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겜인싸] ‘중꺾마’ 데프트, “이젠 동료들 우승 보고 싶다”
[디지털데일리 문대찬 기자] 지난해 ‘LoL 월드챔피언십(이하 롤드컵)’ 주인공은 ‘데프트’ 김혁규였다. 당시 DRX 소속으로 가까스로 진출권을 얻어 출전한 롤드컵에서 잇따라 언더독의 반란을 일으키며 최정상에 섰다. 데뷔 후 9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숱한 부상과 부침 속에서도 롤드컵 우승만을 목표로 정진한 결과다. 대회 중 그의 인터뷰에서 비롯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중꺾마)’이라는 헤드라인은 언더독을 상징하는 키워드로 국내외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롤드컵은 라이엇게임즈가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리그오브레전드(LoL)’ 이스포츠 국제대회다. 전세계 9개 지역에서 상위 성적을 거둔 팀들이 한 데 모여 최강자를 가린다. 매회 열리는데, 올해는 한국에서 오는 11월19일까지 개최된다.
김혁규는 올해 롤드컵에도 나선다. 8번째 롤드컵 출전이다. 지난해와 처지는 다르지 않다. 그의 소속팀 디플러스 기아는 한국의 4시드(Seed)로 롤드컵 진출 막차를 탔다. 이들은 오는 19일 유럽 강호 G2 e스포츠와 스위스 스테이지 경기를 시작으로 여정의 막을 올린다.
다만 대회에 임하는 김혁규의 각오는 작년과 사뭇 다르다. 작년엔 자신의 영위를 위해 뛰었다면, 올해는 동료들이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김혁규는 디지털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솔직하게 마음 자체는 훨씬 편안한 것 같다. 작년에는 내가 잘되고 싶은 마음만 항상 갖고 있었다”면서 “올해는 저희 팀원들, 특히 허수와 (김)건부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옆에서 이들이 얼마나 절실한지 느낀다. 한때 정상을 찍었던 선수들이다. 이들이 다시 우승하는 걸 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심적으로 무너지지 않는 마음을 강조했던 김혁규는, 올해는 연습 경기와 실전의 괴리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디플러스 기아는 스프링과 서머 시즌 내내 연습 경기에서의 경기력을 실전으로 가져오지 못해 애를 먹었다.
김혁규는 “작년보다 팀적으로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 많다. 한 경기 패배한다고 해서 무너질 것 같지 않다”면서도 “우리 팀은 연습과 실전의 경기력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질 높은 연습이 필요한 시점이 있었는데, 롤드컵을 준비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됐다. 연습 경기 결과를 떠나서 그런 점은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연습 경기에서 유의미한 데이터를 얻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롤드컵부터는 스위스 스테이지가 도입됐다. 조별 상위 2팀이 8강에 올랐던 직전 대회와 달리, 지역 제한 없이 추첨을 통해 승패가 같은 팀끼리 연달아 맞붙어 3승을 먼저 달성하는 팀이 8강에 오르는 방식이다. 3패가 확정되는 팀은 탈락이다. 본격적인 토너먼트에 돌입하기 전부터 강팀 간의 대결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아 상대적으로 부담이 커졌다.
이에 대해 김혁규는 “이전까지는 조추첨 과정에서 ‘꿀조’가 탄생하기도 했다. 운적인 요소도 분명히 있었는데, 이번에는 강팀일수록 강팀과 계속 붙을 수밖에 없어서 재미있어질 것 같다”고 평가했다. 다만 단판제로 인한 변수도 있다고 지적하면서 “라인전 체급이 커 다전제에서 강한 한국이나 중국 팀들이 자칫 떨어질 수도 있다”고 짚었다.
첫 대결 상대인 G2에 대해서는 “롤드컵에서 만난 적이 없는 팀이라 새로운 느낌이다. 재미있을 것 같다”며 “경기를 봤을 때 템포가 빠른 게임을 하고 독특한 픽들을 많이 하는 것 같더라. 그들의 템포에 끌려가지 않도록 해야 될 것 같다”고 경계했다.
김혁규는 이번 대회에서 자신의 주된 역할이 지원형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 게임 흐름상 몇몇 픽을 빼고는 대체로 템포가 빠르거나 세지는 타이밍이 빠른 픽이 대세다. 팀적으로 받쳐주는 역할이 맞다. 주어진 역할에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시즌 잦은 교체 출전이 있었던 서포터 포지션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한 선수로 고정해서 대회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날 자리에선 반가운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아직 군복무를 해결하지 못한 김혁규는 내년 은퇴가 유력했다. 다만 김혁규는 “끝이 아닐 수도 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군대 문제는 계속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며 선수 생활 연장 가능성을 남겼다.
그럼에도, 마지막인 것처럼 대회에 임할 것이라는 게 김혁규의 의지다. 그는 “한국에서 열리는 롤드컵에 매번 참가했는데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이번에는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두고 싶다. 팀이 결성됐을 때 받았던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올해 내내 보여드린 것 같아 이번엔 기대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김혁규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낸 LoL 대표팀을 향한 감상도 남겼다. LoL은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스포츠 세부종목으로 선정됐다. 김혁규는 올해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아쉽게 대표팀 승선이 불발됐다.
그는 “이 게임이 이렇게 좋은 쪽으로 발전했다는 게 좋았다. 게임의 성장 과정을 내가 함께 했다는 게 자랑스럽기도 했다. 부러움보단 좋았던 감정이 더 컸던 것 같다”면서 “저도 이 일을 하면서 배우고 발전하고 얻은 게 참 많았다. 국가대표 멤버 중 (정)지훈이나 (류)민석이처럼 같은 팀에서 뛰었던 동료들도 있어서 보면서 더욱 좋았다”고 밝혔다.
끝으로 ‘페이커’ 이상혁이 아시안게임 현장에서 받아 화제가 됐던 ‘이스포츠가 스포츠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김혁규에게도 던졌다. 이상혁은 당시 “몸을 움직여서 활동하는 게 기존 스포츠 관념인데, 경기하고 준비하는 과정이 많은 분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경쟁하는 모습이 영감을 일으킨다면 그게 스포츠로서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혁규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스포츠의 정의가 정확히 뭔지 모른다. 다만 이스포츠도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많은 선수들이 경기를 위해 노력하고, 많은 사람들이 응원한다. 기쁨과 슬픔이 모두 있다. 솔직히, 스포츠와 이스포츠가 어떤 점에서 다른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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