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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SW 산업혁신]⑦ 예산 ‘양’도 ‘질’도 떨어져…합리적 예산구조 마련 어떻게?

권하영 기자

한국 공공 소프트웨어(SW) 산업이 위기다. 정부는 예산을 줄이고 기업은 적자 신세다. 그 사이 공공 시스템은 부실해지고 피해를 입는 건 국민이다. 지난해 11월 터진 국가 행정전산망 장애와 공공서비스 먹통 사태가 단적인 예다. 정부는 뒤늦게 대책을 마련했지만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공공 사업 단가 후려치기, 과도한 과업 변경과 발주기관 갑질, 규제를 둘러싼 어긋난 이해관계 등 공공 SW 시장의 문제는 십 수년째 계속되는 해묵은 병폐들이다. 이에 디지털데일리는 공공 SW 생태계를 둘러싼 정책과 제도들을 살펴보고, SW 산업 진흥을 위한 바람직한 길을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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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데일리 권하영기자]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 선진화를 위해서는 적정 예산을 확보하는 것부터가 전제가 돼야 한다. 그래야 발주기관의 가격 후려치기나 지나친 과업 변경 등 불합리한 관행을 해소하고, 이로 인해 취약해질 수밖에 없었던 공공 정보화 시스템의 품질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24년 SW·정보통신기술(ICT)장비·정보보호 수요예보(확정)’에 따르면, 올해 공공 SW 사업 규모는 6조3609억원으로 전년보다 2.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 5년간 가장 낮은 증가세다. 2020년과 2021년만 해도 각각 11.8%와 13.6%로 전년 대비 두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다면, 이후 2022년 5.4%, 2023년 2.7%로 증가폭이 계속 감소해왔다.

이는 늘어나는 공공 디지털전환 수요와 물가 및 인건비 상승 추이를 감안했을 때, 아쉬움이 드는 대목이다. 이미 공공 SW 사업은 사업비 자체가 지나치게 낮게 책정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한국SW산업협회가 발표한 ‘SW산업 대가산정 가이드’에서 SW 개발비의 기준이 되는 기능점수(FP)당 단가는 4년 만인 올해 단 9.5% 오르고 말았다.

올해 공공 SW 사업에서 유지관리 사업 비중이 늘었다는 점도 좋은 신호는 아니다. 공공 SW 사업의 상당 부분은 SW 구축 사업이 차지하는데, 구축 사업은 정보화전략계획(ISP) 수립부터 SW 개발과 유지관리 등 분야를 포함한다. 하지만 올해는 그중 유지관리 사업 규모가 구축 사업의 69.1%를 차지해 전년(60.4%)보다 크게 늘었다.

이는 곧 신규 사업이 축소됐다는 의미다. 유지관리 사업은 말 그대로 기존 구축 사업을 유지관리하기 위해 인건비를 투입하는 사업이기 때문에 공공 SW 사업의 본질이라고 보긴 어렵다. SW 개발과 구매 등은 다 신규 사업에서 이뤄지고, 넓게 보면 신기술 채택 등을 통해 공공 SW 품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공공SW 수요예보 설명회 발표자료 [Ⓒ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공공SW 수요예보 설명회 발표자료 [Ⓒ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정부는 SW 사업 기술지원과 대가 산정을 위한 정보수집 및 관리감독 등에 쓰이는 공공 SW 선진화 사업 예산도 축소했다. 올해 공공 SW 선진화 사업 예산은 36억6800만원에 그쳐 전년보다 8.1% 줄었는데, 지난 5년간 이 예산은 2020년 48억원, 2021년 46억원, 2022년 40억890만원, 2023년 39억9000만원으로 매해 빠짐 없이 감소했다.

즉, 올해도 공공 SW 사업 예산은 양에서나 질에서나 여러 면에서 진일보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지난해 11월 행정전산망 장애 사태가 터지면서 그나마 정부가 공공 SW 예산을 충분히 확보할 명분이 있었는데도 그랬다. 특히 부처 특성상 예산 감축에 집중하는 기획재정부를 거치다보면, 당초 계획한 예산도 깎이는 게 다반사다.

예산 부족 문제는 공공 SW의 고질적 문제로 꼽히는 발주기관의 사업비 후려치기 및 추가 과업 비용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보수적 관행으로 이어진다. 이에 사업자는 매번 적자를 감수하거나 소극적으로 과업을 수행하는 데 그치고, 이는 궁극적으로 공공 SW 부실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업계 안팎의 지적이다.

SW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 예산 기조가 그러니 공무원 입장에서도 한정된 예산 안에서 최저가 입찰을 할 수밖에 없고, 혹여나 감사나 불이익을 받을까봐 과업을 추가시켜도 자꾸 비용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라며 “결국 고객인 정부가 공공 SW에 돈을 쓰지 않으려고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업계에선 적정 예산 확보를 위한 합리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물가 인상분을 반영한 예산 책정 구조와 SW 산업 맞춤 계약 모델을 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변동성이 잦은 특성상 예비비를 반드시 책정하게 하거나, 과업 변경시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감사를 면제하는 등 유연성을 부여하는 것이 방법으로 지목된다.

권하영 기자
kwonh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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