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 칼럼

[취재수첩] NEIS로 촉발된 공공SW 대기업 참여론, 해결사 될 수 없어

이상일 기자
ⓒ NEIS 홈페이지 대문 캡처
ⓒ NEIS 홈페이지 대문 캡처

[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지난 21일 개통한 4세대 교육행정 정보시스템 ‘나이스(NEIS)’에서 일선 선생님들이 작성한 ‘문항 정보표’ 7건이 타 학교에 노출됐다.

시스템 주사업자인 쌍용정보 컨소시엄은 두 사람 이상이 동시에 출력 버튼을 누르면서 출력 혼선으로 7건의 출력오류가 발생했으며 발생 12시간 만에 바로 잡았다고 밝혔다.

쌍용정보통신 관계자는 “지난 6월 21일 개통한 4세대 나이스가 접속 지연과 출력 오류로 인해 학교 현장에서 일선 교사와 학생에게 많은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깊이 사과하고, 더 이상의 불편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부와 긴밀한 협의 속에 시스템 안정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일선 교육행정에 혼란을 일으킨 것은 교육부와 주사업자의 잘못이 분명하다. 하지만 일각에서 이번 시스템 오류의 원인을 공공 SW사업에 대한 대기업 참여제한제도에서 찾으려는 것은 안일한 발상이다.

교육부는 2020년 발주 당시 개통 시기를 1년 늦춰가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에 대기업 참여 제한을 풀어줄 것을 4차례 요청한바 있다. 시스템 안정성 면에서 대기업의 사업 참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과기정통부는 당시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후 논란은 공공 소프트웨어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 존치여부로 번졌다.

공공 소프트웨어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는 2013년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시행됐다. 대기업이 공공 SW 업계를 장악하는 것을 막고 중견·중소 SW 기업에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지난 2013년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을 통해 도입된 제도다.

대기업이 시장을 떠난 이후 국내 공공SW시장은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이 사업 수행에 나섰다. 특히 대기업 SW기업 외에 중견이라고 할 수 있는 SW기업이 나타날 수 있는 토양 자체가 마련된 것이 국내 SW생태계를 활성화시켰다는 점에서 공격받을 이유는 없다.

물론 대기업 아래서의 국내 SW생태계와 중견중소SW기업 아래서의 SW생태계에서 이전과 동일한 문제, 예를 들어 재하청, 책임주체의 부재, 반복되는 야근 등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능의 키’처럼 대기업이 시장의 구원투수처럼 등장하길 원하고 기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특히 법안 시행의 결과를 단기간에 놓고 판단하는 것도 위험하다.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의 사업 능력을 단순 비교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우선 전반적으로 국내 IT서비스기업들의 대외사업 수행 능력은 이전과 달리 떨어진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네카오’와 같은 IT테크 기업들로 개발자들이 대거 이직하고 일반 기업들의 개발자 연봉이 크게 높아지면서 개발자들의 쏠림 현상이 가속화됐다.

특히 공공SW사업처럼 인력 기반의 SI(시스템통합) 사업은 개발자들로서도 내켜하지 않는 프로젝트가 된지 오래다. 인력난 심화는 그래서 SI기업에 있어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대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금융권에서 진행된 대형 IT프로젝트 대부분이 오픈 당일 장애를 겪는 것이 통과의례처럼 되어버렸다. 또, 사회보장정보시스템(행복이음) 프로젝트는 2022년 9월 개통 후 당월, 오류 신고가 6만1401건에 달하기도 했다. 해당 사업을 진행하던 컨소시엄은 4차 개통을 준비 중인 상황에서 사업 철수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 사업 대부분이 대기업 IT서비스업체들이 수행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거 인력을 투입해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은 대기업들이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사업 수행의 과정과 문제, 그리고 결과를 겪는 과정은 대기업이나 중견, 중소기업이나 동일한 셈이다.

업계에서는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에서 문제를 찾을 게 아니라 시스템 구축의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내 SW사업 생태계 구성원들의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이 고민돼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수천억원의 비용이 들어가는 대형 사업을 발주하는 것은 이미 금융권 등에서도 지양하고 있는 사안이다.

사업 형태적으로 금융권의 경우 점진적 시스템 오픈이라는 방식으로 과거 차세대시스템 구축 사업을 대체하고 있다. 애초에 2-3년이 걸리는 대형 시스템 구축 사업은 최신의 IT기술과 현업의 요구사항을 반영할 수 없다는 전제 아래서다.

사업 품질 면에선 정부나 공공기관이 대형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 유지, 관리해나갈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도 던져진다.

이른바 공공SW 사업 기획 당시 시스템 품질은 ‘네카오’와 같은 편의성과 효율성을 목표로 하지만 설계와 구현 과정에서 기존 조직의 논리와 이해득실과 같은 문제가 겹쳐진다. 개발 과정에선 요건 정의 과정에서 미처 도출되지 못한 과업변경이 당연한 듯이 따라온다. 이후 변경된 과업을 반영하지 못한 시스템 오픈 일정이 다가오면서 결국 무리한 오픈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점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플랫폼정부(이하 디플정) 사업이 지향하는 바는 의미 있는 대목이다. 디플정은 모든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이 시스템으로 연결되는 것을 궁극적으로 목표하고 있다. 3000억원 규모의 나이스 시스템과는 규모를 달리한다.

물론 이를 일거에 구축하는 빅뱅 방식의 사업은 타당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때문에 디플정은 플랫폼 정부시스템으로서 전통적인 수·발주 형태의 IT프로젝트를 벗어나 플랫폼 형태의 모듈화, 애자일 방식을 통해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전자정부의 네이버, 카카오와 같이 사용자가 쓰기 편한 시스템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여기에 민간의 역량을 접목시킨다는 전략이다. 여기서 민간의 역량이란 단순히 시스템 구축 능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서비스의 기획, 설계부터 민간 역량을 반영해 기존 경직된 정부부처, 내부 조직 논리가 배제되고 국민과 서비스 운영자만을 위한 발전적인 혁신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초점이다. 공공SW 시장에서 관행처럼 굳어져 있는 미흡한 설계, 이어지는 과업변경으로는 국내 대중소 SW기업의 역량이 발휘될 수 없다. 결과적으로 대기업이 현재의 공공SW 대형 사업에 참여한다고 해서 이러한 문제가 봉합 될 것이란 기대는 섣부른 결론이다.

모든 시스템에는 안정화라는 단계가 있다. 안정화 전에 최대한 시스템의 무결성과 오류를 잡아내는 것이 IT프로젝트에 있어 중요한 일이지만 버그와 오류없는 시스템을 만드는것은 쉽지 않다. 오류가 발생하면 원인을 찾아내고 빠르게 대처하는 것이 최근 IT역량의 척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어렵게 발전해 온 생태계의 근간 자체를 흔들려는 시도는 우리 SW시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보지 않는다.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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