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메모리 재고 사상 최대, 10년來 이익 최저…삼성·SK '동상이몽'

김도현
- 삼성전자·SK하이닉스 실적 및 전략 비교
- ‘인위적 감산 없는’ 삼성전자 행보…메모리 업계 촉각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반도체 한파가 메모리 업계에 미친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세계 1~2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나란히 ‘충격 실적(어닝쇼크)’을 마주했다. 차가운 현실 속 양사의 대응 방안은 비슷한 듯 다르다. 감산 여부를 두고 엇갈린 결정을 내렸는데 향후 어떤 식으로 나비효과가 나타날지 주목된다.

지난 1일 SK하이닉스는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연결기준 2022년 4분기 매출 7조6986억원, 영업손실 1조7012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액은 전기대비 30% 전년동기대비 38% 줄었다. 영업이익은 전기 및 전년동기대비 적자 전환이다. SK하이닉스가 영업손실을 낸 건 지난 2012년 3분기 이후 처음이다.

지난달 31일 삼성전자는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작년 4분기 매출 20조700억원, 영업이익 2700억원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매출은 전기대비 13% 전년동기대비 24% 떨어졌다. 메모리 분야로 한정하면 전기대비 20% 전년동기대비 38% 하락으로 낙폭이 더 컸다. 영업이익은 전기대비 95% 전년동기대비 97% 축소했다. DS부문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지 못한 건 2012년 1분기가 마지막이었다.

적자 전환 또는 겨우 흑자 유지한 이번 성적은 예견된 결과였다. 작년 하반기 들어 세계 경제가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 정보기술(IT) 업계 전반이 침체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핵심 응용처인 서버, PC, 스마트폰 시장 부진이 메모리 제조사에 직격탄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D램 및 낸드플래시 등 주요 제품 가격은 폭락했고 메모리 재고는 급격히 불어났다. 업계에서는 국내 업체의 재고 일수가 20주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정한다. 통상 수준인 5~6주보다 약 4배 많다. 고객사 여건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30주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SK하이닉스는 실적 컨퍼런스콜을 통해 “전반적인 고객 재고는 2019년 다운턴과 유사한 상태로 보여진다. 업계 전반의 재고는 아마도 사상 최대 수준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앞서 실적을 공개한 미국 마이크론, 대만 난야 등도 여파가 불가피했다. 각각 D램 3위와 4위인 이들은 각각 7년, 10년 만에 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주요 기업들은 감산 카드를 꺼내 들었다. 마이크론은 올해 반도체 생산 20% 설비투자 30% 이상 하향 조정하기로 했다. 비용 절감 차원에서 인력 구조조정까지 감행할 방침이다. 메모리보다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한 시스템반도체 강자 TSMC, 인텔 등도 투자나 인력 등을 줄여 불황에 대응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마찬가지다. 컨콜에서 “올해 투자를 작년(19조원) 대비 50% 이상 축소할 계획”이라며 “지난 4분기 중 레거시 및 수익성 낮은 제품 중심으로 웨이퍼 투입량을 축소했다. 이에 더해 신규 캐파 투자 없이 일부 공정 전환에 따른 캐파 감소를 고려하면 올해 D램과 낸드 웨이퍼 생산은 전년대비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SK하이닉스는 공정 전환 속도도 조절한다. 업황이 좋을 시 최신 제품 비중을 빠르게 늘려 수익성을 향상했다면 이를 늦춰 대응하는 것이다. SK하이닉스에 따르면 작년 말 10나노급 4세대(1a) D램과 176난 낸드 생산 비중은 각각 20%, 60%였다. 올해 투자 축소로 연말까지 두 제품 생산 비중은 크게 늘지 않을 전망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다른 길을 간다. 경쟁사와 달리 투자 규모를 줄이지 않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감산 계획 물음에 “시황 약세가 당장 실적에 우호적이지 않으나 미래를 철저히 준비할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며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한 인프라 투자를 지속해 필수 클린룸을 확보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결론적으로 2023년 시설투자액은 전년과 유사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2022년 반도체 분야에 47조9000억원을 투입했다. 올해도 비슷한 수준으로 계산하면 DS부문의 지난해 연매출(98조4600억원) 절반 가까이를 쓰는 셈이다.

이같은 움직임에 안팎의 평가는 엇갈린다. ‘원가경쟁력이 압도적인 삼성전자만 할 수 있는 전략’과 ‘자연적인 감소를 염두에 둔 방침’으로 대치된다.

일단 삼성전자는 수차례 언급한 대로 웨이퍼 투입량을 낮추는 ‘인위적 감산’은 진행하지 않는다. 대신 투자 방향은 이전과 조금 다르다. 경기 평택 3~4기 구축분도 포함되나 극자외선(EUV) 등 차세대 공정, 고성능·고용량의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로우파워(LP)DDR5X 공정 전환, 반도체 전용 연구개발(R&D) 팹 등에 더 많은 무게를 둘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는 컨콜에서 “최고품 질과 라인 운영 최적화를 위해 생산라인 유지보수 강화와 설비 재배치 등을 진행해 미래 선단 노드 전환을 효율적으로 추진 중”이라며 “공정 기술력 강화, 조기 안정화를 위해 시험생산(엔지니어링 런) 비중을 확대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를 통해 단기구간 의미 있는 출하량 축소를 유발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 지점에서 자연적 감산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일각의 의견이 제기된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은 향후 업황은 물론 삼성전자 행보를 유심히 관찰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1위 삼성전자의 생산 물량에 따라 메모리 가격, 재고 등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를 제외한 기업과 증권가 등에서는 감산을 통해 해당 문제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눈치다.

삼성전자 역시 시장 상황을 살피면서 전략적인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과거처럼 메모리 치킨게임 체제로 전환하느냐 감산 대열에 합류하느냐는 삼성전자 손에 달렸다. 현재까지의 삼성전자 방향성은 미래수요 및 차세대 제품을 대비한다는 점에서 전자에 가까운 것으로 여겨진다.

변수는 메모리 업황 회복 시점이다. 업계에서는 하반기 반등을 기대하고 있으나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강한 만큼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장담할 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도현
dobest@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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