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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인고의 시간' 삼성 파운드리, GAA 3나노 공정 성과가 관건

고성현 기자
엑시노스 시리즈. [ⓒ삼성전자]
엑시노스 시리즈. [ⓒ삼성전자]

[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확대되는 인공지능(AI) 산업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양날의 검으로 다가오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고성능 메모리 제품에 호조를 불러다준 한편, 시스템반도체 시장 훈풍에도 파운드리 사업이 적자를 잇는 웃지 못할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한번 벌어진 격차는 좁혀지긴 커녕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점도 씁쓸하게 다가온다.

AI로 재편되고 있는 반도체 시장의 요구도 기존 삼성전자의 최대 경쟁력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 미세공정 향상, 원가 절감 등 초격차 기술이 곧 경쟁력으로 직결됐던 과거와 달리, 이를 바탕으로 고객 맞춤형 제품을 내놔야 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까지 갖춰야 해서다. 이는 시스템반도체인 파운드리뿐 아니라 메모리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정 기술력 향상에 집중하는 '메모리적 사고'를 가져 온 삼성전자에게는 파운드리만의 철학이 갖춰져야 하는 커다란 변화가 필요한 셈이다.

삼성전자의 부정적인 시스템반도체 사업 환경은 실제 지표에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TSMC는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집계한 1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조사에서 61.7%의 점유율을 기록, 2위 삼성 파운드리(11%)와의 격차를 전분기 대비 0.8% 더 늘렸다. 매 분기, 매해 늘어나는 격차를 다시 한번 좁히지 못한 것이다.

이에 더해 TSMC는 주력인 3나노, 5나노 공정 제품의 가격을 인상하며 자신들을 대체할 파운드리가 없음을 알렸다. 그러는 한편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가 시스템LSI, 파운드리 사업에서 대략 3000억원에서 5000억원대의 적자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부정적인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5월 전영현 부회장이 DS부문장에 부임된 이래 소소한 변화가 감지된다. 내부 조직개편의 속도가 한층 빨라진 한편, 별도의 연구개발(R&D)을 진행하던 조직이 파운드리 사업부로 들어오는 등 선택과 집중을 택한 전략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초 성능, 수율 난항을 겪던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반 3나노 2세대(SF3) 공정도 차츰 분위기를 타는 모양새다. 올해 2분기 컨퍼런스 콜에서도 "올해 3년 차에 접어든 3나노 1세대 GAA(게이트올어라운드) 공정은 수율과 성능이 성숙 단계에 도달했으며 안정적으로 양산하고 있다"며 "이를 기반으로 3나노 2세대의 GAA 공정은 웨어러블 제품을 시작으로 하반기 모바일 제품 본격 양산을 진행할 예정"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반도체 업계 내에서도 달라진 삼성전자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기대했던 물량이 맞지 않으면 관련 투자를 집행하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설계자산(IP)·소규모 팹리스 고객 확보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중이다. 2나노 공정 고객사로 합류한 일본 스타트업 프리퍼드네트웍스(PFN), 국내 스타트업인 리벨리온과의 4나노 기반 NPU 제조 협력, 미국 AI반도체 기업 텐스토렌트·그록과의 협업 사례가 대표적이다.

삼성 파운드리 반등의 핵심은 올해 하반기 양산이 예정된 3나노 2세대 공정이다. 3년차에 접어든 GAA 기반 공정이 2세대에 이르러 결실을 맺는 만큼, 이 공정이 거둘 성과에 따라 향후 수년 간의 고객사 수주 판도가 결정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서다. 양산 이후 초기 레퍼런스 제품에 대한 성과가 안정적으로 나오게 된다면 빅테크 수주를 위한 활로가 다시 열릴 수 있게 된다.

이는 삼성전자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신제품 '엑시노스 2500'가 거둘 성과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 3나노 2세대 공정으로 양산할 첫 제품이 웨어러블용 AP인 엑시노스 W1000, 엑시노스 2500이기 때문이다. 관련 제품이 성공적으로 생산돼 내년 초 '갤럭시S25'에 탑재된다면 수율 향상을 통한 납기 대응력은 물론, 해당 공정의 개선된 성능도 입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불안 요소는 있다. 3나노 2세대 공정의 수율과 성능이 명확하게 나오지 않은 만큼, 제때 적합한 성능의 칩을 납품할 수 있겠냐는 의구심이 남아 있다. 과거 엑시노스 2200 성능 저하, 발열 이슈로 게임최적화서비스(GOS) 논란까지 있던 탓에 여론조차 불신이 가득한 상황이다. 오죽하면 엑시노스 2500을 다룬 기사에 '파운드리보다 메모리에 집중하라'거나 '너(기자)같으면 엑시노스 2500가 탑재된 제품을 사겠냐'는 웃지 못할 댓글이 종종 달리고 있다.

삼성 파운드리에 쏠린 부정적 여론은 오롯이 삼성전자가 해결해야 할 몫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우리나라 경제에 영향을 주는 모두의 것이다. 국내 파운드리의 위기는 곧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약화로 직결되며, 태생적 한계를 지닌 팹리스의 꿈틀대는 성장 가능성조차 닫아버릴 수 있다. '제2의 엔비디아'가 한국에 등장하더라도 TSMC에 웃돈을 줘야만 칩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삼성 파운드리에 대한 응원은 없어도 관심은 이어져야 한다. 메모리적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초격차를 불러올 수 있는 적기라면 더욱 그렇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다시 높일 수 있는 기회가 3나노 공정에 달려 있는 만큼, 삼성전자가 다시 한번 더욱 높이 뛸 수 있는 성과를 마련할 수 있길 기대한다.

고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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