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이제 와서 中알리에게 뺏길 순 없잖아요”…쿠팡이 ‘필사즉생’인 이유

왕진화 기자
[ⓒ쿠팡]
[ⓒ쿠팡]

[디지털데일리 왕진화 기자] 쿠팡이 지난해 사상 첫 연간 흑자전환을 기록했음에도 국내 ‘필사즉생’(必死則生, 죽기를 각오하면 산다는 뜻) 투자를 지속해 눈길을 끈다. 쿠팡이 지난 10년 간 누적손실 6조원을 기록하며 ‘계획된 적자’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닐 때, 알리익스프레스(AliExpress, 이하 알리)는 150조원 이익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져 더욱 대비되는 모습이다.

특히나 전 세계 1위 이커머스 사업자인 알리바바그룹은 매출이나 영업이익과 시가총액 등 모든 면에서 쿠팡을 압도한다. 최근 국내 유통업계에서 C커머스(차이나+이커머스)에 대한 우려가 커져온 이유이기도 하다.

쿠팡이 앞으로 3년간 3조원을 투자하고 2027년까지 전국민 5000만명을 대상으로 무료 로켓배송을 확대하겠다고 나서자, 일부 유통업계 관계자 사이에선 “쿠팡의 절박감이 제대로 표출됐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쿠팡의 투자는 앞으로 더 크게 잠식당할 국내 유통업의 위기 가능성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초저가 전략을 앞세워 국내 이커머스 시장을 뒤흔든 알리는 최근 한국시장에 무려 1조5000억원의 투자 계획을 세우며 본격적인 라운드를 예고했다. 이에 지난 27일, 쿠팡은 딱 ‘두 배’로 응수했다. 중국 알리바바가 국내 시장에 3년간 1조4400억원(11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발표 2주 만에 나온 것이다.

3년간 3조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면서 경북 김천과 대전, 울산, 충북 제천 등 전국 8개 지역에 물류센터를 일제히 건립해 운영하고 2027년까지 전국민 5000만명을 대상으로 무료 로켓배송을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약 182개 시군구(전체 260개)에서 로켓배송을 운영하는 쿠팡은 앞으로 230여개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확대되는 대부분의 지역은 정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들이다. 고령화(65세 이상) 비중이 40%가 넘는 ▲경북 봉화 ▲전남 고흥·보성 ▲경북 의성·영양·청송 ▲경남 합천 및 인구 3만명을 밑도는 ▲전북 진안·장수·임실·순창 ▲경북 영양 ▲군위 등이다.

[ⓒ쿠팡]
[ⓒ쿠팡]

2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같은 쿠팡의 진출 지역들은 인구소멸위험 지역에서도 ‘고위험’에 속하는 곳들로, 수익성이 대체적으로 높지 않아 통상적인 오프라인 유통 업체나 대형마트가 진출하기 어려운 조건이기도 하다.

알리바바는 2억달러(2600억원)을 투자해 한국에 물류센터를 짓고, 소비자 보호(1000억원) 등에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데이터 분석 업체들에 따르면 알리의 지난달 월간 사용자 수(MAU)는 818만명으로, 전년 동월(355만명)과 비교해 130% 성장했다.

알리가 대부분 차지하는 중국발 직구금액은 지난해 23억5900만달러(3조1000억원)으로 58.5% 늘었다. 최근 추가 투자로 직구규모는 더욱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유통업계 관계자는 “C커머스로 대표되는 업체들이 물류센터를 대거 확충할 경우 (잠식)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질 수 있다”며 “여기에 지난해 중순 국내 상륙해 월간 사용자 수가 500만명을 돌파한 테무(Temu), 미국에서 상장해 100조원 조달을 목표하는 패션 이커머스 쉬인(Shein) 등이 한국에 본격 상륙하면 C커머스 잠식력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쿠팡이 6조원의 누적적자 끝에 첫 영업이익 흑자를 낸 첫해 알리의 2배가 넘는 3조원 투자 결정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0년간 6조2000억원을 투자한 쿠팡의 앞으로 3년 투자규모는 연 단위로 볼 때 훨씬 크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알리바바의 한국시장 1조5000억원 투자 규모를 놓고 ‘빙산의 일각’으로 보고 있다. 전 세계 240개국에 진출한 알리바바는 매출·시가총액·영업이익률·보유현금 등 모든 면에서 쿠팡을 압도하며, 얼마든지 추가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
[ⓒ와이즈앱·리테일·굿즈]

알리는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각각 170조원(1264억달러), 23조3000억원(173억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쿠팡 매출(31조8298억원)과 영업이익(6174억원)의 각각 6배 이상, 38배 이상이다. 영업이익률로 볼 때도 쿠팡(1.9%)보다 알리(13.7%)가 7배나 높다. 미국 뉴욕과 홍콩증시에 상장한 알리의 시가총액은 485조원으로, 쿠팡(42조원)의 10배 이상이다.

지난해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알리바바의 전년 9월 기준 보유 현금은 855억9500만달러(100조원)에 이른다. 이는 쿠팡(52억달러)보다 10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알리바바가 지난 10년간(2013~2023년) 누적 당기순이익만 152조원을 낸 반면, 쿠팡은 매해 손실로 6조 적자를 냈기에 보유 현금량도 더욱 대비된다.

때문에 알리바바의 한국 시장 1조5000억원 투자는 이제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에 학계에서도 지난 10년간 누적적자 6조원 이상을 낸 쿠팡이 당장의 수익성 개선보다, 필사즉생 심경으로 생존을 위한 투자를 단행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쿠팡이 신규 투자를 하지 않으면 중국 거대 유통 공룡에 잠식당할 수밖에 없다”며 “최근 대만에도 진출한 쿠팡이 중요한 교두보인 한국을 그대로 내주면 생존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연승 단국대 교수는 “중국 온라인 플랫폼의 진출이 가속화하면서 쿠팡 등 국내 토종 이커머스 매출이 잠식당하고, 소매 유통 질서가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며 “온라인 유통의 주도권을 내주면 제조와 물류, 서비스까지 타격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왕진화 기자
wjh9080@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