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TF] ⑧ 尹 “반도체 경쟁은 산업 전쟁”…韓 위기 속 기회
전세계적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제조분야의 산업적 가치가 중요해졌고, 그에 따라 소재·부품·장비(소부장)산업에 대한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미중 패권경쟁에 따른 아시아 지역의 변화와 유럽연합(EU)의 적극적인 공세로 인해 우리나라는 제품만 생산해내는 위탁국가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해외 정세에도 흔들림 없는 K제조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물밑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소부장 강소기업 육성을 통한 경쟁력 제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부장 미래포럼>은 <소부장 TF>를 통해 이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총체적 시각을 통해 우리나라 소부장의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점검하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숙제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디지털데일리 김문기 기자] “반도체 경쟁은 산업 전쟁이고, 국가 총력전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일 영빈관에서 제17차 비상경제민생회의로 반도체 국가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반도체 산업은 우리 수출의 약 20%, 제조업 설비투자의 55%를 담당하고 있는 국가 기간산업이다. 하지만 글로벌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지각변동으로 인해 마주한 과제들이 산적한 상태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이 ‘전쟁’이라는 표현을 한 셈이다.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구축
이에 앞서 삼성은 지난 3월 15일 경기도 용인 ‘첨단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에 총 300조원을 투자한다고 선언했다. 정부가 ‘제14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통해 전국 15개 지역을 국가산단으로 조정키로 한데 따른 민간의 화답이었다.
정부와 삼성 등 민관 양측은 오는 2042년까지 첨단 반도체 제조공장 5곳을 구축하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유망한 소재부품장비 업체와 팹리스 기업 등을 최대 150곳 유치한다는 전략이다. 경기도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선다면 기흥과 화성, 평택, 이천뿐만 아니라 판교 등과 연계해 소부장과 파운드리, 팹리스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벨류체인을 구성할 수 있다. 즉, 세계 최대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가 완성된다.
삼성에 따르면 이번 20년간 300조원 투자는 국내 경제 전체에 직간접 생산유발 효과를 낼 수 있게 된다. 약 700조원의 생산유발 효과뿐만 아니라 160만명의 고용유발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이번에는 정부와 국회가 화답했다. 3월 30일 그간 계속해서 지연됐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 일명 ‘K칩스법’이라 불린 이 개정안은 ▲반도체 ▲2차전지 ▲디스플레이 ▲수소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국가전략기술의 투자세액공제율을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세액공제율은 기존 8%에서 15%로 늘어나고, 중소기업의 경우 16%에서 25%로 크게 늘어난다.
세액공제 혜택 적용 범위는 기존 반도체·2차 전지, 디스플레이·백신에서 수소 등 탄소중립산업과 전기차 등 미래형 이동수단까지 확장했다. 임시투자 세액공제제도도 포함됐다. 올해에 한정해 신성장 및 원천기술, 일반 기술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비율을 2%포인트~6%포인트로 올리고 투자 증가분의 10%를 추가로 공제한다는 내용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연이은 방한
민관이 함께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구축에 힘을 쏟자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글로벌 협력사들이 하나둘씩 한국을 찾았다.
지난 4월 17일 방한한 미국 인테그리스는 수원에 반도체 소재 개발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했다. 인테그리스는 화학기계연마(CMP) 슬러리를 비롯해 반도체 특수 가스, 밸브, 튜브 등을 공급하는 업체다. 이 회사는 1996년 한국 진출해 경기 화성·평택, 강원 원주 등에 공장을 두고 있다.
3월말에는 미국 KLA가 경기 용인 서플러스 글로벌 반도체 장비 클러스터에 신규 LKS(Learning and Knowledge Services) 트레이닝 센터를 개소했다. KLA는 반도체 검사장비 분야 1위 업체이기도 하다. 전세계에서 9번째로 설립하는 센터로 클린룸, 핸들러룸, 강의실 등이 들어선다.
이밖에도 선제적으로 우리나라에 문을 두드린 사례가 두드러진다.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기업인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는 지난해 7월 산업통상자원부와 국내 연구개발 센터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다. 용인과 경기 남부 지역을 물색 중이다.
최첨단 공정 반도체 장비기업인 네덜란드 ASML도 경기 화성에 극자외선노광장비(EUV) 클러스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2400억원을 투입해 올해 트레이닝 및 재제조 센터가 집적된 시설을 조성한다. 독일 자이스도 서울 송파구 브랜드 센터와 경기 동탄 이노베이션 센터를 개관했다.
반도체 장비 톱5인 미국 램리서치와 일본 도쿄일렉트론(TEL)도 한국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램리서치매뉴팩춰링코리아라는 생산법인을 운영 중인 가운데 오산, 용인에 이어 화성공장을 가동 개시했다. 한국 생산능력(캐파)은 2배로 늘어나게 됐다. TEL은 2020년 ‘평택기술지원센터(PTSC)’를 신설했고 2021년에는 화성사업장 내 신규 R&D 센터를 마련했다. 독일 머크(CMP 슬러리·린스액), 미국 듀폰(포토레지스트), 영국 에드워드(진공펌프) 등 해외 반도체 소재 및 부품업체들은 기존 사업장을 확장하거나 추가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한일 외교 갈등이 누그러지자 일본 소부장 기업들의 한국행도 눈에 띈다. 포토레지스트 양산 기업인 도쿄오카공업(TOK)와 스미토모, 이미지센터용 컬러필터 재료를 만드는 후지필름 등이 언급된다.
특히, 최근에는 네덜란드 ASM이 경기 화성에서 ‘제2제조연구혁신센터’ 기공식을 개최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협약한 ASM은 이 곳에 1억달러(한화 약 13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ASM은 반도체 장비회사로 실리콘 웨이퍼 위에 박막을 형성하는 증착 공정에 특화됐다. 특히원자층증착(ALD) 분야에서는 세계 1위다.
다만, 반도체 ‘전쟁’이라는 상황을 감안하지 않으면 안된다. 글로벌 기업의 한국 진출은 환영할 일이기는 하나, 이로 인해서 국내 소부장 기업들이 피해는 보는 일은 막아야 한다. 이미 업계에서도 이같은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일본 기업 투자유치 자체를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국내 업체들이 피해를 보지 않을 시스템 구축이 동반돼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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