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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발 여론 조작 막자…급부상한 ‘댓글 국적 표기법’, 업계는 왜 만류하나 [국회IT슈]

이나연 기자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디지털데일리 이나연 기자] 올해 초 발의된 이른바 ‘댓글 국적 표기법’ 논의가 몇 개월 만에 다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1일 항저우 아시안게임 한중 남자 축구 8강전 당시 포털 다음(Daum)이 제공하는 ‘클릭 응원’ 페이지에서 중국 응원 비율이 한때 90% 이상 높게 집계된 것이 발단이다.

다음 운영사 카카오가 파악한 결과, 확인된 IP가 만들어 낸 총 클릭 응원 수 2294만건 중 해외 IP 비중이 86.9%(1993만건)인 것으로 확인됐다. 카카오는 즉시 서비스를 중단하는 한편, 이번 일이 매크로(자동입력반복)를 활용한 이례적인 현상이라고 보고 경찰에 수사 의뢰도 예고했다.

정부와 여당은 특정 세력에 의한 여론 조작 가능성을 점치며 철저한 수사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댓글 국적 표기법 역시 여러 대안 중 하나로 거론된다. 반면 전문가와 업계 사이에선 ▲표현·영업의 자유 침해 ▲국적 표시 댓글 제도를 적용할 대상의 불명확성 등 이유로 법안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6일 국회와 업계에 따르면 김기현 대표(국민의힘) 등 의원 11인이 지난 1월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일부개정법률안, 즉 댓글 국적 표기법은 현재 계류된 상태다. 이 개정안은 포털 댓글에서 작성자 접속 장소를 기준으로 국적 혹은 국가명을 표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실제 접속 국가가 아닌 다른 국가로 우회접속하는 경우도 우회접속 여부를 함께 표기하도록 규정했다.

플랫폼 등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관련 자료를 보관하고 주무관청에 이를 제출하는 의무를 위반했을 때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온라인 여론이 특정 국가 출신 개인 내지 단체 등에 의해 특정 방향으로 부당하게 유도·조작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다음 클릭 응원 수 조작 의혹이 불거진 이후, 김기현 대표는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이 여론조작의 숙주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라며 “댓글 국적 표기 법안을 이번 정기국회 내 반드시 통과될 수 있도록 해 댓글 조작이나 여론조작 세력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여당이 댓글 국적 표기법 통과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가운데,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를 비롯한 업계와 전문가들은 표현의 자유 침해나 기술적 어려움 등을 들어 난색을 보였다.

지난 2월 오픈넷은 국회에 댓글 국적 표기법 반대 의견서를 제출해 표현 및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문제 외에도 기술적 문제로 법안 내용 실효성에 의문을 던졌다. VPN을 이용하는 접속자들을 식별해 표시하라는 것은 기술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오픈넷은 “대형 VPN 업체들이 자주 이용하는 IP 주소를 사전에 수집해 게시물 접속 IP들과 대조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으나, 이를 실시간으로 정확히 파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잘 알려지지 않은 VPN 업체를 이용하는 접속자들 경우, 우회 접속 확인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로 하여금 인터넷 이용자 접속지와 우회 접속 여부를 추적·수집·공개할 의무를 법적으로 강제하고,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까지 규정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반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오픈넷은 “인터넷 이용자들이 자신의 위치 정보, 국적과 같은 개인정보를 추적, 수집, 공개당하지 않을 자유인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접속지 정보와 우회 접속 여부 등 통신 정보를 파악당하지 않을 자유인 ‘통신의 비밀과 자유’, 자신의 개인정보를 추적 및 공개 당하지 않고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말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수석전문위원도 법안 검토 보고서에서 “이용자로서는 작성자의 특정 가능성에 대한 우려 등으로 인해 자유로운 표현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제공자로서는 이용자 이용 및 접속 장소 기준 국적(국가명)을 파악하는 것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든다”고 전했다.

아울러 “작성자 실제 국적과 접속지 기준 국가명 사이 불일치로 인해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나 갈등이 발생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며 “VPN을 이용해 우회 접속하는 경우 작성자가 임의로 표기되는 국적(국가명)을 조정할 수 있어 개정안이 의도하는 건전한 여론 형성에 오히려 역행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업계도 비슷한 입장이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법안 검토 보고서에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가 우회 접속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선 IP 주소를 수집 및 분석하는 등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추가적인 기술적 장치와 막대한 비용 투입이 요구된다”며 “IP 주소 기반 판단이 정확도가 떨어져 부가통신사업자도 참고 자료로만 활용하고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과거에도 댓글 국적 표기법과 유사한 법안들이 나왔지만 대다수는 흐지부지 끝났다. 지난 2020년 총선 때 온라인 공간에서 ‘중국인들이 네이버에서 댓글을 통해 여론을 조작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차이나 게이트’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당시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미디어특별위원회는 중국에 의한 인터넷 여론 조작을 막기 위해 ‘차이나게이트 방지법’을 검토했지만, 20대 국회 종료를 한 달 앞두고 발의돼 시기상 통과되지 못했다.

이나연 기자
ln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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