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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클로즈업] 정부 ‘송출료 가이드라인’ 개정에도...홈쇼핑 방송중단 위기, 왜?

이안나 기자

[ⓒ 롯데홈쇼핑]

[디지털데일리 이안나 기자] 송출수수료 부담이 커진 홈쇼핑사들이 ‘송출중지’ 등 강수를 두며 케이블TV(MSO)와 갈등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홈쇼핑사들은 케이블TV 가입자 수 감소로 취급고가 줄고 있다며 송출수수료 인하를 주장하고, 케이블TV는 홈쇼핑사들이 원하는 수준의 인하율을 받아들이기엔 어렵다는 입장이다.

홈쇼핑사와 유료방송사간 협상이 불발돼 최악의 상황인 송출중단이 될 경우, 그 피해는 시청자는 물론 홈쇼핑에 물건을 판매하는 협력업체들에 돌아간다. 잠재고객을 조금이라도 더 만나고 싶은 중소기업들은 타의적으로 일부 지역채널에서 노출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서둘러 갈등을 중재시키겠단 입장이지만 업계는 정부 역할에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다.

◆ 홈쇼핑 실적 악화에 ‘방송중지’ 배수진, 케이블TV는 ‘난감’

29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홈쇼핑은 딜라이브 강남 케이블티브이와 계약종료로 10월1일부터 방송송출을 중단한다고 통보했다. 현대홈쇼핑도 LG헬로비전에 송출중단을 통보하며 협상에 배수진을 쳤고, 전날 CJ온스타일 역시 LG헬로비전에 계약종료 상황을 알렸다. CJ온스타일은 사업 환경이 악화하는데도 이를 고려한 협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진전이 없을 경우 빠르면 10월 방송송출 중단을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홈쇼핑사와 케이블TV 등 유료방송사 간 송출수수료 갈등은 매년 있었지만 홈쇼핑사들이 자발적으로 케이블TV 채널에서 빠지겠다고 통보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홈쇼핑 업계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시 감소하는 등 실적 악화가 가시화되자, 인터넷TV(IPTV)보단 홈쇼핑사들이 보다 협상 우위에 있는 케이블TV 대상으로 압박을 가하는 모습이다.

올해 2분기 주요 홈쇼핑 4개사(현대·GS·CJ·롯데) 총 영업이익은 560억원으로 전년동기(1065억원)대비 절반(47%) 수준으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1조2238억원에서 1조1278억원으로 7%가량 줄었다. 반면 송출수수료 부담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송출수수료 규모는 1조9065억원으로, TV홈쇼핑 방송 매출액의 65.7%를 기록했다.

유료방송사들은 홈쇼핑사 모바일 매출 역시 송출수수료 산정에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TV홈쇼핑 방송에서 시청자들에게 모바일 결제를 권장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료방송사 주장에 따르면 모바일 매출 반영 시 송출수수료 비중은 30%대로 하락한다. 이를 두고 홈쇼핑사들은 정부에 지급하는 방송통신발전기금 분담금 기준이 바뀌면 이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홈쇼핑 업계 관계자는 “홈쇼핑사들이 주요 케이블TV 사업자와 협상에서 수수료를 인하하기로 결정하면 다른 케이블TV 채널과 협상에서도 조금 더 유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료방송사 관계자는 “하나의 홈쇼핑사에 수수료 인하를 허용하면, 다른 홈쇼핑사들과 협상에까지 영향이 미쳐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지난 3월 홈쇼핑과 유료방송 업계가 모여 홈쇼핑 방송채널 사용계약 가이드라인 개정안에 합의했다.

◆ 10년 묵은 홈쇼핑·유료방송 송출료 갈등, 풀리지 않는 이유는?

사실 홈쇼핑과 유료방송사 간 송출수수료 갈등은 10년여 전부터 계속 도돌이표 되는 사안이다. 2010년 이전엔 홈쇼핑과 송출수수료 거래 주요 대상이 케이블TV였고 2010년대 중후반 IPTV로 그 비중이 달라졌을 뿐이다. 2000년대 초부터 홈쇼핑 시장이 확대하고 수익성이 커지면서 과거 케이블TV는 송출수수료를 지속적으로 올렸다.

당시 홈쇼핑 업체들은 역시 매년 급성장하며 높은 영업이익을 기록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도 비유돼, 송출수수료가 큰 부담이 아니었다. 그러나 인터넷 수신 기반으로 한 IPTV가 각 가정에 보급되고 유선방송 시장 주도권을 가져가는 사이, 홈쇼핑사들은 황금기를 지나 정체기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IPTV가 초기 급성장하며 홈쇼핑 대상으로 송출수수료를 매년 20~30%씩 높였지만, 과거와 달라진 홈쇼핑 위상에 양측 송출수수료 갈등이 본격화했다. 한국TV홈쇼핑협회에 따르면 홈쇼핑과 데이터홈쇼핑(T커머스)이 지불하는 유료방송 송출수수료는 2010년 4856억원에서 2021년 2조2508억원으로 늘었다.

IPTV는 홈쇼핑사들이 서로 황금채널에 입점하기 위해 경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송출수수료가 증가했다는 주장이다. 실제 롯데홈쇼핑이나 현대홈쇼핑은 각각 2018년과 2019년 높아진 송출수수료 부담을 덜려다 후순위 채널로 밀렸다가 매출이 급감한 바 있다. 양사는 모두 다음해 높은 송출수수료를 지불하고 황금채널로 복귀하기도 했다.

홈쇼핑사들이 매년 송출수수료 인상률에 부담을 토로하긴 했지만, 영업이익 성장 둔화를 넘어 감소세가 시작되자 상대적으로 IPTV보다 영향력이 약한 케이블TV에 수수료 인하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수년째 홈쇼핑과 유료방송사가 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지만 명쾌한 해답은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전체 케이블TV 방송사업 매출에서 홈쇼핑 송출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41.9%에 달한다. 즉 송출수수료가 홈쇼핑사들엔 비용이지만 유료방송사엔 주요 수입원이다. 궁극적으론 유료방송이 홈쇼핑 송출수수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문제가 해소되는데, 시청자 대상 수신료를 올려야 하는 등 이해관계가 첨예해 쉽지 않은 상황이다.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 정부 “대가산정 협의체 정상 가동” vs 홈쇼핑 “협의체 운영방식 깜깜이”

이같은 홈쇼핑과 유료방송사 간 오랜 갈등에, 정부가 어느 수준으로 개입해야 하는지를 두고서도 수년 간 첨예하게 대립해왔다. 유료방송 업계는 정부가 사기업간 협상 과정에 개입할 명분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홈쇼핑사들은 방송법에 근거에 경영활동을 하는 만큼 정부가 송출수수료 갈등을 외면해선 안된다는 관점이다.


이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1년부터 홈쇼핑 방송채널 사용 계약 가이드라인 개정을 위해 수차례 업계 의견을 수렴했다. 그 과정에서도 홈쇼핑과 유료방송 사업자들은 좁히지 않는 의견차를 보였다. 가이드라인 개정안을 마련하는 데 1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어렵게 지난 3월 정부는 송출수수료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홈쇼핑 방송채널 사용계약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며 대가검증협의체 운영방안을 제시했다.

개정 전 대가검증 협의체는 사업자 요청이 있거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만 운영됐지만, 실질적으로 협의체가 가동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에 개정안에선 기본 협상 기간(5개월) 종료 후 홈쇼핑사와 유료방송사업자 중 한쪽이 협상 종료 의사를 통보한 경우 자동 운영되도록 내용을 추가했다.

현재 홈쇼핑사들이 케이블TV에 방송중지 통보를 하는 이때 정부 역할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다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가이드라인 개정안 발표 후 대가검증협의체 등을 어떤 식으로 운영할지 구체적인 운영세칙을 마련하던 중이었으나 담당 실무진들이 교체되면서 사업자들은 섣불리 대가산정 협의체에 회부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롯데홈쇼핑과 딜라이브강남 케이블티브이가 계약 종료로 자동회부되고, NS홈쇼핑이 IPTV LG유플러스와 송출수수료 갈등을 두고 대가검증협의체를 신청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롯데홈쇼핑 사례 경우 대가검증 협의체가 적용된다고 보고, 풀을 구성해서 운영할 예정”이라며 “현대홈쇼핑은 협상이 진행 중이고 지난해 계약과 올해 계약이 함께 언급돼 복잡한 상황이라 좀 더 지켜봐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가검증 협의체 역할과 목적이 가이드라인에 나와있기 때문에 이것에 근거해서 운영할 수 있다”며 “세칙이 마련 안 됐다고 해서 운영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협상 과정에서 불공정한 요소가 있었는지 검토하는 게 정부 역할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정부가 협의체를 가동하겠다고 한 롯데홈쇼핑과 딜라이브강남 케이블티브이 갈등은 방송중지를 예고한 10월1일까지 약 한 달이라는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이 기간 양측 협상 과정에서 대가산정이 적절히 이뤄졌는지 검토에 더해 적절한 중재가 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 업계는 회의적인 모습이다.

이미 송출중지가 진행된 후에 합의가 나와도 ‘뒷북’이란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개정된 가이드라인에서 대가검증협의체는 송출수수료 협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지 않고 자료들을 검증하는 방향에 그친다. 즉 협의체에서 나온 결론을 한쪽 사업자가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홈쇼핑 업계 관계자는 “대가검증 협의체를 가면 회부일로부터 며칠 내 결론을 낸다거나 협의체엔 어떤 전문가들이 위원으로 들어가는지 정도는 알아야 확실성과 공정성을 갖고 회부하는 데 아직 이러한 내용이 사업자들에 공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안나 기자
anna@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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