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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A명암]①배터리 투자, 美 믿고 올인? '정치적 불확실성' 남았다 [소부장박대리]

이건한

- 외국에 유리한 IRA, 미국 내 반발 기류 감지…바이든 ‘정치적 부담’
- 업계, 리스크 있지만 미국 투자는 필수…현지 상황 예의주시해야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지난 3월31일 공개된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세부지침은 한국의 요청사항이 대부분 수용됐다. 정부와 업계도 안심하는 분위기다. 다만 미국 내 정치적 불확실 상황에 따르는 잠재 리스크에도 대응을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IRA 세부지침의 골자는 양극·음극활물질과 같은 ‘구성소재’를 배터리 부품이 아니라 핵심광물로 분류한 것이다. 기업이 IRA에 규정된 최대 7500달러의 전기차 세액공제를 받으려면 크게 3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완성차 ▲배터리 부품의 50% 이상을 북미에서 제조·조립 ▲핵심광물의 40% 이상을 미국이나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제조 등이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이미 북미에 배터리 셀 공장들을 가동하고 있어 ‘부품 50%’ 비중 달성은 어렵지 않았다. 반면 포스코퓨처엠, 에코프로를 비롯한 한국 소재 기업들은 활물질을 대부분 국내에서 생산 중이다. 만약 활물질이 부품으로 분류됐다면 이들은 미국에 새롭게 생산 설비를 갖춰야 할 상황이었다. 다행히 이런 부담을 면한 셈인데, 세부지침 발표 후 업계에서 “긍정적인 결과”와 같은 평가가 나온 이유다.

그러나 긴장을 늦추기엔 이르다. 아직 미국의 우려국가(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등) 소재·부품 사용 제한 관련 지침이 확정되지 않았고, 한국 배터리 업계에 떨어질 과실이 기대보다 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핵심광물의 중국 의존도가 높고, 미국이 IRA로 배제하려고 했던 중국 기업들은 미국 기업들과 합작사를 세우는 방식으로 IRA 규제 우회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 정치적 변수도 잠재적 리스크로 꼽힌다. IRA 세부지침이 우여곡절 끝에 공표됐지만 미국 의회에서는 민주당, 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IRA에 불만을 제기하는 의원들의 목소리가 전해지고 있다.

그들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IRA의 수혜가 각종 ‘봐주기 조항’으로 외국기업에 돌아가는 것을 인정하기 어렵단 입장이다. 특히 일본처럼 비FTA 국가에도 의회 동의 없이 ‘핵심광물협정’이란 수단으로 FTA 체결국과 같은 지위를 인정해준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같은 초당적 반발은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부담 요소다. 게다가 재선을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의 최근 여론조사 지지도는 경쟁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비교해 2~4% 차이에 불과하거나 밀리는 등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IRA가 자칫 ‘외국 퍼주기’ 법안으로 비춰질 경우, IRA의 세부지침이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재조정될 수 있단 우려도 나온다. 이번에 공표된 세부지침은 4월18일 이후 60일의 의견수렴 기간을 거친 뒤 최종 확정된다.

한 글로벌 기업 대표는 “미국 우선주의를 택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 이후 미국 정부의 경제 정책은 논리보다 정치적 성향과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것 같다”며 “이번에는 한국이 로비를 열심히 한 덕을 봤지만 3~4년 뒤에는 미국에 대한 투자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배터리 업계도 미국에 ‘올인’할 수 없다는 점, IRA에 잠재적 리스크가 남아있단 사실에 공감하고 있다. 다만 지금 미국에 대한 투자는 IRA를 차치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란 입장이다. 미국은 전세계에서 전기차 시장의 가장 빠른 성장이 예견된 나라다.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NEF는 IRA와 같은 전기차 우대 정책 등이 더해져 2030년에는 미국 내 전기차 비중이 50%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국내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 미국에 집행 중인 투자는 대부분 IRA 이전부터 미국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계획 후 실행 중인 것”이라며 “(IRA에 대해) 안도의 한숨이라고 표현하지만 향후 정책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보다 예의주시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도 “IRA에 맞춰 투자하는 것보단 중국에 이어 가장 큰 시장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 그리고 물류비용을 고려하면 미국에서 규모의 경제를 만드는 것이 효율적”이라면서도 “정치적 불안정에 대해서는 공급망 다변화 노력 정도가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또 “IRA의 까다로운 요구조건들이 결국 한국 배터리 업계에 소재 독립 등을 앞당기는 ‘동기부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건한
sugyo@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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