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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리고 줄이고 '고무줄' 보장금액…보험사들, 당국 자제령에 가성비 담보 줄줄이 축소

권유승 기자
지난달 30일 서울 한 병원에서 독감 및 외래진료를 받으려는 어린이와 보호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서울 한 병원에서 독감 및 외래진료를 받으려는 어린이와 보호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50·100만원 달했던 독감보험 보장금액 20만원으로 줄어

-응급실진료비·변호사선임비·간호간병비 등 한도도 축소

-금융당국 "과당 경쟁, 모럴해저드 및 소비자 피해 우려"

-보험업계 "시장 안정화에 공감" VS "지나친 개입" 엇갈린 반응

[디지털데일리 권유승 기자] 보험사들이 경쟁적으로 영업을 강화했던 독감보험, 비응급실 진료비 특약 등 일명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보험 상품들의 보장한도를 줄줄이 줄이고 나섰다.

이는 과열 경쟁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우려한 금융당국의 경고를 의식한 영향이다.

보험업계 내에선 마케팅 전략에 대한 금융당국의 개입을 두고 시장 안정 차원에서 공감한다는 반응이 나오는 반면 자율 경쟁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엇갈린 의견도 제기된다.

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KB손해보험은 50만원 한도로 보험금을 지급하던 독감보험 판매를 이날부터 중단할 것이란 내용을 전날 영업현장에 전달했다.

한화손해보험과 삼성화재도 지난 2일 독감보험의 보장한도를 각각 100만원, 5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줄였다. 현대해상도 50만원이었던 독감보험의 보장한도를 4일부터 20만원으로 줄일 예정이다.

보험사들이 독감보험의 보험 한도를 줄이고 나선 것은 금융당국의 자제령에 따른 결과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일 손해보험사 임직원들과 간담회를 열고 독감보험 등 경쟁적으로 한도를 증액한 상품들이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독감보험은 독감 진단 후 항바이러스제를 처방받으면 보험금을 연간 1회에 한해 수령할 수 있는 상품이다.

월 보험료가 1만원 수준인 이 상품에 지나치게 높은 보장금액은 소비자들의 모럴해저드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게 금감원의 판단이다. 높은 보장금액에 따른 보험사들의 리스크가 소비자들의 보험료 인상으로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 독감보험의 보장금액은 당초 20만원 수준이었으나, 손보사들의 경쟁으로 보장금액이 5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까지 치솟게 됐다.

◆보험사 보장경쟁 비일비재…금융당국 개입엔 엇갈린 반응

보험사들의 보장경쟁은 비단 이번 뿐만이 아니다.

손보사들은 최근 응급실진료비, 비응급실진료비 특약을 각각 2만원에서 25만원까지 늘렸다 다시 축소했다. 지난 3월에는 1000만원을 보장하던 운전자보험의 변호사선임비용을 1억원까지 늘렸다 줄이기도 했다. 하루 보장금액을 26만원까지 늘렸던 간호간병보험 입원일당 역시 비슷한 사례다.

이런 가운데 한시적인 보장 금액을 앞세운 절판 마케팅도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어 불필요한 상품 가입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보험사들은 경쟁사들과 발을 맞추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보험사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보장한도까지는 지속해서 올리지 않는다"면서 "한도를 갖고 특정 이슈가 있을 때 특정사가 치고 나가면 어쩔 수 없이 따라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다만 이 같은 상품 경쟁에 금감원이 개입하는 것에 대해선 다소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특정 보험사를 타겟으로 한 것이 아니라 업계의 과열 방지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부분들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보험사들의 리스크가 결국엔 보험료 인상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면서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는 부분은 어느정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 걱정하는 모럴해저드가 실제론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 논란이 된 독감보험의 경우엔 면책 기간도 있고 항바이러스제를 처방받아야 하는 만큼 실질적으로 일부러 독감에 걸려 보험금을 타려는 이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물론 지급 보험금이 많다보면 손해율이 높아져 해당 담보의 보험료가 올라갈 순 있지만, 자율경쟁 체제인 만큼 금융당국에서도 지나친 개입 보다는 업권의 상황을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부연했다.

또 다른 보험사 관계자는 "기존에는 보험사 마케팅 전략에 이정도로 관여를 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최근 들어 더 잦아진 부분은 있는 것 같다"며 "일반적으로 보험사들이 손해율이 악화될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경쟁적으로 영업을 하진 않는다"고 역설했다.

권유승 기자
kys@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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