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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부장 TF] ⑥ 中 반도체 고립 전략 확대...기업 매출 구조도 바꿨다

이건한 기자

전세계적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제조분야의 산업적 가치가 중요해졌고, 그에 따라 소재·부품·장비(소부장)산업에 대한 관심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하지만 미중 패권경쟁에 따른 아시아 지역의 변화와 유럽연합(EU)의 적극적인 공세로 인해 우리나라는 제품만 생산해내는 위탁국가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 해외 정세에도 흔들림 없는 K제조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물밑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소부장 강소기업 육성을 통한 경쟁력 제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부장 미래포럼>은 <소부장 TF>를 통해 이같은 현실을 직시하고 총체적 시각을 통해 우리나라 소부장의 과거를 살피고 현재를 점검하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숙제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제재가 지속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제재가 지속되고 있다

[디지털데일리 이건한 기자] 미국의 반도체 중심 중국 제재가 장기화되면서 시장 내 중국의 영향력은 감소하고 주요 기업들의 대중국 매출 비중도 달라지는 등 지형 변화가 빨라지고 있다. 또한 주요국들도 중국 견제에 힘을 보태기로 하면서 업계의 소부장 기업들은 냉가슴을 앓게 됐다.

2019년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부터 시작된 미국의 중국 제재는 바이든 행정부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취임 후 수출 통제를 적용하는 중국 기업과 기관의 수를 늘리는가 하면, 2022년 칩스법(Chips act)과 칩4(Chips 4) 동맹도 연이어 추진했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의 입지는 공고히 하고 중국은 지속해서 고립시키기 위한 전방위적 압박이다.

특히 올해 1월 미국과 일본, 네덜란드 3국의 고위급 당국자 회의에서 미국이 양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제한 동참 약속을 받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 같은 압박의 수위는 보다 강력해질 전망이다.

이 같은 조치는 미국이 지난해 10월 자국의 기술과 장비를 활용한 반도체 및 제조장비의 중국 수출 통제를 결정한 뒤, 이해관계에 포함된 미국 기업들이 경쟁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해 이뤄진 것이다. 네덜란드는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EUV(극자외선) 장비의 사실상 독점적 공급사인 ASML이 본사를 둔 국가다. 일본에는 세계 3위 규모의 반도체장비 업체 ‘도쿄일렉트론(TEL)’이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중국에 또다른 악재다. 관련해 지난 2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이 해외 의존 없이 반도체 산업 기반을 되찾는 데 20년이 걸릴 수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중국 수출규제 이후 중국은 그간 네덜란드와 일본 장비 의존도를 높여왔기 때문이다. 미국도 이 점을 노리고 양국에 중국 수출규제 동참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실제로 네덜란드는 올해 3월 초 반도체 기술 수출 통제 강화를 공표했다. 일본도 오는 7월부터 23개 반도체 장비에 대한 반도체 수출 규제를 강화하기로 하면서 중국의 또다른 낭패는 곧 현실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국가가 주도하는 시장 변화는 반도체 업계에 나비효과로 돌아오고 있다. 이에 따른 기업의 판매 제품 비중, 투자 지형도 변화도 이미 시작된 모습이다. 일례로 전세계 반도체 장비 매출 1위 기업인 미국의 어플라이드머리티얼즈(AMAT)는 올해 회계연도 1분기 매출(67억4000만달러)에서 중국 매출 비중이 전년 동기 32%에서 17% 수준으로 대폭 줄었다.

램리서치는 올해 1분기 실적발표 후 대중국 매출이 이전 예상보단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수출규제가 최첨단장비 중심이고, 당초 제한품목으로 예상된 일부 제품은 거래가 가능한 것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ASML은 남은 2년치 수주잔고 약 390억유로(약 55조원) 중 중국향 물량은 약 30% 정도라고 밝혔다. 다만 대부분 전기차용 장비로 당장 수출규제 대상인 최첨단 장비 판매 제한의 영향은 크지 않다.

그러나 향후 중국 제재의 장기화 및 추가제재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미국이 그동안 중국과 무역전쟁을 치르면서 큰 이익을 거두지 못했음에도 제재의 고삐는 계속 강화해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책변화에 사업 사이클이 긴 반도체 업계가 신속히 대응하긴 어렵다. 높았던 중국 매출 의존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첨단장비 매출 의존도는 당분간 낮추고 수익시장을 다변화하는 등 고육지책 마련이 필요해진 상황이다.

실제로 최근 글로벌 반도체 장비사들의 한국 투자는 어느 때보다 활발해졌다. 한국에는 메모리반도체 주요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다. AMAT는 현재 한국에 메모리 장비 연구센터 건설을 추진 중이며 램리서치는 2021년 경기도 화성에 3공장을 신설하고 지난해엔 용인에 연구센터를 개소했다. ASML도 화성에 신사옥과 부품공장을 건설하며 한국행에 동참했다. 이는 중국 사업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만큼 미국의 우방국이자 사업 규모가 큰 한국 기업들을 겨냥해 실적 부진을 완화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한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올해 1분기 기준 중국 매출 비중이 각각 18.8%, 30.4%로 전년 동기 대비 소폭 감소했다. 한국 기업들은 아직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와 관련해 유예 기간을 적용받고 있다. 당초 올해 10월까지였으나, 미국 정부는 이달 초 한국과 대만에 대한 예외를 추가로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덕분에 한국 업계는 가까운 발등의 불은 꺼진 상황이다. 그러나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외국기업에 대해선 별도의 장비 반입 기준 적용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중장기적으론 중국 의존도를 계속 낮출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미중갈등의 장기화가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이건한 기자
sugyo@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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