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2023 디지털금융③]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 이후… 시장은 ‘공정’(公正)해 졌을까
- ‘기울어진 운동장’논란 이후… 尹 정부들어 새로운 경쟁 원칙 제시
- 금융플랫폼 급격한 팽창속 ‘불공정’사례 빈발… 갈등 지속
- 스타트업‧핀테크 육성, 디지털금융 취약 계층 보호… 상생의 지혜 절실
[디지털데일리 박기록 기자] 역사는 필연의 시퀀스(Sequence)이다.
지난 2021년 10월, 당시 국회 공정거래위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상생’의 해법을 제시하면서 연신 고객을 숙였다.
카카오가 막강한 플랫폼을 이용해 택시 뿐만 아니라 업종을 불문하고 다양한 업종에 속속 진출하면서 결국 골목상권 침해 논란으로 비화됐다. 이른바 ‘카카오사태’다.
결국 논란 끝에 “카카오는 특정 업종에 진출하지 않겠다”는 김범수 의장의 상생 약속 선언으로 이어졌다. 만약 당시 논란이 없었다면 지금쯤 골목마다 ‘카카오 미용실’ 간판이 형형히 돌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카카오의 ‘상생’ 약속은 어디까지나 기업 선의에 의한 스스로의 자제일뿐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는 마땅한 제어수단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카카오가 아니더라도 제3의 플랫폼업체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골목상권에 진입할 수 있다.
금융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같은 문제점을 인식해서 나온 정책적 방향이 ‘기울어진 운동장’론에 대응한 ‘평평한 운동장’론이다.
금융권에서 제기됐던 ‘기울어진 운동장’논란은 앞서 문재인 정부 시절, 급성장한 핀테크 혁신 기술회사들이 기존의 전통적인 금융회사들을 압도하는 플랫폼 기반의 금융서비스를 시장에 제시하면서 커지기 시작됐다. 이 결과 어느 순간 은행, 보험 등 전통적인 대형 금융회사들이 플랫폼 기업에 줄을 서는 상황이 연출됐다.
결국 금융 당국은 운동장을 평평하게 다시 시정하기위한 방법으로 기존 전통적인 금융회사들에게도 핀테크 기업들과 동일한 수준의 혁신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대대적인 ‘규제 혁신’에 나섰다. 금융회사가 불가능했던 혁신금융서비스들을 폭넓게 허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금융분야 AI활용을 촉진‧지원하기 위한 인프라 확충을 목적으로 금융업권별·서비스별 특성을 반영한 ‘AI 가이드라인’ 마련 ▲금융회사 등의 AI 활용 인프라(데이터 라이브러리 및 테스트베드)구축 ▲금융-통신 등 이종(異種)산업간 데이터 결합 활성화 ▲개인별 맞춤형 종합금융플랫폼 도입을 위한 오픈파이낸스 ▲마이데이터 확대 등이 매우 탄력을 받으면서 진행됐다.
또 이런 과정에서 금융 IT인프라의 원활한 확장과 활용, 금융데이터를 활용한 부가가치 창출등을 위한 다양한 목적으로 클라우드 규제의 대폭적인 완화, 금융 물리적 망분리의 완화 등도 이뤄지게 됐다.
신한은행이 지난 2021년 하반기 국내 은행권에선 처음으로 본업과 꽤거리가 있어보이는 O2O배달플랫폼 사업에 진출할 수 있게 된 것도 이같은 정책 기조가 변화된 결과다.
업종별로 보면 올해 은행권에 대해서는 ▲‘디지털 유니버셜 뱅크(종합금융앱)’ 구현을 위한 제도적 여건 조성 ▲핀테크업체 투자제한 개선 등을 통해 산업간 융합 촉진 ▲은행의 계열사에 대한 고객정보 제공행위(고객 동의下) 허용 명확화 등이 제시됐다.
◆문 정부 ‘평평한 운동장’이어… 尹 정부가 정의하는 디지털금융 시장의 ‘공정’이란?
작년 5월10일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국정 기조 키워드는 ‘공정’(公正)이다.
디지털금융 시장 생태계내에서 소비자에 대한 플랫폼의 우월적 지위를 제어하고, 또 핀테크 기업에 무차별적인 서비스 개방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생태계의 안정적 성장과 균형을 도모하는 것을 ‘공정’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는 전임 문재인 정부 당시 거대 플랫폼기업들을 제어하기위한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기와는 결이 다른 얘기다.
빅테크에 대한 금융 당국의 규제보다는 이제는 모두가 참여하고 있는 디지털금융 시장 생태계 내에서의 불공정한 경쟁을 바로잡는데 무게중심이 옮겨졌다.
실데로 카카오, 네이버 등 거대 플랫폼 기업 및 핀테크 기업들도 금융 플랫폼시장에서의 역할이 예전처럼 영향력이 폭발적이지 않다. 또 ‘마이데이터’(Mydata)가 2022년부터 시행됨에 따라 ‘초개인화’서비스를 내세운 KB, 신한, 하나 등 국내 주요 금융기업들의 ‘플랫폼금융’서비스도 빠르게 진화를 거듭해 이제는 탄탄한 서비스 경쟁력 갖췄다. 더 이상 금융산업에 있어서 ‘기울어진 운동장’ 이슈는 유효하지 않다.
올해는 ‘플랫폼금융’ 서비스 구조에서의 금융소비자 또는 디지털플랫폼 대항력이 아직 부족한 중소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불평등’, ‘정보격차’, ‘불공정 관행’ 해소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보완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디지털금융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2023년 금융 당국의 디지털금융 정책 방향은 과거에 비교해 좀 더 진화된 이슈로 전진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 5월31일 시작된 ‘대환 대출인프라’ 서비스를 비롯해 ▲디지털 취약 계층을 보호하기위한 금융회사들의 점포 폐쇄 제동과 대안 마련 ▲장애인 등을 위한 금융서비스의 원활한 지원 ▲주가조작 및 불법공매도 등 자본시장 질서를 교란시키는 범죄에 대한 엄중한 단죄 ▲금융회사 임원 책임의 명확화와 내부통제 강화 등은 결국 금융산업의 신뢰를 확보하기위한 ‘공정’의 카테고리에 포함되는 정책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주요 금융회사들의 E.S.G 노력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플랫폼금융 시대, 누가 보호받아야하는가… ‘온라인 보험상품 비교 플랫폼 시범사업안’에 투영된 ‘公正’의 원칙
21세기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디지털 격차에 의한 약육강식(弱肉强食)은 필연적이다. 시장 자율이란 미명아래 ‘정글의 원칙’만 남겨놓더라도 어떤식으로든 시장은 보이지않는 손의 원리에 따라 안정의 균형점을 찾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균형점을 찾아가는 동안의 참혹한 과정,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도출된 결과가 반드시 공동체 구성원들이 바라는 모습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플랫폼기업과 기존 금융회사들간에 ‘공정한 경쟁의 조건’이 서로 다 갖춰졌다면 플랫폼금융 시대에서 최종적으로 보호받아야할 대상은 결국 ‘금융소비자’로 귀결된다.
지난 4월, 금융위원회는 보험 소비자들의 편익을 제고하고 보험업권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플랫폼의 보험상품 취급 시범운영 방안’을 마련했다. 즉 보험 가입자들에게 필요한 보험료 비교 정보를 제공하는 ‘보험상품의 비교 플랫폼’ 서비스를 핀테크 및 빅테크 기업들에게 허용하겠다는 취지다.
이 방안은 ‘보험’ 플랫폼 시장 개방과 관련한 가이드라인이지만 앞으로 다른 금융업종의 플랫폼 개방에서도 폭넓게 준용될 수 있는 핵심 원칙들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보험상품의 비교 플랫폼’ 시범안이 금융위원회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받게된다면 빠르면 올 연말부터 금융소비자는 ‘온라인 보험중개 플랫폼’ 등을 통해 여러 보험회사의 온라인 보험상품을 한눈에 비교하고 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상품을 추천받아 보험사 홈페이지에서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게된다.
금융 당국은 이 안을 마련하면서 “국민 대다수가 가입하는 실손보험(가입자 약 4000만명), 자동차보험(가입 약 2500만대)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보험을 플랫폼 비교·추천을 통해 기존보다 저렴하게 가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는 앞서 지난해 8월23일 제2차 금융규제혁신회의 이후 발표한 ‘플랫폼의 보험상품 취급 시범운영방안’의 후속 조치다.
현행 ‘보험업법’의 경우, 보험회사 임·직원, 보험대리점, 그리고 50만명으로 추산되는 보험설계사만 보험 모집행위가 허용된다. 따라서 플랫폼 회사가 보험상품 비교·추천을 하기 위해서는‘혁신금융서비스’ 지정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금융위는 ‘온라인 보험 비교 플랫폼’서비스 시범 방안을 마련하면서 “소비자 편익을 최우선으로 하되 모집채널 영향, 불공정경쟁 우려를 최소화하는 시범운영 방향에 공감대를 형성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시범사업안을 도출하기위한 사전논의 과정에서 개인보험대리점 취급비중이 높은 자동차보험 허용여부, 수수료 한도 등을 놓고 상당한 진통을 겪었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금융위는 시범안 마련과 관련 ‘보험 플랫폼’ 특성을 고려한 ▲모집역할 설정 ▲소비자 보호를 위한 맞춤형 규제 마련 ▲공정경쟁 활성화를 위한 질서확립이라는 3개의 방향을 큰 축으로 정했다.
먼저, 금융 당국은 플랫폼이 데이터 분석 등 소비자 편익을 극대화하면서 기존 보험 모집채널과 조화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플랫폼의 업무범위는 전체 모집단계 중 보험상품을 비교·추천하여 보험회사에 연결해주는 업무로 제한된다. 플랫폼 기업들에게 보험 중개 시장 전부를 개방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또 플랫폼이 취급할 수 있는 상품범위도 설정했다. 보험설계사 등 기존 모집채널 영향, 상품 특성 등을 종합 고려해 온라인 상품(CM)만 비교·추천을 허용했다. 대면설명이나 전화설명이 필요한 상품은 허용대상에서 제외했다.
구체적으로 온라인 보험상품 중 많은 국민이 가입하고 비교 가능성이 높은 단기보험(예: 여행자·화재보험), 자동차보험, 실손보험, 저축성보험(연금 제외)이 허용된다. 상품구조가 복잡하여 불완전판매 우려가 있는 건강보험 등은 제외했다.
또한 보험 비교 플랫폼의 비교·추천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알고리즘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코스콤 등 전문기관이 알고리즘의 적정성을 사전검증하도록 했다.
이밖에 핀테크 등 플랫폼 사업자가 보험료를 비교·추천한 결과를 보험대리점에 제공하여 모집에 활용토록 하는 행위도 금지했다. 아울러 플랫폼이 보험회사로부터 수취하는 수수료가 보험료에 전가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수료 한도도 설정해 자동차보험의 경우 보험료 대비 수수료 한도는 4%대로 제한했다.
◆그래도 보험설계사 등 반발… ‘보험상품 비교 플랫폼’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난항
그러나 이 ‘온라인 보험상품 비교 플랫폼’ 시범 서비스는 지난 6월21일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에서 제외됐다.
현재로선 시행예정일을 알 수 없다.
보험설계사 등 시장 생태계상의 이해당사자들간의 이해를 이끌어내는데 실패했기때문이다.
무엇보다 핵심 서비스인 ‘자동차보험’의 경우 기존 보험설계사들의 반대가 특히 심했고 국내 주요 보험사들도 동참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앞서 ‘보험상품 비교 플랫폼’가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삼성화재·DB손해보험·메리츠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 5대 손보사들은 표준 API를 통한 플랫폼 서비스 운영방안을 금융 당국에 제안했다. 보험비교서비스와 관련한 정보체계를 단일·표준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표준API를 갖추려면 전산개발 등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일각에선 보험사들이 ‘보험상품 비교 플랫폼’서비스를 아예 늦추려는 시간끌기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보험상품 비교 플랫폼’ 서비스 시행을 놓고, 보험산업 생태계의 이해당사자들간의 극심한 진통은 이미 예고된 바 있다.
사례만 달랐을 뿐, 2년전 국내 택시업계와 ‘차량공유’플랫폼 서비스를 놓고 불거진 갈등 사례와 본질적으론 같다.
기존 시장구도에서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경쟁자가 진입한 것에 대한 필연적인 갈등이 뒤따를 수 밖에 없다.
플랫폼의 진화는 시대적 흐름이지만 이같은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것도 결국은 정부의 몫이다.
금융위는 이번 ‘보험상품 비교’ 플랫폼과 관련해 보험업권, 보험대리점, 보험설계사, 플랫폼 업계 등 이해관계자들과 계속 논의해나간다는 입장이다.
◆경쟁 치열해지는 ‘온라인 금융 대출금리 비교’ 플랫폼 서비스… 금융당국, 알고리즘 통해 ‘公正’ 운영 원칙 의무화
‘온라인을 통한 대출금리 비교’는 상당히 파괴력이 큰 플랫폼 서비스이다. 금융소비자는 금리를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민감하게 플랫폼을 통해 제공되는 금리 비교 정보에 반응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온라인 플랫폼 운영주체가 소비자의 편익을 고려하지 않고 중개수수료가 높은 상품을 먼저 배열하거나, 관련 없는 대출 상품에 대한 광고를 노출시키는 등의 이해상충행위를 하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이는 금융 사기에 가까운 불공정이다. 금융소비자가 당초 기대와 달리,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의 상품을 선택하지 못하게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 당국은 온라인 대출모집법인(핀테크 업체)은 이해상충행위 방지 기준이 포함된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이후 플랫폼을 운영하도록 강제했다.
관련하여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감독규정 개정(규정변경예고기간 3.9.~4.18일)을 통해 현행 알고리즘 요건에 준하는 이해상충행위 방지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을 금융상품판매대리·중개업자의 금지행위로 규율해 위반시 과태료 부과가 가능하도록 했다.
앞서 지난 2021년3월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에 따라서 온라인 대출비교 플랫폼을 운영하려는 핀테크 업체는 등록요건을 모두 갖춰 온라인 대출모집법인으로 등록해야한다. ‘금소법’은 온라인 대출모집법인의 등록요건 중의 하나로 ‘알고리즘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알고리즘 요건은 소비자가 플랫폼을 통해 여러 대출상품을 비교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이해상충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것으로, 이 역시 ‘공정’의 가치가 적용된 것이다.
한편 지난 6월21일 금융위는 ‘혁신금융서비스’ 심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에는 20건이 혁신금융서비스로 신규 지정됐으며, 기존에 지정된 혁신금융서비스중 3건이 ‘지정기간 연장’됐다.
20건의 신규 지정건중 무려 16건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예금상품 비교·추천 서비스’에 몰렸다.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면 인가나 영업행위 등의 규제를 최대 4년간(2년+2년) 유예·면제받는 금융규제 샌드박스다. 그러나 이제는 소위 ‘돈되는 서비스’로만 몰리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당초 혁신금융서비스가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사례를 발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도모하기위함이었지만 이제는 정책적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커지는 이유다.
* 본 기사는 디지털데일리가 7월 발간한 <2023년 디지털금융 혁신과 도전>에 게재된 내용을 요약한 것으로, 실제 책의 편집 내용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해당 도서는 디지털데일리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온라인 한정 판매되며 일반 서점에서는 판매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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