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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HD라는'허상']② 애물단지 된 ‘황금주파수’…“UHD 정책 바로잡아야”

강소현 기자

[디지털데일리 강소현 기자] UHD(초고화질·Ultra High Definition) 전국망 구축 완료 시기가 또 미뤄질 전망이다. 지역방송사의 재정여건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탓이다. 이 같은 이유로 구축 의무 완료 시점이 연기된 건 벌써 두 번째다.

이 가운데 지상파 UHD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UHD 전국망 용도로 할당된 700㎒(메가헤르츠) 대역이 높은 효용성에도 불구, 장기간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지상파 3사(KBS·MBC·SBS)의 UHD 방송망 구축 속도가 더딤에 따라, 이를 촉진시킬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

올해도 UHD 전국망 구축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소속 변재일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2월 ‘지상파UHD 활성화를 위한 정책 방안’이 발표된 이후 UHD 방송망을 구축한 지상파 방송사는 29곳 중 3곳에 불과하다.

UHD 전국망 구축 목표 시점은 이미 한차례 미뤄졌다. 방통위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2021년까지 수도권·광역시에만 구축된 UHD 방송망을 시·군 지역으로 확대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역방송사의 재정 악화로 정책 재검토 필요성이 제기되자 UHD 전국망 구축 완료 의무 시점을 2023년으로 2년 순연했다.

[Ⓒ 박완주 의원실]
[Ⓒ 박완주 의원실]

정부는 일단 구축 경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선 정부가 UHD 방송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 시간을 끌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UHD 방송망 구축을 두고 “허공에다 전파를 쏘는 꼴”이라며 “안테나로 지상파 방송을 직접 수신해 보는 가구는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케이블TV 혹은 IPTV를 통해 (지상파 방송을) 시청하는 게 현실로, (UHD 콘텐츠 제작 및 인프라 구축에 투입한 비용을) 콘텐츠 제작에 썼다면 이 시장이 훨씬 더 성장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국회 과방위 소속 박완주 의원(무소속)에 따르면 2021년 말까지 지상파 방송의 직접수신율은 2.2%에 불과했다. 이들 중에서도 UHD 수신용 ATSC 3.0 튜너가 탑재된 TV를 보유한 시청자 만이 지상파 UHD 방송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실제 UHD 방송을 시청하는 국민은 극소수일 것으로 추정된다. 화질개선 효과 대비 경제적 효용도 떨어진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결국 700㎒ 주파수는 애물단지가 됐다.

또 다른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최근에는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콘텐츠의 화질도 지상파 UHD 방송 못지 않다”라며 “5G(5세대이동통신) 시대의 도래로 전송속도가 빨라지면서 전파의 절대 우위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700㎒ 주파수를 쉽게 포기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2012년 아날로그 방송종료 이후 발생한 700㎒ 여유주파수 대역은 당초 이동통신용으로 검토됐으나, 지상파 방송사들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4·16 세월호 참사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국가 재난 발생 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려면 700㎒ 주파수를 재난안전통신망 용도로 할당해야한다는 지상파 방송사의 주장에 힘이 실린 것이다.

정부도 주파수 할당을 두고 결국 지상파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에서 ‘정책 실패’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특히 당시 700㎒ 주파수는 UHD 활성화를 명목으로 경매 없이 지상파 방송사에 무료로 제공됐는데, 해당 대역을 경매에 부쳤다면 약 7800억원의 가치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 바 있다.

사업자별 주파수 할당 현황. [Ⓒ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사업자별 주파수 할당 현황. [Ⓒ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통신업계 관계자는 "현재 이동통신사는 800㎒ 저대역을 LTE용으로 이미 보유하고 있어 700㎒이 그렇게 간절하진 않다"라면서도 "방송사들이 운용하는 채널 수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폭의 주파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쉽다. 특히 방송사의 경우 주파수 할당대가를 내지 않는데, 이통사에 700㎒가 할당됐다면 기금 수입이 발생하니 국가적으로도 이득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더 늦기 전에 UHD 정책의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UHD 정책을 처음 시행할 당시와는 국내외 방송 시장 모두 상황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최근에 정부 주도로 UHD 전국망 구축을 추진 중인 국가는 전무하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 BBC]
[Ⓒ BBC]

게다가 해외 지상파 방송사만 해도 더 이상 전파가 아닌, 인터넷망(IP망)을 통해 콘텐츠를 전송하려는 추세다. 최근 영국 방송사인 BBC와 ITV, 채널 4, 채널 5 등은 오는 2024년 스마트TV용 스트리밍 서비스 ‘프릴리’(Freely)를 출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방송용으로 할당됐던 700㎒ 대역을 몇 년 전 부터 이동통신 용도로 재할당하고 있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향후 6G 서비스에서 저대역을 활용하려면 해당 대역에서 최소 400㎒는 확보돼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라며 “해당 시점이 되어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각사가 현재 파편화된 대역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대역을 가지려면 주파수 재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방송업계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지상파 방송의 직접수신율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UHD 전국망이 구축돼도 (지상파 방송사는) 결국 유료방송사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라며 "지상파는 UHD 콘텐츠에 대해 더 많은 돈을 받고 싶어하고, 유료방송사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UHD 콘텐츠가 크게 다르지 않은데 돈은 더 많이 내야하다보니 재전송을 서로가 미루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책당국은 단순히 (지상파 방송사가) UHD 전국망을 구축할 수 있냐는 단기적 관점이 아닌, 지상파 방송사도 스트리밍으로 이동하는 등의 글로벌 방송 트렌드를 정확히 파악해 정책 방향을 수정해야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강소현 기자
ksh@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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