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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클로즈업] 위험 원천차단 VS 자율성 침해…티메프사태가 낳은 ‘에스크로 의무 확대’ 논란

오병훈 기자

[ⓒ픽사베이]

[디지털데일리 오병훈기자] 티몬·위메프 정산지연 사태(이하 티메프사태)로 인해 ‘에스크로 의무 확대’ 찬반 논쟁이 정부·국회·업계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정부와 국회에서는 입을 모아 결제대금예치(에스크로) 의무 대상을 확대해 플랫폼 결제 대금 전용 위험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이커머스 플랫폼에서는 스타트업 성장 저해 및 기업 자율성 침해 우려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금융위원회에서 최근 발표한 ‘전자금융업 등록 및 말소 현황’에 따르면 전자금융업자 196개사 중 에스크로 업무 허가를 받은 기업은 44개사로, 전체 전자금융업자 중 22.4% 정도가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국회에서 공언한 대로 에스크로 의무 대상이 확대되면 해당 목록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이커머스 기업들은 에스크로업 허가를 받거나 외부 핀테크 기업과 에스크로 업무 대행 계약을 맺는 등 부가적인 대응책에 나서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티메프사태 성난 민심에 정부·여야 합심 ‘에스크로 의무 확대’

정부에서는 일찍이 티메프사태가 본격화되면서 재발방지책 중 하나로 에스크로 의무화를 내세웠다. 지난 7일 진행된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위메프·티몬 사태 추가 대응방안 및 제도개선 방향’ 중 하나로 판매대금 별도관리 의무화를 거론했다. 플랫폼-입점 셀러 간 정산 주기를 명확히 하고, 제 3 기관·계좌에 판매대금을 별도 관리하도록 하는 에스크로를 도입하겠단 취지다.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에스크로 의무 확대 취지 목소리를 냈다. 여당에서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당정협의회에서 “이커머스 업체 정산주기를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요청이 계속 있었다”며 “위탁형 이커머스는 에스크로 도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하며, 위탁형은 금융기관적 성격이 있어서 필요한 규제는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국회에서 실제 입법 절차에 돌입한 사례로는 송언석 의원(국민의힘)이 에스크로 결제를 의무화하자는 취지로 발의한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있다. 같은 법률을 대상으로 김현정 의원(더불어민주당)도 유사 취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황이다.

KG이니시스 홈페이지 에스크로 서비스 안내 화면 갈무리 [ⓒKG이니시스]

◆에스크로 대상 확대되면?…배달·백화점 플랫폼 전반 규제 대상 전망

지난 2006년부터 ‘전자상거래 소비자보호법(이하 전소법)’에 따라 온라인 상 현금 거래는 에스크로를 의무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다만, 신용카드 결제 및 웹툰 감상·온라인 강의 등 배송 불가능한 형태 서비스 결제는 의무 대상에서 제외된다.

규제 강화가 현실화돼 이커머스 내 신용카드 거래에도 에스크로 도입이 의무화될 경우, 대부분 이커머스 플랫폼 기업은 자체적인 에스크로 업무 허가를 받거나, 타사에 에스크로 대행을 맡기는 등 추가적인 대응책이 요구될 전망이다.

송언석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은 “통신판매중개자는 재화 등의 대금을 은행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융회사를 통해 예치 또는 신탁해 관리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예컨대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는 통신판매중개업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우아한형제는 지난달 19일 기준 ‘선불지급수단 발행업’과 ‘전자지급결제대행업(PG업)’에 대한 허가만 보유 중이다. 규제가 강화되면 금융위원회로부터 추가로 에스크로업 허가를 받거나 KG이니시스·네이버파이낸셜 등 에스크로업 허가를 받은 기업과 대행 계약을 맺는 등 추가적인 비용 지출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스타트업엔 부담” 우려vs“에스크로 전문 기업은 수혜”…희비교차

에스크로 업무는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허가를 받고자 하는 기업은 전자금융거래법 상 등록 기준에 따라 ▲일정 규모 이상 자본금 또는 기본재산 ▲전문인력과 전산설비 등 물적 시설 ▲재무건전성 기준을 충족 ▲사업 계획 타당성·건전성 ▲출자능력·신용 등 요건을 갖추고 금융위원회에 등록해야 한다.

규모가 큰 플랫폼 기업 입장에서는 자체적으로 에스크로업 등록 요건을 갖추고 있어 해당 규제 비용을 소화하는 데 무리가 없다. 특히 네이버·카카오·쿠팡 같은 국내 대표 플랫폼 기업은 에스크로 라이선스를 보유한 전자금융업 계열사(네이버파이낸셜, 카카오페이, 쿠팡페이)를 통해 규제에 대응할 수 있다.

결제 시장에서 에스크로업을 주력 서비스로 내세우고 있는 핀테크 기업에는 오히려 수혜로 작용할 전망이다. 증권가에서도 해당 규제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으며, 이에 따라 일부 핀테크 기업이 수혜를 입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내놨다.

나민욱 DS증권 연구원은 최근 기업 보고서를 통해 “은행 등 신뢰성 있는 기관에 정산 대금 예치를 맡기는 에스크로 의무화와 금융과 비금융을 분리하여 내재화된 정산의 외부 대행 가능성, 오픈마켓 및 이커머스의 정산 주기 단축 등 방안 등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현겸 KB증권 연구원도 “헥토파이낸셜은 PG 정산 사업자로서 ‘PG 에스크로 정산서비스’를 신규 출시했다”며 “해당 서비스는 최근 티메프 이슈로 발생하고 있는 플랫폼사들의 정산PG 수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어 선점에 따른 신규 사업모델로 확고히 자리 잡을 전망”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다만, 에스크로업 등록 요건을 맞추기 어려운 스타트업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우려도 나온다. 아울러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자본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 회사 생사와 직결되는데, 에스크로 의무화나 정산 주기 단축 등 규제를 기업 규모 관계없이 일률 적용할 경우 스타트업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최근 공식 성명에서 에스크로 도입 의무화 관련해 “플랫폼 기업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며 “(티메프사태를) 일반화해 모든 이커머스 업체가 판매대금을 전용하는 것처럼 회계 분리나 에스크로 도입과 같은 대안을 적용하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병훈 기자
digimon@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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