폰 회선 수는 같은 기간 5% 증가하는 데 그쳤다. 또한 지난해 통신3사 자회사의 알뜰폰 휴대폰 회선 가입자 수는 2019년 대비 54%나 증가했다.

최근에는 금융권의 알뜰폰 시장 진출로 인해 기존 알뜰폰 사업자들의 위기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자체 알뜰폰 서비스 ‘리브엠’ 가입자가 35만명을 넘어서면서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동시에 원가 이하 요금제를 판매해 출혈 경쟁을 일으켰다며 기존 알뜰폰 업계의 지탄을 받고 있다.

◆ 알뜰폰 자생력 기르는 체계 잡혀야

결국 알뜰폰 시장은 양적성장을 이뤘지만 질적성장엔 다다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업계는 알뜰폰 시장의 통신사 의존도를 낮추고 자생력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본력이 부족한 일반 알뜰폰 사업자들은 시장이 활성화 되더라도 치킨게임이 벌어지면 곧바로 도산의 길로 갈 수밖에 없어서다.

알뜰폰 업계는 정부의 알뜰폰 활성화 정책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도매대가를 대신 인하해주는 것보다, 도매대가 결정 체계를 새롭게 함으로써 알뜰폰 사업자가 투자를 많이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알뜰폰이 통신사에 망을 빌려쓰는 대신 내야 하는 도매대가를 조금씩 인하해줬다.

현재 도매대가 산정기준은 요금제를 기준으로 소매 단가에서 일정 수준을 인하하는 ‘리테일 마이너스’(Retail Minus) 방식인데, 그것보다 망 원가를 기준으로 잡는 ‘코스트 플러스’(Cost Plus) 방식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 주장이다. 기존 요금제와 상관 없이 알뜰폰 업체들이 좀 더 자유롭게 요금을 설계할 수 있어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자체 전산설비를 갖춘 풀(Full)MVNO, 즉 ‘MVNE’ 사업자도 나올 수 있다. MVNE는 자체 전산 설비를 갖추고 다른 알뜰폰 사업자의 과금·CS 등 시스템을 구축·운영하는 데이터 중간 도매상 역할이다. 자체 설비로 독자적인 요금제 설계도 가능해 알뜰폰 시장을 통신사가 아닌 알뜰폰 사업자 스스로 주도할 수 있게 된다.

알뜰폰 업계 한 관계자는 “통신사나 금융사들이 상생을 우선해주는 것도 필요하고 동시에 중소 알뜰폰들도 어느 정도 자체적인 경쟁력이 있어야 대기업과 공존할 수 있다”면서 “통신사에 도매체계를 의존하는 지금의 구조에서 벗어나 제도적으로 알뜰폰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하영
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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