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10년 만에 최악이라는데"…삼성·SK 소환한 '2012년' 무슨 일이 [IT클로즈업]

김도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2012년 3월 하이닉스반도체 본사 방문한 모습

- 유럽발 재정위기·부동산 침체→메모리 시장 직격탄
- 日 메모리 자존심 무너지고, 하이닉스반도체는 SK 품으로
- 스마트폰 시장 개화로 메모리 업계 기회 포착
- 2012년 버금가는 경제 위기 도래…올해도 불확실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이번 겨울 매서운 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반도체 업계도 한파를 마주했다. 특히 업황에 따라 변동 폭이 큰 메모리 부문에 타격이 컸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대만 난야 등은 지난해 4분기 나란히 부진했다. 삼성전자만 겨우 흑자를 유지했고 나머지는 빨간불이 켜졌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지난 2012년 1분기 이래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이 1조원을 넘어서지 못했다. SK하이닉스는 2012년 3분기, 난야는 2012년 4분기 이후 첫 적자다. 마이크론의 경우 2015년에도 마이너스를 기록해 7년 만이긴 하나 2012년 역시 적자였다. 공통분모는 2012년에 안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점. 당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마이크론이 엘피다 인수 이후 운영 중인 일본 히로시마 공장

◆리먼 사태 후폭풍

2008년 터진 리먼 사태의 불씨가 유럽에서 타오른 시기다. 리먼 사태는 미국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수익을 내다가 지나친 차입금과 주택가격 하락으로 파산하게 된 사건을 일컫는다. 참고로 서브프라임은 정상 대출인 프라임보다 소득이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을 의미한다.

역사상 최대 규모 파산으로 기록된 가운데 전 세계 금융시장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이는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로 이어진다. 그리스가 국가 회계 부실을 숨긴 게 밝혀지면서 본격화했다. 이후 그리스는 2012년 유로화 도입에 따른 경상수지 적자 심화와 방만한 운영으로 재정난을 겪었고 이탈리아, 스페인 등까지 영향권에 들었다.

당시 ‘PIGS(포르투칼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등이 막대한 부채와 만성 재정적자, 금융회사 부실 등에 시달리면서 유럽 경제를 뒤흔들었다. 독일 등 유럽연합(EU) 내 주요국과 국제통화기금, 유럽중앙은행 등 공조로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여파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었다.

아울러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태국 홍수 등 역사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힌 자연재해까지 발생하면서 세계 경제는 침체가 불가피했다. 이러한 하락 국면은 2012년까지 계속됐고 국내외 부동산 경기침체라는 부정적 결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엘피다 파산·SK하이닉스 등장

세계적으로 불황을 겪자 메모리 업계도 꺾일 수밖에 없었다. 2022년 하반기부터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따른 소비자 심리 구매가 위축된 점과 유사한 상황이었다. 2010년 초반만 하더라도 서버, 스마트폰보다는 PC 분야 메모리 수요가 많았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PC 등 판매가 급감했고 고객들은 메모리 재고 조정에 나섰다.

앞서 2007년 메모리 치킨 게임, 2008년 리먼 사태 등으로 대부분 메모리 회사들은 경영난에 빠졌다. 2009년 독일 키몬다가 파산 신청을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시기에 일본 엘피다 역시 상태가 좋지 않았으나 일본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으로 약 3년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큰 타격을 받았고 2012년 일본 정부도 엘피다를 포기하기로 했다.

그해 엘피다는 법정관리 신청을 하면서 일본의 마지막 D램 기업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후 마이크론, 하이닉스반도체 등이 인수를 고려하다 2013년 마이크론이 품게 됐다. 다만 마이크론은 엘피다 부채를 해결하다가 2010년대 중반까지 고생하면서 2015년 동종업체 중 유일하게 적자를 기록하게 됐다.

이 와중에 하이닉스반도체도 흔들렸다. 경쟁사들과 같은 이유로 실적 감소에 시달렸고 현대중공업, SK텔레콤, STX 등이 인수 후보자로 등장했다. 결과적으로 SK텔레콤이 2011년 11월 지분인수계약을 체결했고 이듬해 3월 SK그룹에 편입되면서 지금의 SK하이닉스로 다시 태어났다.

◆메모리 부활의 서막

글로벌 경제 위기, 업계 재편 등을 겪은 메모리 산업은 반등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린 시점이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출시한 이후 스마트폰 시장은 2009년 말에서 2011년 초반까지 짧은 격동기를 겪었다. 이때 휴대폰 강자였던 노키아가 무너졌고 삼성전자는 다른 의미에서 역대급인 옴니아 시리즈를 내놓기도 했다.

2011년을 기점으로 안드로이드와 iOS 양강 체제가 형성되면서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의 전환이 가속화했다. 이에 따라 정보기술(IT) 업계 환경이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PC, 노트북보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점차 늘어갔고 결국 대세를 이루게 된다.

메모리 응용처도 스마트폰 중심으로 바뀌게 된다. 이를 계기로 데이터 사용량이 급격하게 늘면서 데이터센터 생태계도 확장하게 된다. 수요가 상승하자 2010년대 중반부터 메모리 시장은 호황 조짐을 보인다. 사카모토 유키오 전 엘피다 사장이 “1년만 더 기다려줬더라면 일본 메모리 기업도 세계 무대에서 경쟁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한 이유다.

2017~2018년에는 전례 없는 상승세를 누렸다. 2019년 주춤했으나 2020년 코로나19 국면에 접어들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기도 한다. 그랬던 흐름이 작년 하반기부터 하락 국면에 접어들면서 10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게 된 것이다.

◆올해 하반기 반등할 수 있을까

세계반도체시장통계기구(WSTS)에 따르면 2022년 메모리 시장 규모는 1344억달러로 전년보다 12.6% 축소했다. 2023년에는 전년보다 17%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 역시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트렌드포스는 올해 1분기 D램 평균판매가격(ASP)이 전기대비 13~18%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지난 1월 PC용 범용 D램 고정거래가는 전월대비 18% 하락하면서 2달러 미만으로 떨어졌다.

메모리 부진 신호는 재고에서도 나타난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메모리 제조사의 재고 일수가 20주까지 늘어났다는 후문이다. 통상 수준인 5~6주보다 약 4배 많으며 고객사 상황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30주에 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SK하이닉스는 실적 컨퍼런스콜을 통해 “전반적인 고객 재고는 2019년 다운턴과 유사한 상태로 보여진다. 업계 전반의 재고는 아마도 사상 최대 수준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주요 기업들은 감산 카드를 꺼내 들었다. SK하이닉스, 마이크론, 키오시아 등은 일제히 웨이퍼 투입량 조절에 나섰다. 시설투자 규모도 전년대비 대폭 줄이기로 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투자 수준은 유지한다.

삼성전자의 공정 전환 등이 메모리 공급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반등 시기를 좌우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하반기 반등을 기대하고 있으나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강한 만큼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장담할 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도현
dobest@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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