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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잡는 사전규제] ② 공정위 빼고 모두가 고개 젓는 ‘플랫폼법’

이나연 기자

한국의 ‘혁신’ 속도는 눈부시게 빨랐다. 더욱 쉽고, 간편하고, 빠르게 이뤄지길 원하는 고객이 어디에나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정보기술(IT)·플랫폼·게임 기업들이 눈치 보지 않고 고객 편익 향상을 위한 아이디어를 뽐내왔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율규제’가 우선이었던 윤석열 정부 기조가 정반대로 움직이려는 모습이 관측되면서부터 이들 기업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신년이 밝아오면서 그 그림자는 더욱 선명해졌다. 해외 기업은 그 사이를 보란 듯 파고들며 국내 시장 잠식 속도를 올리고 있다. 한국산 혁신, 올해는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편집자 주>

육성권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이 2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플랫폼 독과점 폐해 방지를 위한 '플랫폼 공정경쟁 촉진법(가칭)' 제정 추진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이나연 기자] 새해부터 정보기술(IT)업계 시선은 아직 뚜껑이 열리지 않은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가칭)’(이하 플랫폼법)에 쏠리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오는 4월 21대 총선 전까지 법을 통과시키겠다고 강조한 가운데, 반대 여론에 부딪히자 최근 해명에 열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이달 중순 공정위가 업계 의견을 경청한다는 취지로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제인협회·한국경영자총협회장 등 국내 주요 대기업을 회원사로 둔 경제 단체를 잇달아 만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업계 불만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규제 당사자인 플랫폼 기업들이 아닌 대기업들을 만나 협조를 부탁했다는 점이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24일 오전 육성권 공정위 사무처장은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법 제정이 늦어지면 공정위는 역사의 죄인이 될 것 같다”라며 “일각에선 법안을 오해해 입법에 우려 목소리가 있으나 플랫폼 독과점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입법이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육 사무처장은 공정위의 이번 입법 추진이 윤석열 정부의 자율규제 기조와 맞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플랫폼 자율규제 원칙과는 별개로 플랫폼 시장에서 독과점 문제를 걷어내기 위해 엄정 대응한다는 방침은 명확히 밝혀왔다”며 “플랫폼 독과점 규율 입법 추진은 자율규제 기조와 상충되지 않고 플랫폼·입점업체·소비자 간 자율규제는 일관되게 추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국내 사업자만 플랫폼법 대상이 돼 해외 기업과 역차별 우려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거짓뉴스”라고 받아쳤다. 육 사무처장은 “(해당 의견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국내 플랫폼 시장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독과점 플랫폼이라면, 국내외 사업자를 구분하지 않고 차별없이 규율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도 전일(23일) 10개 소비자단체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시장을 지배하는 소수 플랫폼의 반칙 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소비자 피해가 적지 않다”라며 ‘플랫폼법’ 제정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공정위가 지난해 12월부터 추진 중인 플랫폼법은 매출과 이용자 수 등을 기준으로 일정 규모 이상 플랫폼 기업을 지정해 자사우대·최혜대우·멀티호밍·끼워팔기 등 특정 시장 반칙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사업자 지정 기준이 확정되진 않았지만, 국내 양대 플랫폼인 네이버와 카카오와 함께 쿠팡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선 ‘반칙행위 시점’과 ‘시정조치 시점’ 사이에 간극이 있는 만큼, 시장을 지배하는 소수 대형 플랫폼 행위가 소비자에 미칠 피해를 미리 막겠다는 취지지만 업계 안팎에선 거센 반발이 쏟아진다.

자율규제를 국정과제로 내세웠던 현 정부 방침을 역행하는 별도 사전규제가 토종 플랫폼 기업들의 성장을 원천 봉쇄할 것이란 우려다. 이중 규제 문제와 시장위축에 따른 국내 플랫폼 경쟁력 상실은 결국 서비스 편의·혜택 축소와 같은 소비자와 소상공인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재 플랫폼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선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 규제당국이 어떤 제재 방안을 내놓으면 그 대상이 될 업계를 중심으로 비판 목소리가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국내외 학계, 투자업계, 법조계, 스타트업계, 플랫폼 입점 사업자, 심지어 소비자들까지 일제히 우려를 표하는 모양새다.

공정위는 공식자료를 내고 업계가 지적해 온 주장들을 일축하고 있다. 특히 규제 대상을 정하는 데 있어 연매출 1조4700억원(이용자 수 750만명 이상)이거나 4920억원(시장점유율 75% 이상)과 같은 정량적 요건뿐만 아니라, 정성적 요건까지 다각도로 살필 것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업계는 결국 공정위의 자의적인 기준과 판단에 따라 제재가 가해진다는 의미 아니냐며 불확실성을 문제 삼고 있다.

유관 부처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진 기준을 적용했을 때, 글로벌 빅테크 기업은 빠지고 중개 플랫폼 기반 수수료 중심인 국내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들이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우려를 키웠다.

공정위는 플랫폼법 제정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 부처와의 협의를 마치고, 플랫폼법 지정 기준과 제재 수위 등 구체적인 윤곽을 조만간 발표할 방침이다.

이어 세부 내용이 확정되는 대로 이해 당사자 업계로부터 의견도 적극 수렴하겠다는 점도 강조했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 9일 국내 IT협회 연합체인 디지털경제연합과 간담회를 갖고 플랫폼법 내용을 논의하려 했지만, 양측 입장 차로 무산됐다. 2주가 지난 현재까지도 면담 일정은 잡히지 않은 상태다.

한 위원장이 법 제정을 위한 업계 소통 차원에서 플랫폼법 영향권에 있지도 않은 경제 6단체와 만남을 진행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앞서 한 위원장은 지난 15일 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 최진식 한국중견기업연합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을 만난 데 이어 17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18일 류진 한국경제인협회장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과 신년 간담회를 열었다.

이나연 기자
ln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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