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만에 부활한 ‘망 중립성’, 韓에 어떤 영향 있을까 [IT클로즈업]
[디지털데일리 강소현기자]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망 중립성(Net neutrality) 규정을 약 6년 만에 복원시켰다. 현지 사업자를 중심으로 반발이 거센 가운데, 이번 결정이 국내 시장에 주는 영향은 크게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선 오히려 망사용료 지급에 근거가 되는 문서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 망 중립성 규정 복원…2000년대 초 처음 정립
28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 따르면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폐지됐던 망 중립성 규정을 복원하고, 인터넷제공사업자(ISP·통신사)에 대해 규제·감독을 재개하는 안건이 3대2로 가결됐다.
망 중립성은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망의 이용질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처음 등장한 개념이다, 전송하는 정보의 양에 따라 데이터 전달에 차별을 둬선 안 된다는 뜻이다. 망 중립성에 따르면 ISP는 이메일을 1통 보낸 A사와 100통을 발신한 B사 모두 공평하게 망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가운데 이번 안건은 통신망 제공 서비스를 현행 통신법상 ‘Title1’(정보서비스, 국내 부가통신서비스에 해당)에서 ‘Title2’(통신서비스, 국내 기간통신서비스에 해당)로 재분류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쉽게 말해, ISP에 대한 규제를 강화한 것이다.
특히 ISP에 망 중립성 의무(Bright Line Rule)를 부과했다. Open Internet Order에 따르면 ISP는 고의적으로 이용자에 전송되는 트래픽을 차단하거나, 특정 트래픽의 속도를 지연시키면 안 된다. 또 특정 트래픽에 대해 대가를 받고 먼저 보내는 행위도 금지된다.
미국 민주당은 이러한 망 중립성 규정 복원이 인터넷 개방성과 소비자 보호, 공공안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민주당에 소속된 제시카 로젠워셀(Jessica Rosenworcel) FCC 위원장도 마찬가지로, "모든 소비자가 빠르고 개방적이며 공정한 인터넷 접속을 보장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라며 망 중립성 규정 복원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 제동 걸린 5G 수익화…통신장비사도 난감
현지 ISP의 반발은 당연 거세다. 6G를 앞두고 대규모 투자를 위한 신규 수익원 창출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기 때문이다.
미국 ISP AT&T의 존 스탠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망 중립성 복원이 처음 이야기됐을 당시 “존재하지도 않는 문제를 쫓기 위해 왜 납세자의 돈과 정치적 자본을 사용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며 ”인터넷 시장이 새로운 규칙 없이도 제대로 기능하고 있음을 입증할 것“이라고 반발한 바 있다.
통신장비사들도 난감한 상황이다. 공생 관계인 국내외 이통사의 5G 투자가 위축된 가운데, 통신장비사는 ISP의 입장에서 ARPU(가입자당평균매출)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수익모델을 선보여왔다.
문제는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이다. 네트워크 슬라이싱은 하나의 물리적 네트워크를 통해 품질 조건에 따라 다수의 가상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기술이다.
통신장비사들은 ISP와 함께 이러한 네트워크 슬라이싱 기술을 활용해 통신 서비스품질(QoS)을 차등화, 추가 비용을 낸 가입자에 한해 사람들이 밀집된 장소에서도 5G 서비스품질을 보전해주는 방식의 수익모델을 구상해왔다. 하지만 이는 데이터 전달에 차별을 둬선 안 된다는 망 중립성 규정에 위배된다.
사실 미국에서 망 중립성 규정이 복원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의회에서 누가 과반 의석을 차지하냐에 따라 망 중립성 복원 문제는 부침을 겪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망 중립성 복원에 찬성해온 반면, 공화당 의원들은 망 중립성 복원이 광대역 산업의 혁신과 투자를 냉각시킬 것이라고 우려를 표해왔다.
2015년 오바마 정부 때 미국 FCC에 의해 법적 구속력도 갖게 됐으나 2017년 트럼프 정부에서 해당 규정을 폐지했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망 중립성 규정이 부활할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좌초됐다. 당시 5G에서 IT 패권 경쟁을 벌이던 미국이 망 투자를 촉진하고 5G 고주파 활용에 나서려면 그대로 둬야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해관계에 따라 망 중립성 규정의 복원과 폐지가 반복된 가운데, ISP 사업자들은 현재 시장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망 중립성 개념이 처음 정립될 당시와는 크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ISP에 따르면 수 년 전과 달리 콘텐츠제공사업자(CP)가 발생시키는 트래픽 규모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ISP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샌드바인은 2022년 기준 구글·메타·넷플릭스 등 주요 빅테크 6곳이 유발한 트래픽 비중은 전체의 64%이며, 이들을 중심으로 지난해 트래픽 양은 23% 가량 증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 韓 시장 영향 없을 듯…양면시장 인정 ‘긍정적’
이와 별개로 업계에선 이번 망 중립성 복원이 국내 시장에 미치는 실질적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국내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내용인데다 사업자들도 이를 적극 준수해왔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망 중립성 원칙의 주요 내용을 규정한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을 시행해왔다.
업계 일각에선 Open Internet Order가 통신 시장이 양면시장임을 인정했다는 점에 오히려 주목한다. 앞서 CP는 이중과금을 이유로 망사용료 지급에 반발해온 가운데, 망사용료에 대한 근거가 될 문서가 됐다는 입장이다.
국내에선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가 이른바 '망사용료 소송'을 2020년 4월부터 장기간 갈등을 이어왔다. 특히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의 망사용료 지급 요구는 이중과금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망사용료를 접속료와 전송료로 구분지으며, 미국 ISP을 통해 입장료(접속료)를 내고 인터넷에 접속하는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에 콘텐츠 전송 비용인 전송료를 추가 지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이번 Open Internet Order에는 ‘위원회는 통신서비스에 양면 시장이 존재하며, 비소비자 측의 수혜자가 모든 CP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고 적혔다. 소비자로부터 연회비를 수취하는 동시에 가맹점으로부터 결제 수수료를 지급받는 카드사가 양면시장의 대표적인 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미국 FCC는 망중립성 규제 적용 대상에서 ISP와 CP간 망 이용대가 지불 관계는 명시적으로 제외하고 있어, 망중립성과 망사용료는 무관함을 재확인했다"라며 "인터넷망도 신용카드·플랫폼 서비스와 같이 양면 시장에 해당하며, ISP는 양측에서 요금을 수취할 수 있다는 점을 이번 FCC Order를 통해 판단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규정은 연방관보에 게재되고 60일 이후 효력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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