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클로즈업] 尹정부 ‘인공지능’ 발전‧규제 방안, 기대 반 우려 반
[디지털데일리 최민지 김보민 이나연 기자] 윤석열 정부가 지난 13일 ‘대한민국 인공지능(AI) 도약 방안’을 발표하며, 전국민 AI 일상화 실행계획을 밝혔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AI산업을 발빠르게 선점하는 가운데, 한국도 전세계에서 AI를 가장 잘 활용하는 국가로 거듭나겠다는 복안이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반도체 위주 AI 강화전략에 벗어나 소프트웨어 등 실질적인 AI 영역까지 주목한 점을 높이 샀다. 아직은 선언에 가까운 계획안이지만, 이것이 마중물 역할을 하게 된다면 빅테크뿐 아니라 스타트업도 빠르게 도약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다만, 정부는 ‘발전’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규제’를 통해 AI 부작용을 줄이기로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AI 이용한 가짜뉴스 위험성을 직접 언급하면서, AI 규범 마련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규제 이야기에 반응은 엇갈린다. AI 산업을 키울 수 있도록 범정부 계획을 내놓고, 전세계 화두에 오른 AI 윤리 및 규범 문제까지 발빠르게 대응했다는 평가다. 반면,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빠르게 내놓아야 할 경우 규범이 규제로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경우, 서비스 출시가 지연되는 등 오히려 경쟁력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AI 규제’ 논의, 전세계적 추세 “한국 위상 드높일 것”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범부처 측면에서 내년도 9090억원 예산을 AI 일상화를 위해 투입하는 한편, 디지털 질서‧규범 기본 방향인 디지털 권리장전을 수립한다.
디지털 권리장전은 디지털 공동번영사회를 위한 기본원칙과 그 실현을 위해 보장돼야 할 시민의 권리, 주체별 책무를 규정한다. 뉴욕구상 1주년을 계기로 디지털 권리장전을 발표하고, UN‧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을 통해 국제사회와 공유‧확산해 글로벌 디지털 규범 제정을 주도하겠다는 설명이다.
최근 사회적 문제로 자주 거론되는 AI 관련 윤리‧신뢰성 문제엔 규범‧규제로 대응하겠다는 것인데, 관련해 일부 전문가들은 국내 AI 산업 지원과 제재를 병행하겠다는 정부 정책 방향성이 세계적 흐름에 발맞춘 것으로 봤다. 당장은 기업 부담이 클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산업 발전을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이라는 설명이다.
지난 5월 미국 의회에서 처음 열린 AI 청문회에서 챗GPT 개발사 오픈AI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샘 올트먼은 “AI를 규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내년 22대 총선과 같은 해 11월 미 대선 등을 앞두고, 생성형 AI의 여론 조작 우려에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럽연합(EU)도 지난 6월 각국 정부가 AI를 활용해 시민들을 감시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AI 규제 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켜 현재 회원국들 합의만 남았다. 7월엔 알파벳(구글 모회사)·메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오픈AI 등 7개 주요 AI 기업이 미 백악관과 손잡고 AI로 만든 콘텐츠에 워터마크를 넣는 등 안전조치를 자발적으로 취하기로 했다.
김명주 인공지능윤리정책포럼 위원장(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은 “국제사회는 AI가 인간과 공존하고 함께 성장하려면 처음부터 문제가 될 법한 사안들을 규제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며 “개인정보 유출과 혐오 발언 문제로 3주만에 서비스를 종료한 AI 챗봇 ‘이루다’만 봐도 규제 중요성을 알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도 규제 트렌드를 따라갈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지난 6월 ‘파리 디지털 지번 포럼’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디지털 규범 집행에 국제사회가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유엔(UN) 산하에 디지털 질서 규범 제정을 위한 국제기구를 설치하자고 제안하는 등 AI 기술 규제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 왔다.
관련해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전날 브리핑을 통해 “AI 산업 발전과 윤리‧신뢰성 문제가 상충하기는 하지만, AI가 제대로 발전하려면 적절한 수준의 규범이 있어야 한다”며 “한국이 디지털 권리장전을 통해 AI 규범을 주도한다면, 대의적으로 AI 개발 및 활용 부문 선도국가로 모범을 보여 한국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높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尹, AI 가짜뉴스 등 부작용 우려…산업계, 규제 부정 영향 ‘걱정’
그러나 태동하는 AI 산업 발전에 규제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분명 있다. 디지털 권리장전을 시작으로 AI 규제가 본격 이뤄지면, 당초 목적과 달리 산업 진흥에 제약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정부의 AI 규제 의지는 강하다. 윤 대통령은 가짜뉴스 등 디지털과 AI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시사했다. 전날 윤 대통령은 “전세계 정치인을 만나면 가짜뉴스가 AI와 디지털을 이용해 빛보다 빠른 속도로 확산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미래를 망칠 수 있다는 얘기를 한다”며 “인류 문화와 문명에 해가 되지 않도록 해야 AI와 디지털을 더 잘 이용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AI 산업 발전 양상은 아직 예측 불가능한 부분이 많아, 어떤 식으로든 규제적인 부분이 도입된다면 개발자나 사업자 의도와 다르게 전체 산업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 어린 목소리들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회에 계류된 AI 법안들을 보면 사후규제라고 명시됐지만, 실상 사전규제적 성격을 보인다”며 “유럽 AI 법을 반영한 법안들엔 AI 위험도를 구분해 고위험 AI 개발을 금지하거나 강도 높은 규제를 적용하는 내용이 포함됐다”고 꼬집었다.
이어 “기업이 AI를 개발하다 보면 최초 개발 단계와 최종 서비스 모습이 아예 달라질 수 있는데, 그때마다 새롭게 AI 영향평가 등을 받다보면 서비스 출시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AI 윤리 규범‧규제를 다룰 때 사안별로 논의를 진행하고,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AI 언어모델 기업 관계자는 “디지털 권리장전은 새로운 신질서를 의미하기 때문에 저작권과 관련된 이슈가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라며 “디지털 권리장전 수립은 국가 차원에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경진 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가천대 법학과 교수)은 “AI 발전을 저해할 위해 요소를 제거하는 취지에서 필요한 만큼의 규제를 도입하는 것은 국내 AI 산업에 신뢰를 가져온다”면서도 “새로 떠오르는 시장이라는 점에서 기업은 성급한 규제라고 볼 수 있는 만큼, 국민 인권과 생태계 활성화를 모두 고려한 각 영역의 토론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지원책과 관련해 과기정통부는 이번 계획에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서비스를 연계하고 개발하는 내용이 포함된 만큼, 스타트업에 많은 사업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은 초거대 AI 파운데이션 모델 중심, 스타트업은 전문적 영역에서 서비스 개발에 주력하는 상황이다.
과기정통부는 법률, 의료 등 민간 전문가의 업무를 보조하고, 서비스 질을 향상할 수 있는 초거대 AI 플래그십 5대 프로젝트를 내년부터 추진한다. 구체적으로 ▲데이터를 활용한 법률분야 서비스 개발 ▲소아‧청소년과 등 의료 분야 서비스 개발 ▲정신건강 상담 ▲콘텐츠 쪽 초거대 AI 응용서비스 개발 ▲논문 검토 및 실험 방법 제시 등 학술・연구 분야 서비스 개발 등이다. 이러한 부분들에서 스타트업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단 설명이다.
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혜택으로 꼽히는 세액공제와 관련해 강도현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은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해선 이용료 세액공제를 추가적으로 협의하고 있으나, 인공지능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세액공제에 대해서 아직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초거대 AI 모델을 만드려면 GPU가 필수적인데, 이는 막대한 비용이 수반된다. 네이버 경우, 초거대 언어모델 ‘하이퍼클로바X’에 지난 5년간 누적 1조원을 쏟았다.
AI 서비스 기업 관계자는 “정부의 이번 행보는 민간과 함께 AI 산업을 발전시키려는 이니셔티브라는 점에 의미가 남다르다”며 “규범이 규제가 될지, 아니면 진흥의 시발점이 될지 지켜볼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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