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통신경쟁촉진방안]① 백화점식 정책남발…실효성은 어디에

권하영 기자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 ⓒ연합뉴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 ⓒ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지난 6일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통신시장 경쟁촉진 방안’은 한마디로 “할 수 있는 건 다 내놨다”는 말로 평가할 수 있다. 제4 이동통신 도입과 알뜰폰 활성화부터 통신요금 선택권 다양화, 휴대폰 지원금 상향 등 다양한 방면에서 백화점식으로 정책이 나열됐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정부 정책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과연 기대한 대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부호가 달린다.

◆ 제4이통 도입·알뜰폰 활성화 정책, 과연 먹힐까?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이종호, 이하 과기정통부)가 추진하는 통신시장 경쟁촉진 방안은 크게 두가지 큰틀을 지닌다. 바로 ‘제4 이통 도입’과 ‘알뜰폰 활성화’다. 기존 통신3사로 고착화된 경쟁구도를 깨기 위해서는 제4 이통이든 알뜰폰이든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라고 본 것이다.

과기정통부는 그래서 제4 이통을 위한 주파수 할당대가·조건 완화를 약속했다. 기존 통신사 네트워크로 일부 로밍을 할 수 있게 하고, 정책금융(최대 4000억원)·세액공제·단말유통 등도 지원하기로 했다. 알뜰폰 사업자에는 도매제공의무 상설화, 데이터 선구매제 확대, 통신3사 자회사 알뜰폰 시장점유율 규제 강화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단지 플레이어가 하나 더 늘었다고 해서 굳어진 경쟁체제를 뒤집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통신사들과 어느 정도 경쟁할 수 있는 체력을 갖춘 플레이어가 필요하다. 현재로선 어느 쪽도 가능성이 희박하다. 제4 이통만 해도 눈에 띄는 기업 후보가 없고, 알뜰폰 시장도 통신사 계열과 KB국민은행을 제외하면 모두 중소 업체들이다.

과기정통부가 내놓은 파격적인 혜택에도 지금까지 제4 이통에 지원하는 기업은 많지 않았다. 네이버·카카오·쿠팡·롯데 등 과기정통부가 러브콜을 보낸 여러 기업들이 제4 이통에 난색을 보였다. 5G 28㎓ 주파수만으로는 경쟁력 있는 사업을 하기 어렵고 전국망을 구축하자니 더 많은 돈이 든다. 통신업을 대상으로 한 강력한 규제도 걸림돌이다.

알뜰폰을 위한 정책도 실효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도매제공의무 상설화는 국회에서 반대 기류가 감지되고 있고, 데이터 선구매제도 국민은행 정도를 제외하면 중소 업체들은 애초에 데이터를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더군다나 설비를 갖춘 풀(Full)MVNO가 될 수 있는 통신사 자회사들에는 점유율 족쇄를 채웠다.

김용희 동국대학교 교수는 “정부가 시장에 어느 정도 시그널을 줬다는 데 의미는 있지만, 정말 제4 이통 출현을 원했다면 더 파격적인 정책을 내놨어야 했다”며 “풀MVNO 또한 결국 그걸 할 수 있는 건 대기업들인데, 대기업에 대한 알뜰폰 시장점유율 한도를 50%로 제한한 것은 결국 모순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 법 개정 필요한 정책들도 다수…높기만 한 국회 벽

정부 의지만으로 할 수 없는 정책들도 많다. 일단 알뜰폰 도매제공의무 상설화가 그렇다. 알뜰폰 도매제공의무를 상설화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이는 국회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국회에선 이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도매제공을 사실상 영구 의무화하는 것이 과도한 민간규제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실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는 도매제공 의무를 아예 삭제하거나 한차례만 연장하도록 하는 법안들이 꽤 발의돼 있다. 가장 최근에는 이정문 의원이 도매제공 의무기간을 3년 연장한 뒤 재연장 여부는 해당 시점에서 검토하되 정부가 재연장을 위한 성과목표 달성여부를 국회에 제출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다.

경쟁촉진 방안 중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상 유통망 추가지원금을 기존 공시지원금의 15%에서 30%로 상향하는 내용도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추가지원금 한도 30% 상향을 담은 단통법 개정안은 이미 일부 의원들의 반발을 사면서 국회 차원에서 쟁점 법안으로 분류돼 제동이 걸린 적이 있다.

당시 문제가 됐던 것은 중소 유통망의 반대였다. 휴대폰 판매점주들이 모인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KMDA)는 당시 개정안에 대해 “대형 유통점으로 지원금의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며 “통신사들이 오히려 한정된 마케팅 비용으로 기본 공시지원금 자체를 낮출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과방위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이런이런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선언적 의미는 있겠지만, 업계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부분을 국회가 순탄하게 통과시켜줄지는 모르겠다”며 “알뜰폰 도매제공의무 같은 경우 일부 의원들은 알뜰폰 시장의 자생력에 의문을 갖고 오히려 의무를 폐지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사업자 협의 전제돼야 하는데…‘밀어붙이기’식 우려

이 밖에 사업자들과 긴밀한 합의가 필요한 사안들도 있다. 과기정통부가 제시한 ‘통신3사와 사용량에 부합하는 5G 요금체계로의 개선’은 사실상 최저가 요금제를 인하하겠다는 것인데, 지금까지 정부 압박에 중간요금제도 겨우 내놨던 통신사들이 쉽게 응해줄지는 미지수다. 5G 알뜰폰 도매대가 인하도 원래 사업자 협상이 필요한 부분이다.

다양한 중저가 단말이 출시될 수 있도록 제조사와 협의한다는 부분도 아리송하다. 단말 선택권 확대 부분은 결국 삼성전자와 합의를 해야 하는데, 글로벌 전략으로 움직이는 삼성에 정부가 실질적으로 관여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제도적으로 ‘중저가 단말기 쿼터제’를 도입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역시 제도개선이 선행돼야 한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물론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들에 사업자들도 최대한 발을 맞추겠지만, 정책을 내놓기에 앞서 사업자들과 사전 의견수렴이나 협의가 없었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며 “정부가 확정적으로 이런저런 정책들을 내놓고 사업자들이 뒤따르는 식으로 가다 보면 오히려 투자가 줄어드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권하영 기자
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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