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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잡는 사전규제] ④ 총선 앞두고 게임 두들기기… 진흥은 언제?

문대찬 기자

한국의 ‘혁신’ 속도는 눈부시게 빨랐다. 더욱 쉽고, 간편하고, 빠르게 이뤄지길 원하는 고객이 어디에나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정보기술(IT)·플랫폼·게임 기업들이 눈치 보지 않고 고객 편익 향상을 위한 아이디어를 뽐내왔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율규제’가 우선이었던 윤석열 정부 기조가 정반대로 움직이려는 모습이 관측되면서부터 이들 기업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신년이 밝아오면서 그 그림자는 더욱 선명해졌다. 해외 기업은 그 사이를 보란 듯 파고들며 국내 시장 잠식 속도를 올리고 있다. 한국산 혁신, 올해는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편집자 주>

김정기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국장이 1월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기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감시국장이 1월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문대찬기자] 국내 게임업계 분위기가 연초부터 잔뜩 가라앉은 모양새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등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보릿고개가 한동안 계속될 조짐을 보이는 데다, 정부가 규제 회초리를 들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열린 올해 첫 국무회의에선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의무화 내용 등을 담은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됐다. 지난해 11월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정보 미표시 및 거짓 확률 표시 등으로부터 게임 이용자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입법 예고된 것으로, 게임사는 오는 3월22일부터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의무적으로 표시해야 한다.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주요 공약 중 하나였다. 그는 과거 대통령 선거 당시 이용자 권익 보호에 초점을 맞춘 공약을 잇따라 발표하며 ‘이대남(20‧30대 남성)’ 공략에 나선 바 있다. 출범 1년이 넘도록 관련 정책 추진에 소홀해 따가운 눈총을 받았으나, 총선을 앞둔 지난해 11월부터 공약 이행에 본격 시동을 걸어 눈길을 모았다.

게임산업법 의결 다음 날인 3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국내 게임 최대 사업자인 넥슨에 전자상거래법상 최대 규모인 11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특정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의도적으로 낮추고도 이용자에 이를 공유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업계는 공정위 제재가 게임산업법 시행을 앞두고 여론을 환기하고 본보기를 보이기 위함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넥슨]
[ⓒ넥슨]

문제는 공정위가 확률 고지 의무가 없던 시기의 사안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했다는 점이다. 입법 미비 시기의 일을 사후 처벌한 것에 대해 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확률형 아이템을 수익모델로 취한 국내 게임사에 대한 연쇄 처벌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번 공정위 결정에 참고인으로 참여한 한양대 황성기 법학 교수는 “법적으로나 자율규제상으로 확률 공개 의무가 없던 시기에 기업이 확률을 먼저 공개했음에도 이전 확률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위법행위로 결정한 것은 ‘과잉금지원칙’ 내지 ‘비례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확률공개 의무가 없던 시점에 공개되지 않은 모든 확률 변경 행위에 대해 처벌될 수 있음을 방증하는 결정으로 국내 게임산업 시장의 법적 안정성을 저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넥슨 사례는 차치하고서라도, 게임업계는 과금 이용자와 비과금 이용자간 균형 등을 맞추기 위해 아이템 획득 확률을 조정해 왔다. 이 때문에 과거 확률 조정을 단행하고 이를 공유하지 않았다면 게임사들이 모두 향후 공정위 제재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정위 제재보다는 규제에 초점을 맞춘 정부 기조에 부담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적잖다. 게임업계는 2015년부터 자율규제안을 내놓고, 아이템 확률을 자율적으로 공개해 왔다. 게임산업법이 시행돼도 표기 방식 등에 변화가 있을 뿐 타격이 크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다만 엄연한 규제 정책이기에 게임산업 분위기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개정안이나 공정위 징계 수위를 떠나 이런 스탠스 자체가 게임업계엔 압박”이라면서 “엔데믹 이후 게임산업이 점점 위축되는 상황에서 주요 수익 모델까지 규제를 하니 답답하다. 게임사도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인데 너무 규제 일변도인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공정위 건은 너무 예전 사례까지 꺼내서 어떻게든 타격을 주려고 하는 것 같아 걱정이 많다. 특히 업력이 긴 게임사들은 부담이 클 것”이라고 지적했다.

동북공정 논란 뒤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종료한 샤이닝니키. [ⓒ페이퍼게임즈]
동북공정 논란 뒤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종료한 샤이닝니키. [ⓒ페이퍼게임즈]

정부 규제가 국내 기업 대상으로만 적용되는 점에 대해서도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의 지난해 6월 조사에 따르면 국내 업체는 98%가 유료 확률형 콘텐츠에 대한 자율규제를 준수했지만 해외 게임은 56.3%만이 이를 따랐다.

아울러 공정위가 2017년 제정한 ‘모바일게임 표준약관’을 지키지 않는 해외 게임업체들도 상당수다. 출시 1년도 되지 않아 게임 서비스를 종료하고 환불을 기피하지 않아 이용자 피해가 불어나는 실정이다. 유주게임즈의 ‘삼국지혼’, 페이퍼게임즈의 ‘샤이닝니키’ 등이 대표 사례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발의된 법안은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한 관계자는 “중국 쪽 개발사들과 함께 일을 해보면 확률과 같은 정보 데이터를 잘 안 주는 경우가 많다. 요구해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 법이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고, 사각지대에 해외 게임사가 놓여 불공정 이슈가 발생하는 것이 더 문제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한편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는 게임산업 종합 진흥계획을 1분기 중 발표할 계획이다. 게임 이용자 권익 강화부터 산업 진흥 정책 기반 조성, 이스포츠 산업 육성 등의 내용이 골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발표는 2020년 5월으로, 확률형 아이템 법적 규제 내용이 담긴 바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술이 앞서고 법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이치라 업계 목소리가 잘 반영이 되지 않는다. 산업이라는 게 세부적인 형태가 다른데 그런 부분이 고려되지 않고 일괄적으로 규제 정책이 적용돼 산업이 위축될 부분이 있다”면서 “꼭 개선이 필요한 부분만 핀셋 진단을 내리고, 이외는 사업이 위축되지 않는 슬기로운 방향으로 게임을 돌봤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문대찬 기자
freez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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