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은 칼럼

[취재수첩] 삼성전자 사장은 왜 대학가로 향했을까

백승은 기자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이 지난 9일 연세대에서 강연을 진행했다. [출처=디지털데일리]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이 지난 9일 연세대에서 강연을 진행했다. [출처=디지털데일리]

[디지털데일리 백승은 기자] 지난 9일 연세대 제3공학관은 400여명의 학생들과 기자들로 북적거리며 인산인해를 이뤘다.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사장)이 특별강의 연사로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자리에 모인 것. 경 사장은 이날 ‘꿈과 행복의 삼성반도체: 지속가능한 미래’라는 주제로 한 시간 반 동안 강연을 진행했다.

강연은 삼성전자와 채용 연계를 맺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계약학과 학부 및 대학원 재학생을 위해 꾸려졌다. 지난달에도 경 사장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카이스트)을 찾아 같은 주제로 연단에 서며 대학가에 모습을 비췄다. 기업과 직접 관련이 있는 학과라고 해도 사장이 직접 나서 강연하는 것은 이례적인 경우다.

업계에서는 경 사장의 행보를 반도체 인재 확보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한다. 반도체 인력난은 업계에서 가장 크게, 오래 해묵은 문제 중 하나다. 미래 먹거리 확보는 곧 기술 경쟁력에서 나오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 인재 충원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지난해 12월 시스템반도체공학과 정원을 2024년부터 50명에서 100명으로 증원하고, 계약학과를 대학원까지 확대 운영하기로 했다.

현실은 녹록하기 그지없다. 지난해 시스템반도체공학과 최초 합격자 10명이 모두 입학을 포기하며 ‘최초합 0’이 됐다. 추가합격만 13명이 발생했을 정도였다. 이공계 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 현상으로 반도체 관련 학과 선호도는 더욱 시들해졌다.

연세대에만 한정된 일이 아니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연세대, 고려대, 서강대 등 서울 주요 대학교 반도체 취업 연계학과 수시모집 최초 합격자 84명 중 58명이 등록을 포기했다. 어림잡아 10명 중 7명이 입학을 포기한 것이다. 지역권 대학교 반도체 관련 학과는 충원이 미달하기 일쑤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국내 반도체 기업 인력 부족 규모가 앞으로 연간 3000명, 10년간 누적 3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봤다. 학과 정원을 늘리는 정도의 단순한 방법으로는 1년에 3000명의 인재를 끌어올 수 없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경 사장의 강연 제목인 ‘꿈과 행복의 반도체’를 유심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연세대 강연 중 경 사장은 여러 번 ‘행복’을 강조했다. 삼성전자 DS부문의 사내 문화를 소개하며 “반도체가 있어야 미래를 꿈꿀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선 첫 번째가 행복”이라며 “본인이 행복하게 일하고, 인정받으며 일해야 한다. 회사 구성원의 행복과 꿈을 연결할 수 있으면 하고, 여기 계신 분들도 그랬으면 한다”라고 언급했다.

반도체 인재들이 계약학과를 진학해 행복을 보장받는다면 학과 진학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일의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배움의 행복이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학과 커리큘럼 다양화, 전공 교수 확충, 현장 교육 확대, 취업 이후 복리후생 및 연봉 보장 등을 갖춰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김덕기 세종대 전자정보통신공학과 교수는 기존 전자공학과, 물리학과에서 하는 수업과 현재 반도체 학과의 수업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기업에서 원하는 ‘실무 경험’을 가진 인재로 만들 것을 강조하며 인턴 제도 확대를 대안으로 내놨다. “미국은 인턴 제도를 활용해 학부생들을 3달 정도 현장에 투입하는데, 이때 많은 반도체 관련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정부와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이와 같은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백승은 기자
bse1123@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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