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하드캐리]②초격차 신봉자, 삼성SDI [소부장박대리]
전세계 미래 첨단산업, 친환경 전환을 이끌 핵심 열쇠로 2차전지(배터리)가 주목받고 있다. 주요 열강들의 패권 경쟁이 나날로 격화 중인 가운데, 그 선두에 자리잡은 건 한국 기업들이다. 배터리 셀과 핵심소재 양대 축에서 ‘제2의 반도체’ 초격차를 만들고 있는 그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삼성SDI는 국내 주요 배터리 제조사 중 기술 혁신에 가장 중점을 둔 기업이다. 삼성 특유의 ‘초격차’ DNA다. 저가형 제품보다 고가형, 고품질 제품 판매에 주력하며 차세대 배터리 연구개발(R&D)에도 적극적이다. 향후 전고체 배터리 조기 양산, 중저가 배터리 라인업 보강이 계획대로 이뤄질 경우 제품·기술 리더십 측면에서 한층 앞선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예측된다.
◆ 1994년 그룹 배터리 사업 인수, 경쟁사 기술 격차 빠르게 좁혀
삼성SDI의 배터리 기술개발 역사는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 계열사 간 중복 사업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그룹 내 배터리 사업을 삼성SDI(구 삼성전관)가 인수한 것이 그 시작이다. 삼성SDI는 이후 1998년 당시 최고 용량인 1650mAh 원통형 리튬이온 배터리를 개발, 1년 뒤인 1999년에는 다시 1800mAh 배터리 개발에도 성공하며 기술 중심 경영의 싹을 틔웠다.
2000년 천안 사업장에 축구장 약 2개 면적의 배터리 생산공장을 준공했다. 본격적인 배터리 사업 확장의 신호탄이었다. 2003년에는 대규모 증설을 통해 당시 산요, 소니에 이어 세계 3위의 소형전지 생산능력(CAPA, 캐파)을 갖게 됐다.
성과는 곧 나타났다. 2005년 배터리 사업 첫 흑자를 기록한 삼성SDI는 2010년 소형 배터리 시장점유율 1위(20.5%, IIT 조사)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의 94%가 일본 기업들의 몫이었음을 생각하면 기념비적인 이정표다.
지금의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 확장은 2005년 소형 배터리 사업 흑자 달성 이후 본격화됐다. 2007년 독일의 글로벌 자동차 전장업체인 보쉬와 합작한 ‘SB리모티브(SB LiMotive)’ 설립이 그 시작이다.
전기차 배터리 사업의 성과 달성도 기대보다 빨랐다. 1년도 안 된 2008년,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 BMW의 전기차용 배터리 단독 공급 업체로 선정된 것.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의 업력은 짧았으나 삼성SDI가 BMW가 요구하는 수준의 기술 역량을 빠르게 갖춰 낸 것이 당시 선정의 핵심 요인이었다.
해당 파트너십은 이후 지속적으로 이어져 2019년 11월 삼성SDI는 2021년부터 10년간 BMW에 약 35달러 규모의 배터리를 공급하는 신규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아우디, 폭스바겐 등 유럽의 주요 자동차 제조사의 신규 프로젝트를 잇따라 수주하고, 전기버스·전기트럭 등 상용차 배터리 공급 계약도 확대됐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가시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2022년 5월에는 스텔란티스와 미국 인디애나주 코코모시에 합작법인(JV)을 설립하기로 발표했다. 이어 지난 4월에는 GM과도 미국 내 합작법인 설립을 발표하며 북미 시장 공략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 양보다 질, 고부가가치 미래 배터리 개발에 박차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2년 전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삼성SDI는 배터리 출하량(GWh) 기준 점유율 5.2%로 6위다. 반면 매출액 점유율은 6%로 4위다. 매출만 놓고 보면 출하량 점유율에서 앞선 파나소닉보다 1.6배 높다. 프리미엄 제품 판매 비중이 높은 까닭이다.
삼성SDI의 이 같은 기조는 2021년 공개한 독자 배터리 브랜드 ‘프라이맥스(PRiMX)’에서도 뚜렷히 드러난다. 프라이맥스의 주요 키워드는 ▲최고 안전성의 품질 ▲초격차 고에너지 기술 ▲초고속 충전 및 초장수명 기술이다. 당시 삼성SDI 부사장은 "프라이맥스는 삼성SDI 고유의 정체성을 녹인 브랜드”라며 “기술의 정점을 지향하는 브랜드로 성장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SNE 리서치 2022년 전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 통계
말뿐만이 아니다. 배터리 기술 초격차를 이어가기 위한 실제 투자도 이어가고 있다. 2022년 사업보고서 기준 삼성SDI의 R&D 비용은 역대 최대치인 1조76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22.7% 증가한 규모이며 주요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8760억원), SK온(2346억원)을 앞섰다. 또 설비투자 총액 2조6288억원 중 98.7%는 에너지솔루션(배터리 사업부) 부문에 집중된 점이 확인된다.
이를 기반으로 기대되는 삼성SDI의 다음 행보는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다. 전고체 배터리는 양극과 음극 사이에 액체 전해질 대신 고체 전해질을 사용한 배터리다. 화학적 안정성이 기존 배터리보다 현격히 높아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고체 전해질을 사용함으로써 액체 전해질 대비 외부 충격에 강하고 누액 등으로 인한 손상, 화재 내성이 높다. 전해질이 분리막을 대신함으로써 해당 공간을 활용한 배터리 용량 향상도 용이하다. 다만 기술 개발의 장벽이 높고, 대량 양산 및 가격 경쟁력 확보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업계에서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시점으로 2030년 이후를 내다보는 이유다.
그러나 삼성SDI는 이보다 훨씬 앞선 2027년 전고체 배터리 대량양산 시스템 확보를 공언했다. 현실화될 경우 단어 그대로 ‘초격차’ 실현의 확실한 발판이 된다. 또한 프리미엄 하이니켈 배터리, 중저가 LFP 배터리 등으로 양분된 현재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전고체 배터리의 조기 등판은 ‘차별화’를 필요로 하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에도 매력적인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삼성SDI는 지난해 3월 수원시 영통구 SDI연구소에 6500제곱미터 규모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착공하고 전고체 배터리 실제 상용화에 힘을 싣고 있다.
더불어 기존 전기차용 배터리도 기존 제품보다 에너지밀도를 10% 이상 높이고 급속충전 성능을 크게 개선한 6세대 ‘P6’ 배터리가 2024년 양산 예정이다.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이전까지 삼성SDI의 기존 프리미엄 배터리 매출을 책임질 제품이다.
올해는 이전과 달리 중저가 배터리 개발 및 양산 의지도 높아졌다. 전기차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다양해진 고객사의 요구 대응,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통한 매출원 확대 목적으로 풀이된다. 삼성SDI는 이를 위해 기존 하이니켈 배터리의 성능 강점은 유지하면서 고가 원료인 코발트를 제외해 가격 경쟁력을 갖춘 ‘NXM 배터리’, 가성비와 안정성이 강점인 중저가용 ‘LFP 배터리’ 개발을 본격화한 상태다.
◆ 당면 과제는 북미 생산능력 확대
삼성SDI는 타사와 달리 자사의 배터리 생산능력을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증권가에서 추산한 2022년 생산능력은 85GWh, 2023년 105GWh, 2025년 200GWh 등이다. 25년 기준 경쟁사 LG에너지솔루션의 목표 생산능력 540GWh와 비교하면 절반 이하지만, 올해는 신규 고객사 확보를 통한 빠른 추격이 예상된다.
특히 최근 글로벌 전기차 핵심 시장인 미국이 IRA 법안을 고도화하면서 미국 내 배터리 생산기지를 보유해야 세액공제를 통한 가격 경쟁력 있는 배터리 생산이 가능해진 상황이다. 이 같은 측면에서 경쟁사들과 달리 2025년에야 미국 내 첫 배터리 생산시설이 가동될 예정인 삼성SDI는 북미 투자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긍정적인 건 지난 4월25일 LG에너지솔루션의 최대 고객인 GM이 삼성SDI와도 미국 내 합작공장을 설립하기로 발표한 것이다. GM 외에도 배터리 공급망의 다변화 필요성이 높아진 전기차 제조사들을 빠르게 추가 고객으로 확보하는 것이 삼성SDI의 주요 과제다.
현재 삼성SDI의 주요 완성차 고객사는 ▲BMW ▲폭스바겐 ▲스텔란티스 ▲리비안 ▲볼보트럭 ▲GM 등이다. 배터리 제조를 위한 주요 소재·부품 파트너는 양극재에서 ▲에코프로이엠(에코프로·삼성SDI 합작사) ▲유미코아, 음극재는 ▲포스코케미칼 ▲BTR ▲히타치가 꼽힌다. 분리막은 ▲SKIET ▲WCP, 전해액은 ▲엔켐 ▲동화일렉트로라이트 ▲솔브레인 등에서 공급받고 있다.
삼성SDI의 전기차용 배터리 주요 생산 거점은 한국 울산, 중국 시안, 유럽 헝가리 괴드시에 있다. 미국은 앞서 언급한 스텔란티스와의 합작공장이 2025년, GM과의 합작공장은 2026년 가동 및 양산 예정이다. 말레이시아 2공장에는 2025년 최종 완공까지 총 1조7000억원이 투입돼 원통형 배터리 생산 거점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 부유한 삼성SDI... 투자확대 여력은 충분
배터리 사업 고속성장에 힘입어 회사의 매출 및 수익, 재무 상황도 안정선을 그리고 있다. 삼성SDI의 2022년 매출은 20조1240억원, 영업이익은 1조8080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48.4%, 69.3% 급성장했다. 지난달 공개된 2023년 1분기 실적은 매출 5조3548억원, 영업이익 3754억원이다. 역시 전년 동기 대비 매출 32.2%, 영업이익 16.5%가 증가한 견조한 성장세다.
기업의 단기채무 지급 능력을 의미하는 유동비율은 2021년 115%에서 2022년 120%로 보다 안정화됐다. 회사가 1년 내에 현금화 가능한 자산 규모가 1년 안에 갚아야 할 채무보다 1.2배 더 많다는 뜻이다.
기업이 보유한 자산 중 빚의 비중이 얼마인지 알 수 있는 부채비율은 2021년 70%에서 2022년 75.7%로 소폭 상승했지만 역시 200% 미만의 안정권으로 평가된다.
영업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2021년 플러스(+) 2조1760억원, 2022년 2조6410억원을 기록했다. 영업 현금흐름은 기업이 주력 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이 지출한 돈보다 많을 때 플러스, 적을 때 마이너스를 나타낸다. 대개 플러스인 경우가 바람직하다.
주요 경쟁사들이 2022년 투자비 급증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과 비교해 보유자금, 현금흐름, 채무능력 등에서 종합적으로 우수한 상태를 유지했다. 향후 차세대 기술 개발 리더십 유지, 생산능력 확장에 들어갈 막대한 자금에 대해 당분간 우려할 상태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삼성SDI는 수주잔고 역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증권가 추정치는 2022년 말 기준 약 130조원~140조원이다. 적지 않은 규모지만 LG에너지솔루션 385조원, SK온 290조원에 비하면 격차가 크다. 추가 파트너사 확보, 중저가 제품 납품 확대에 박차를 가할 필요성이 커진 이유다.
◆ 초격차 승부 본능 이어간다
삼성SDI의 2023년 목표는 기·승·전·‘초격차(결)’ 강화다. 최윤호 삼성SDI 대표는 올해 초 시무식에서 "배터리와 전자재료 산업에서는 확고한 기술 경쟁력을 가진 기업만이 승자가 될 수 있다"며, "전기차용 배터리 신제품 적기 개발과 차세대 기술 선행 확보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주시장 확대도 가속한다. 지난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김종성 삼성SDI 경영지원실장은 “이번 GM과의 협력은 기존의 유럽 고객 중심에서 성장 속도가 빠른 미주 시장의 주요 고객들과 장기적 파트너십 확대, 자동차 배터리 사업의 중장기 모멘텀 확보 기회”라며 “앞으로도 수익성 우위의 질적 성장이란 경영 방침 아래 신규 수주와 투자를 지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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