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방통위 파행 지속, 대대적 개편 불가피
[디지털데일리 강소현기자] "(방송통신위원장과 여권 추천 상임위원) 2명이서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지난해 이동관 전 위원장과 이상인 상임위원 2인 체제로 6기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처음 출범했을 당시 한 야당 관계자의 반응이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방통위 설치법) 제5조 2항에 따르면 상임위원 5인 중 ▲위원장을 포함한 2인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3인(여당 교섭단체 1인·야당 교섭단체 2인)은 국회의 추천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권 추천 위원 2인 만으로 의결이 이뤄지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 외에도 상임위원 출신 등 대부분 관계자가 비슷한 반응을 보였는데, 이 중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며 오히려 윽박지르는 이도 있었다.
위원회 정원의 절반도 차지 않은 2명이 독단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상황이 일반적이지 않은 것을 넘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음을 반증하는 반응이었으리라.
야당 측 상임위원이 전무한 상황에서 위원장과 여권 상임위원이 2명이 독단적 결정을 내리는게 위원장을 지명한 대통령과 여당에게도 분명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예측이 무색하게 여권 추천 2인의 단독 의결이 이어졌다. 시작은 공영방송 이사 교체였다. 임기가 남은 기존 야권 이사를 해임하고, 그 자리에 여권 이사를 임명했다. 이 과정에서 특정 공영방송 시사프로그램들은 소리 소문없이 폐지됐다. 그 다음 화살은 보도전문채널로 향했다. 공기업이 대주주였던 YTN과 연합뉴스TV의 민영화 추진으로 보도채널을 길들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사실 방통위설치법상 여당의 일방통행은 언제든 가능한 구조다. 대통령 직속 기관인데다 정부·여권 인사가 전체 상임위원 5명 중 3명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위원회 개의 요구 정족수를 충족하면 재적 위원의 과반 찬성으로 의결할 수 있다.
다만 정부·여권 인사가 전체 상임위원의 과반을 차지하는 구조는 방통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위원회 역시 집권당이 다수가 되어 끌고 가는 구조로 설계됐지만, 방통위만이 유독 정치적 후견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공영방송의 소관 부처로서 ‘방송=언론’이라는 공식 탓에 다른 정책 논의는 정치적 공방에 매몰되기 일수였고, 정권이 교체될 때 마다 정치 논리에 쉽게 좌우됐다.
그럼에도 불구, 윤석열 정부처럼 일방통행을 한 전례는 없었다. '방송 장악'이라는 화살을 피하지 못하며 처음 방통대군(방송통신대군)이라는 오명을 얻은 최시중 초대 위원장 시절에도 이러지는 않았다. 양문석 위원(현 국회의원)이 책상을 내리치고 회의중에 퇴장하는 일이 있을지언정 5명이 치열하게 토론하고, 어떻게든 합의제 기구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5인의 상임위원들이 머리는 맞댔다.
하지만 지금의 방통위는 이미 공영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모양새다. 지난 13개월 동안 방통위의 수장은 직무대행을 포함해 총 7번 바뀌었다. 여권 인사 2인이 단독 의결하고 야당이 탄핵을 추진하면 사임한 뒤, 대통령이 다른 여권 인사를 재선임하는 절차가 반복되고 있다.
대대적 개편은 불가피하다. 방통위의 구조적 한계가 수면 위로 드러난 이상 현재 야당에서 상임위원 2명을 추천해 ‘5인 완전체’로 방통위가 출범한다 해도 정상 운영이 불가하다고 보여진다. 당장 오는 8월 MBC 이사진의 임기가 만료되는 상황에서 야당 역시 상임위원 2명을 추천할 일이 만무하다. 야당 입장에선 MBC 이사진을 정부 입맛대로 선임하라고 내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즉, 여당의 일방적인 의결에 정당성을 부여해 줄 뿐이다.
처음 구상됐던 방통위의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달랐다. 방통위를 처음 구상한 건 1990년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방송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려면 방통위의 위상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의지를 거듭 피력했던 만큼 당시엔 오히려 ‘행정부와 독립된 형태로 가야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다. 이에 행정부로부터 분리된 독립위원회 형태인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모델로 제시됐다.
그럼에도 불구, 국내 첫 통방융합기구인 방통위가 전신인 방송위원회(이하 ‘방송위’)와 같은 수준의 위상을 가지면서도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도 보장하려다보니 현재의 ‘대통령 직속의 합의제 위원회’라는 모순적인 구조가 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금부터라도 효율적인 정책과 규제가 가능한 정부 부처 형식을 논의해야 한다. 기존 방통위의 통신 정책 영역을 과기정통부로 이관하거나, 방송 (재)허가 또는 (재)승인 사업자를 묶어 관장하는 ‘공공방송영상위원회’(가칭)으로의 개편 등이 업계에선 거론된다.
방통위의 공백 속 피해는 오롯이 업계에 전가되고 있다. 굵직한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사들과 관련해 흉흉한 소문이 돈다. A사는 콘텐츠 사용료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으며, 중계권 확보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온 B사의 파산설이 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 PP뿐만이 아니다. 유료방송사인 C사 역시 올해를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생태계는 순환된다는 점에서 시장은 빠르게 역행할 것이 자명하다.
야당에서도 다양한 조직 개편안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현 여당은 ‘왜 당신들이 여당일때는 안했냐’는 입장이다. 현 야당이 여당이 되는 경우, 지금의 여당을 거울삼아 비슷한 행보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래저래 방통위 조직 및 역할의 대대적 손질은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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