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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통신요금이 40% 인상됐다면

권하영 기자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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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권하영 기자]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가 내년부터 일제히 모든 통신요금을 40%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네트워크 투자 부담이 갈수록 치솟고 가입자도 포화 상태에 이르러 요금을 인상하지 않고는 사업을 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통신사들의 시도는 금방 물거품이 됐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과도한 요금 인상으로 민생 피해가 예상된다며, 이들 통신사가 제출한 이용약관 변경안을 반려했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통신사들이 요금 담합을 하지 않았을지 조사에 착수했고, 방송통신위원회는 부당한 요금 인상 재발 방지를 위해 이용자 보호 방안을 제출하라며 통신3사를 압박했다.

자, 위의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님을 여기서 밝힌다. 하지만 국내 통신3사가 기존 통신요금을 40% 아니 4%라도 올리려고 했다면, 관련된 모든 정부부처가 즉각 나서 이를 제지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 규제를 빌미로 철퇴를 내렸을 것이란 예상은 과장이 아니다. 기간통신사업자로서 정부 규제 아래에 있는 통신사들이 요금 인상은 꿈도 꾸지 못하는 이유다.

물론, 통신사들도 고가 5G 요금제로 이용자 불만을 사고 있다는 점을 모르는 게 아니다. 현재 통신요금이 싸다 비싸다를 얘기하고자 함은 아니다. 다만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른바 ‘스트림플레이션(Streamflation, 스트리밍+인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기습적인 요금 인상을 강제했지만 그 어떤 제재나 비판도 받지 않고 있는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업자들이다.

구글 유튜브와 넷플릭스는 최근 40% 안팎의 구독료 인상을 단행했다. 유튜브는 지난 8일 프리미엄 요금제의 가격을 기존 월 1만450원에서 1만4900원으로 43% 올렸고, 넷플릭스는 지난주에 광고 없는 기본 베이직 요금제(월 9500원)를 없애, 사실상 광고 없는 요금제 하한선을 월 1만3500원까지 높였다. 디즈니플러스도 지난달 광고 없는 프리미엄 요금제를 월 9900원에서 1만3900원으로 4000원(40%) 인상했다.

문제는 이 요금 인상들이 모두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이들 사업자는 인상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지도 않았다. 유튜브는 크리에이터와 아티스트를 지원하기 위함이라는데, 썩 공감이 가지 않는 설명이다. 다른 OTT들도 콘텐츠 제작비가 증가하고 업황까지 안좋다고 하니 요금을 올렸겠거니 짐작만 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지만, 한국 이용자들만 해도 평균 2개가 넘는 OTT를 구독할 정도로 OTT가 대중화된 상황이다. 그저 해지하고 말기에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흔히 ‘가계통신비’라 하면 정부가 민생안정 대책 차원에서 적정 수준을 유지하고 관리하게 된다. 최근 정부는 통신요금뿐만 아니라 높아진 단말기 할부금으로 인한 부담을 감안해 사업자들로하여금 중저가 요금제와 중저가 단말기를 출시하도록 했다. 하지만 OTT와 같은 ‘디지털서비스’ 구독료는 이러한 정책에서 벗어나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래도 정부가 근래 OTT의 급격한 요금 인상에 대해 혹시 국내법 위반 소지는 없는지 들여다 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전기통신사업법상 ‘전기통신사업자’에 해당하는 OTT 사업자는 ‘이용자 이익을 현저히 해치는 행위’ 및 ‘이용요금 관련 중요 사항을 고지하지 않는 행위’가 금지된다는 점을 근거로 실태점검에 나서기로 했다.

다만 이러한 실태점검이 어느 정도까지 실효성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해외 기업들은 국내 시장에서 사업을 하면서도 국내 법·제도의 영향력이 잘 미치지 않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일단 실태점검만으로는 강제력이 크지 않은 데다, 만약 사실조사를 벌여 과징금까지 부과할 수 있다 해도, 글로벌 빅테크들은 즉각 행정소송을 걸어 길게는 수년의 시간을 벌고 끝까지 책임을 외면하는 게 이미 흔한 사례다.

시장을 독과점하는 글로벌 빅테크들의 가장 큰 문제는, 어느 정도 시장 장악력을 확보한 이후에는 서비스 이용료를 마음대로 올릴 수가 있다는 점이다. 똑같이 시장을 독과점 중인 국내 통신3사는 어느 정도 정부 규제 아래에 있기 때문에 과도한 요금 인상을 할 수 없지만, 이들 빅테크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디지털서비스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보편화되는 현실을 반영해, 이제는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더욱 적극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권하영 기자
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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